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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Feb 27. 2024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위한 제언-1

사실관계 확정 절차의 개선 필요성

2024. 2. 26. 심의를 마지막으로 2020년 2월부터 시작했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라고 합니다) 위원 4년의 임기를 마쳤습니다. 늘 누군가(대체로 판사)에게 판단을 구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학폭위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을 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또 학폭위 개최를 신청한 학생이나 심의를 받게 된 학생에게는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니만큼 긴장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학폭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과연 타당한 결정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에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학폭위 심의위원이 당연히 주업이 아닌지라 얼마나 성실하게 전심전력을 다해서 심의에 임했는지도 자신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심의위원을 한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물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것입니다.). 그런 아쉬운 마음에 4년 간의 학폭위 위원 활동을 마치면서 학폭위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를 위한 제언'으로 다소 거창하긴 합니다만, 그저 4년 간 느꼈던 점들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이 읽으실지, 몇 분이나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새롭게 학폭위 위원으로 활동을 하실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고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실관계 확정 절차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학폭위에서 심의는 크게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① 우선 사실관계를 확정합니다. 즉 A학생이 B학생을 때렸는지, A학생이 B학생에게 욕을 했는지, 여러 명의 학생이 집단적으로 특정 학생을 괴롭혔는지 등 과거에 있었던 '사실' 자체를 확정해야 합니다.


② 다음으로 위에서 확정된 사실관계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이라고 합니다) 제2조에서 정하고 있는 '학교폭력'(제2조 제1호), '따돌림'(제2조 제1의2호), '사이버 따돌림'(제2조 제1의3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합니다.


③ 마지막으로 가해 관련학생의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면, 가해학생('가해 관련학생'의 행위가 학교폭력으로 인정된 이후에야 '가해학생'이 됩니다)에게 학폭법 제17조에서 정하고 있는 9가지의 조치(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피해학생 및 신고ㆍ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학교에서의 봉사/사회봉사/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퇴학처분) 중 어떠한 조치를 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위 3단계 절차 모두 중요하고, 서로 불가분리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지만, 저는 첫 번째 절차, 즉 사실관계 확정 절차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입니다. 사실관계 확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이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해서 억울하게 학교폭력의 가해자로서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실제로 입은 피해보다 더 적은 피해만이 인정되어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실 학폭위에서 사실관계 확정이 어려운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관계 조사가 완벽하게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니고, 대체로 가해학생이 심의에 참석하여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피해학생의 피해 사실 진술이 있고, 가해학생의 인정이 있으니 피해-가해 사실은 쉽게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0건에 1~2건 정도는 가해 관련학생이 끝까지 피해학생이 신고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반 형사재판과는 달리 학폭위 심의에서는 증인신문절차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또 사안에 대한 목격자(증인/참고인)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칙대로 한다면, '증거불충분'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황상 분명 가해학생이 학교폭력 행위를 한 것으로 생각은 되는데, 그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 심의위원들은 '증거불충분' 결정에 심리적으로 상당한 저항감을 갖게 됩니다. 분명히 학폭행위를 한 것 같다는 강한 심증이 들기 때문입니다. 피해학생과 그 학부모는 학교폭력을 당했다면서 울고 있습니다. 당연히 마음이 약해지고, 피해자 쪽으로 다소 기울게 되기 쉽습니다.


저는 이럴 때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떠올렸습니다. 얼마나 지키기가 어렵고,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헌법에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명시했겠습니까.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인간의 어떤 심리적 편향에 대한 제동장치입니다. 피해학생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면, 피해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과거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로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학폭위 심의에 대한 행정적/사법적 구제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심의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를 이후 절차에서 뒤집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관계가 증거에 의해서 확정이 되지 않는다면, '증거불충분' 결정으로 끝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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