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은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최근 걸그룹 에스파가 서태지의 노래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했다. 그 덕에 1995년 노래인 <시대유감>이 3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것은 도대체 에스파는 왜, 무슨 생각으로 다른 노래가 아닌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한 것일까라는 점이다. 서태지의 <시대유감>은 당대 사회의 위선에 대한 비판과 억압에 대한 저항을 날것으로 표현한 노래다.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날것의 느낌을 주는 이유는 서태지 본인이 아마도 그 위선과 억압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위선과 억압은 당연히 있으며, 오히려 예전보다 위선은 은밀해지고, 억압은 교묘해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에스파는 어떤 억압을 당한 것일까. 서태지가 절절하게 써 내려간 가사를 똑같이 따라 부르면서 에스파는 어떤 고발과 저항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에스파의 노래에서는 날것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다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에스파의 노래는 우리 대장의 <시대유감>이 결코 아니다.
<시대유감>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1995년) 수록곡이다. 여기에 실린 <시대유감>에는 가사가 없다. 공연윤리위원회(공윤)가 음반 발매 전 가사 수정을 지시했는데, 서태지가 저항의 표시로 가사를 통째로 들어내고 연주곡만 실은 것이다. 공윤이 문제삼은 가사는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매 다니네",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라는 부분이었다. 기득권의 개/파수꾼인 공윤이 과연 두려워할 만한 내용이다. 서태지의 팬들은 들고일어났고, 사라진 가사를 돌려받기 위해 가요 사전심의제 철폐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바야흐로 문민정부의 시대였고, 여론은 서태지의 편이었고, 헌법재판소는 1996년 (공윤이 감히 서태지에게 가사 수정 지시라는 흉악한 짓을 할 수 있었던 근거였던) 가요 사전심의제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사전심의제 폐지가 오로지 서태지만의 공은 아니다. 가요 사전심의제 폐지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은 '정태춘'이다. (이하 정태춘에 관한 내용은 중앙일보 2022. 5. 15.자 기사 참조) 정태춘은 가요 사전심의제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7집 <아, 대한민국···>을 대놓고 심의를 받지 않고 발매했던 것이다. 당시 현행법 상으로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7집에 실린 ‘우리들의 죽음’은 가난한 맞벌이 부모가 일 나간 새 잠긴 지하셋방에서 불이 나 어린 남매가 질식사한 비극적 사건을 담은 곡이다.(중략) 정태춘은 “노래마다 화자를 자유롭게 했는데 ‘우리들의 죽음’은 당시 신문기사를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옮겨 리얼리티를 살리려 했다”라고 말했다.(중략) 검열 기관에선 ‘정태춘 씨, 대중음악이 이런 얘기해야 합니까? 건전한 얘기 하면 안 됩니까?’ 그러더라고요. 나는 우리가 구사하는 수많은 어휘를 갖고 풍부한 이야기와 감정과 상상력을 표현하고 싶은데 답답했어요." 사전심의제의 위헌성을 확실하게 확인해 준 헌법재판소의 결정(헌법재판소 1996. 10. 31. 선고 94헌가6 결정 음반및비디오물에관한법률제16조제1항등위헌제청)의 제청신청인이 바로 정태춘이었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출판의 자유의 핵심적 내용은 의사표현의 자유이다.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수단(매개체)이 필요한데, 그 수단에는 제한이 없다. 자신의 의사를 어떤 수단이나 방법, 형태로 표현하건 의사표현의 자유로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음반'도 헌법 제21조 제1항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음반은 학문적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예술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그 제작 및 판매 배포는 학문·예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22조 제1항에 의하여 보장을 받음과 동시에 헌법 제21조 제1항에 의하여도 받는다."(94헌가6 결정)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 무제한적(무제약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윤이 당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사전심의를 하는 것은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특별히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헌법재판소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언론 출판에 대하여 사전검열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민의 예술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여 정신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헌법 제37조 제2항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하여도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하여는 검열을 수단으로 한 제한만은 법률로써도 절대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가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검열이 되는 것일까. 검열이 되려면, 1) 표현'내용'에 대한 사전심사이어야 하고, 2) 표현물에 대해 사전제출의무를 부과하고, 허가를 받지 아니한 것의 표현을 금지하고, 그와 같은 심사절차를 관철하기 위해 강제수단을 동원할 수 있으며, 3) 행정기관에 의해 사전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검열은 일반적으로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및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이에 해당하는 것"(94헌가6 결정)이다. 따라서 공윤이 사전심의제에 근거하여, 서태지가 음반을 발매하기 전, 음반을 제출하도록 하고, 서태지에게 가사 삭제를 명하고, 명령에 불응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명백히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에 해당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전심의제는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위헌적인 제도였던 것이다.
사전심의제는 폐지되었고, <시대유감>은 가사가 실린 온전한 형태로 발매될 수 있었지만, 우리 대장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2004년에 발표한 7집의 타이틀곡 <Live Wire>에서 대장은 "도대체 너희가 뭔데/나에게 대체 어떤 권리에/내 자유에 나의 마이크에/네 판단에 제재 하는데"라고 절규한다. <시대유감>으로부터 30년 뒤, <Live Wire>로부터 20년 뒤인 지금은 어떨까. 한겨레 신문의 서정민 기자는 칼럼에서 <시대유감> 동영상 유튜브 댓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1995년 가사가 2024년 지금 더 실감 난다." "‘시대유감’의 유통기한은 끝나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씁쓸하다."> 서태지는 "내 열두 개 멜로디로 난 오늘 경계선을 넘을게"(Live Wire)라고 노래했는데, 우리들은 무엇을 가지고 이 시대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을 넘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