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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Sep 11. 2021

009_안민석은 최순실에게 1억 원을 배상해야 할까요?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의 의미

2021. 9. 8.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최순실이 안민석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최순실) 승소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안 의원이 "최순실 일가가 박정희 정권의 불법자금 등으로 축적한 수조원대의 재산을 독일 등에 숨겼다"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이 최순실이 안 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법원이 최순실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여, 즉 안 의원의 발언이 허위사실임을 인정하여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법원은 최순실의 주장의 당부(옳고 그름)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이른바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을 선고한 것입니다.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판결이 선고된 이후 쏟아진 기사의 제목만 보면, 마치 안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 허위사실로 인정되어 법원이 최순실에게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어떤 기사는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오해를 해소하지 않고 (더 나아가 부추기고) 있는데, 참 게으르고 (나쁜) 기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다 싶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 국회의원의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살폈으면 한다."라고 하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민주당을 동시에 공격했습니다. 이는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발언입니다(알고도 했다면 악의적인 것이고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법원은 결코 안 의원의 발언이 허위라고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서민 교수는 이 판결이 선고되자 "살다 살다 최순실 편을 드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라고 했는데, 아무런 내용도 없는 이 판결을 보고 왜 최순실 편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는 살고 살아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아래에서는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 민사소송의 일반적인 절차(흐름)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의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소송의 절차


1) 소는 법원에 소장을 제출함으로써 제기합니다(민사소송법 제248조). 최순실이 안민석을 상대로 돈 1억 원을 달라는 내용을 기재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최순실이 안민석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입니다. 여기서 소를 제기한 사람을 원고, 그 상대방을 피고라 합니다. 최순실이 원고, 안민석이 피고가 된 것이죠.


2) 원고의 소장을 받은 법원은 피고에게 그 소장을 보내줍니다(민사소송법 제255조-법원은 소장의 부본을 피고에게 송달하여야 한다). 피고가 소장을 받아보아야만 자신이 누군가가 제기한 소의 상대방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해 대응을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수 있고, 대응한다면 그 방법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소장을 받은 피고는 소장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민사소송법 제256조 제1항). 그런데 실무에서는 이 30일이라는 기간을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습니다. 즉 30일 넘어서 답변서를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큰 제재를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보통은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되, 이 때 내는 답변서에는 간략하게 원고의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만 기재하고, 좀더 침착하게 사건을 파악한 후에 원고의 청구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투는 내용의 준비서면(실질적 의미의 답변서)을 제출합니다.


4)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하고 나면, 법원은 변론기일을 지정합니다. 즉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서면(즉, 원고가 제출한 소장과 피고가 제출한 답변서)을 통해서 대략 파악하였으니 이제 원고와 피고를 법정으로 불러서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말을 통해서 직접 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5) 이렇게 변론기일이 몇 차례 열린 후에(변론기일 사이사이에 원고와 피고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서면과 증거를 제출합니다) 법원이 원고와 피고 중 누구 주장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선고기일을 지정합니다. 판결이 선고되고, 판결서가 송달된 날부터 2주 이내에 항소하지 않으면(즉, 1심 판결에 대해 불복하지 않으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됩니다. 물론 항소하면 1심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하고, 항소심(2심)이 열리는 것이죠.


2.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의 의미


무변론 원고승소판결은 말 그대로 변론을 열지 아니하고 원고의 승소를 선언한 판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원고가 주장한 사실이 전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원고 승소 판결을 한 것일까요? 이 사건의 경우라면, 법원이 최순실의 주장이 전부 옳다고 판단하여 최순실에게 승소 판결을 선고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무슨 근거로 원고인 최순실의 승소 판결을 한 것일까요.


민사소송법 제257조 제1항은 "법원은 피고가 제256조제1항의 답변서를 제출하지 아니한 때에는 청구의 원인이 된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보고 변론 없이 판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피고가 소장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원고의 주장을 다투는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하지 아니하면, 피고가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을 전부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이것이 위 법조문에서 '청구의 원인이 된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보고'라는 문구의 의미입니다) 변론기일을 열지 않고(즉, 원고와 피고를 법정으로 불러서 그들의 말을 들어 보지 않고) 원고에게 승소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안민석 의원이 이 판결에 대해서 항소하지 않고 그대로 확정되어 버린다면, 안 의원은 최순실에게 1억 원을 배상해야 합니다. 물론 이 판결에 대해 안 의원이 항소해서 항소심에서 승소한다면 당연히 1억 원을 지급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요.




안민석 의원은 이 판결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글쎄요, 법원은 법대로 판단을 한 것이고, 어이없는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순실이 지난 4월에 소를 제기하였으니 법원은 안 의원에게 대응할 시간도 충분히 준 것입니다. 법원이 최순실의 주장 사실을 적극적으로 심리해서 그 주장이 옳다고 판단한 것도 아니니 만큼 항소를 제기하여 침착하게 대응을 하면 될 것입니다. 최순실의 주장이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할지라도 대응을 하지 않으면 이런 '어이없는'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안민석 의원이 항소심에서 적극적으로 잘 대응을 하여 본인이 주장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충분히 소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안 의원이 바라는 대로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을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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