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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un 14. 2019

008_대의제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대의민주주의하에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가능할까

복기왕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은 2019. 6. 12. 청와대 SNS를 통해 '국회의원도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대통령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소환할 수 있는데 유독 국회의원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회가 일을 하지 않아도, 어떤 중대한 상황이 벌어져도 주권자인 국민은 국회의원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국민이 한 번의 선거행위로 위임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국민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제도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라고 하면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박현준·장혜진 기자, 세계일보, 2019. 6. 12., 「靑 "의원 소환제를"...삼권분립 위반 논란·총선 겨냥 '여론몰이'?」참조)


위 기사를 보고 저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용기를 칭찬하고 싶었습니다. 온갖 욕을 먹을 줄 알면서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관한 발언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장 자유한국당은 행정부가 입법부를 공격하는 발언이므로 삼권분립 위반이다라거나 총선을 겨냥해서 여론몰이를 한다라고 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박의 가치도 없는 마타도어입니다. 논점을 흐리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세계일보의 저급한 의식도 (원래 별 기대도 없는 언론입니다만) 아쉽습니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지는 못할망정 기계적 중립의 미명 하에 보수야당의 기관지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의해 탄핵될 수 있습니다(복 비서관의 발언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을 소환하는 제도는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은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 도입된 주민소환제에 의해 임기만료 이전에 해임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국회의원만 제외하고는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가장 필요성이 높을 것 같은데 왜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견제 제도가 없는 것일까요? 본인들이 법을 만들고 있으니 자신들에게 해가 될 법은 만들지를 않았을 것입니다(참고로 국회의원은 헌법상 탄핵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이렇게 쉽게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의 자질이나 행태, 국회의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 현실 등을 고려하면, 국회의원 임기 만료 전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을 해직시키는 국민소환제의 도입은 너무나 시급하고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국민소환제는 우리나라 통치구조의 기본원리를 이루고 있는 대의제와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아래에서는 그 도입이 너무나도 시급한 것으로 판단되는 국민소환제가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국민주권과 대의제의 원리를 살펴 보면서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의 도입이 국민청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청와대가 그에 대한 답변으로 도입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했다는 것,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경험이 있다는 것 등은 국민소환제를 논의하고 도입할 상황이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 국민주권의 원리와 대의민주주의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여 국민주권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 문구를 들으면 뭔가 뭉클하고 가슴이 벅차기도 합니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이 말을 들을 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때뿐입니다. 현실 속에서 누구도 '나는 주권자다'라는 자각을 가지고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수 없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결국 '대의제'를 기본원리로 하는 대의민주주의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선거를 통해서 대표자를 선출합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는 헌법에 정해진 권한 행사를 통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합니다. 국민들이 직접 국가 기관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대의제란 이와 같이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 선출된 대표자가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의 정책과 의사를 결정하는 통치구조의 기본원리를 말합니다. 즉 대의제란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구성하고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원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대의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방편일 뿐입니다.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국민주권의 원리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2. 대의제와 자유위임(무기속위임)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대의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합니다. 현대의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투표를 할 때만 주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라고 한 장 자크 루소의 비판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현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너무나도 적확한 비판입니다. 대의제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국민과 (국민이 선출한) 대표 간에 단절이 발생합니다. 대표 기관은 국민 개개인의 '경험적 의사'를 좇아서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즉 국민 개개인의 이해 관계에 부합하도록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세력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추정적 의사'가 국가의사가 될 수 있도록 정책 결정을 합니다. 이를 '자유위임' 또는 '무기속위임'이라고 합니다. 대표 기관은 어느 세력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기속되지 아니하고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헌법의 기본원리인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이란 것은 국회의원을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권리에 그치고, 개별 유권자 혹은 집단으로서의 국민의 의사를 선출된 국회의원이 그대로 대리하여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의제도에 있어서 국민과 국회의원은 명령적 위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위임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단 선출된 후에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양식과 판단에 따라 정책결정에 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2018. 3. 20. 선고 2018헌마229결정


이론은 아름답습니다. 위와 같은 대의제 원리의 취지가 국민이 선출한 대표기관에서 의해서 제대로 구현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대표기관이 국민 개개인이나 특정 집단 혹은 특정 세력의 지시나 명령에 구속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서, 대의제는 대표와 국민을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과연 '특정 세력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추정적 의사가 국가의사가 될 수 있도록 정책 결정을 하고 있나요? 대의제의 이론적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3. 대의제하에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가능할까?


우리나라 헌법은 자유위임의 명시적 규정은 없지만, 헌법 제7조 제1항의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라는 규정, 제45조의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라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관한 규정 및 제46조 제2항의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는 규정들을 종합하여 볼 때, 헌법은 국회의원을 자유위임의 원칙하에 두었다고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4. 4. 28. 선고 92헌마153 결정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와 같이, 우리 헌법이 대의제 혹은 자유위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헌법 규정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볼 때, 우리 헌법은 대의제를 통치구조의 기본적 구성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대의제하에서 국민과 대표의 관계는 자유위임(무기속위임) 관계이므로 대표기관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정치적 책임은 질지언정)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고, 국민은 다음 선거때까지는 대표 기관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대의제를 통해서 국민과 대표 기관을 단절시키는 것은 대표기관이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구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자유위임이 오히려 대의제의 문제점과 한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대의제와 자유위임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국민소환제의 도입은 불가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이론적으로 일견 타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유위임은 '무한위임'이나 '자의에의 위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표기관의 의사결정이 국민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거나 국가의 이익에 반하거나 오로지 특정세력의 이익을 위한 것일 경우에는 국민소환을 할 필요성이 매우 높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대의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방편입니다. 대의제도 헌법의 기본원리이기는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국민주권의 원리' 위에 설 수는 없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명백히 무시하거나 국민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는 대표기관을 임기 만료시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둘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현실적으로 대의제를 폐기하고 직접민주주의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의 대의제가 노정하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직접민주제적 요소인 국민소환제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의제가 헌법적 원리이기 때문에 (대의제 원리와 충돌한다고 볼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법률로 도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엄청난 반대와 논쟁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입법자인 국회가 스스로 국민소환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장 깔끔한 해결 방법은 헌법개정을 통해서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직접민주제적 요소인 국민투표제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러나 만약 현재와 같이 계속 국민소환제가 도입되지 않는다면(또는 못한다면), 대의제의 성공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선거를 잘 하는 것입니다. 대의제하에서는 선거를 잘 하는 것이 우리의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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