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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an 05. 2025

그들이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2025년 1월 5일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가 분명해 보이던 일도 법정 공방의 대상이 되는 순간 선명성을 잃는다. 법정의 문턱을 넘는 순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변질되기 때문일 것이다. 12월 3일 밤 우리는 모두 위헌적인 계엄이 선포되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탄핵심판 변론준비기일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명백한 위헌/위법적 행위가 양 당사자 간의 승패가 걸린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고, 계엄이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이 엄청난 사건마저도 작은 법정에서 다룰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생각도 든다. 다소 느리고, 우회하고 있는 것 같더라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옳은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도, 심지어 (우리와 생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죄를 지은 이들에게도 항변의 기회와 변명의 시간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일 것이다.




도서출판 길에서 출판되었다가 상당히 긴 시간 품절된 상태로 현재까지도 구할 수 없었던 테리 이글턴의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황정아 번역)가 21세기문화원에서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박경장 번역)라는 제목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책과 관련하여 상당히 희한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작년 늦여름께였을까. 황정아 번역으로 이 책이 21세기문화원에서 잠깐 출간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쁜 마음에 바로 사려고 하다가 다른 일이 있어서 조만간 사야지하고 장바구니에만 담아 두었는데, 며칠 후에 들어가 보니 이 책이 아예 사려져 버렸던 것이다! 출판사 내부 사정 때문인지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희한한 일이었다. 두 책을 다 읽어보지 못해서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출판사와 역자의 이력에 비추어 보면, '도서출판 길'에서 황정아 번역으로 나온 책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은 제목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라고 하면, 마르크스 주장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느낌이라면,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일단 마르크스의 주장은 무조건 타당하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마르크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언제나 옳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 마르크스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오늘은 기념일이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라 할 만한 사건이 있었던 날이 20년 전 오늘이다. 운이 좋다면, 아니 요즘 평균수명을 고려하여 보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같이 살아온 날만큼 혹은 그 이상을 앞으로도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물론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른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주어질 시간을 어떻게 함께 할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도 있을 (최근 읽은 책에 나온) 구절을 옮겨 적어 본다. 물론 이마저도 정답은 아니겠지만.


남녀관계 속에서 인간은 결코 상대방의 소유물이 되지 않는다. 줄곧 상대방을 위해 미소 짓지도 않는다. 각자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며 더 많이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영원히 들어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이며, 전체 그림 같은 것은 결코 맞추어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길은 무엇인가? 오로지 상대방의 고유성, 서로 다름, 하나의 전체로 합일하려 하지 않는 상대방의 필연적인 고집을 존중하는 길밖에 없다.(서동욱,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81쪽)


들뢰즈는 자신의 모범으로 삼는 스피노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스피노자는, 타인들이 그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들이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었다."(서동욱,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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