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7일
꽤 힘든 일정이었다. 오전 10시에 북부지법에서 재판이 2개, 오후에는 대전에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사건 심문기일. 나이가 더 들면 이런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잠을 너무 늦게 자는 것이 문제일 수도. 점심은 기차에서 던킨도너츠의 먼치킨(도대체 이게 식사인가!). 그래도 굶지는 않았다. 간신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월세 인상 문제로 한창 시끄러웠지만, 대전역 성심당은 여전히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경기가 어려워서 폐업하는 가게도 속출하고 있는데, 잘 되는 집은 여전히 잘 된다. 이유가 뭘까. 모든 가게가 성심당처럼, 그러니까 성심당과 같은 마인드로 장사를 하면 다 잘 될까. (비유적인 의미의 '빵'이 아니라) 진짜 빵은 생계유지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 사치품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심당 빵 앞에서 지갑을 연다. 나 역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성심당 빵을 사 왔다. 다 아는 맛인데도 대전 재판을 가면 돌아오는 길에 갈등을 하다가 결국 사게 된다. 특별히 맛있어서는 아니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 생각에 그런 것 같다. 출장 다녀오는 길에 빈손은 재미가 없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겠지. 그렇다면 '성심당 빵'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겠다.
현재의 사건만 보면 별 게 아닌데, 엄청나게 중한 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잘못 때문이다. 전과가 쌓이면 누범이 되어 집행유예 결격자가 되기도 하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게 되어 아예 법정형으로 벌금형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북부지법 사건 2개 중 하나가 그런 경우다. 접견을 갈 때마다 피고인은 눈물을 보이고, 이번 사건은 정말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전과가 너무나 많다. 전과조회회보서가 네 장을 넘어간다. 또 다른 사건의 피고인은 분명 잘못을 했고 본인도 일정 부분 인정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공소사실 중 어떤 부분은 자신이 절대 하지 않았다고 완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피고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변호인으로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의 말을 믿는다. 아니 속아준다. 하지만 판사는 속지 않는다. 속아서도 안 된다. 변호사는 속아도 되고, 판사는 속으면 안 된다. 변호사까지 속아주지 않으면, 피고인은 너무 외롭다. 어쨌든 그는 누군가에게 큰 잘못을 했다. 타인을 아프게 한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벌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범죄를 계속 반복하는 사람들은 악무한의 영원회귀의 굴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무섭다.
골프장 캐디는 근로자가 아니다.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다. 여러 논거를 토대로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와 대등한 지위에서 독립적인 사업자로서 자기 사업을 영위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수익도 사업주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게 캐디피로 직접 받는 것도 근로자성 부정의 한 이유다. 그런데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캐디들은 대단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거의 노동착취 수준이다. 배토, 백대기, 당번은 근무시간 외에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수당도 받지 못하고, 봉사를 하는 것으로 포장된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시간 외 근로를 봉사활동으로 한단 말인가. 오늘 지노위 심문기일에서 위원장으로부터 나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변호사님,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었나요? 골프장 캐디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확고한 대법원 판결이 변경되었느냐는 것이다. 즉 대법원 판례가 바뀐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캐디가 근로자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느냐는 질책이다. 변호사님, 여기는 논문 쓰는 곳이 아닙니다. 논문으로야 얼마든지 골프장 캐디가 근로자라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확고한 대법원 판례가 건재한데, 캐디가 근로자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느냐는 힐난이다. 대법원 판례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대법원이 스스로 판례 변경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대법원 판례는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판례는 결코 변하지 않고, 판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유물로 전락할 것이다. 언젠가 분명히 골프장 캐디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