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파커 Jul 20. 2022

그만 슬퍼해, 일어나 맛있는 걸 먹고 이 책을 읽자

'낮술'과 '누가봐도 연애소설' 

“이런 연애 좀 아니지 않아요?” 후배가 상담을 청해왔다. 자기가 아니라 ‘친구’ 얘기라고. 나도 성심껏 답해줬다. 내가 아니라 내 ‘친구’ 얘기로. 대화는 금세 불이 붙어, 장소를 두 군데나 옮겨 진행됐다. 문득문득 ‘내가 지금 연애 상담해 줄 처지인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후배는 귀 쫑긋, 눈 반짝이다.


후배 친구(A)의 남자친구(B)는 잠수를 잘 타고 갑자기 나타나선 한없이 다정하다. 데이트 중 불쑥 가버리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B의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다 “나 피곤해. 그만 집에 가”라고 한 일도 있다. “B가 A를 좋아하긴 할까요?” 

‘을의 연애’. 

이 말을 여러 번 삼켰다. 화제였던 20대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알고 있지만’에서 남녀 주인공이 몇 날 밤을 함께 보내고도, 연애인지 ‘썸’인지 아직 ‘결정’이 안 났는데. 내가 감히 A와 B를 정의할 수 있을까. 괴로운데 헤어지지 못하겠다는 A.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내가 성실할수록 상대는 불성실해지는, 기기묘묘한 관계의 방정식을 겪어봤기에, 매번 다치면서도 접지 못하는 마음을 알기에. 숱한 연애서나 자기계발서처럼 똑 부러지는 조언 대신 “나도 그랬어” 하며 연애 흑역사를 털어놨다. “이 얘기 A에게 꼭 전해주고 싶어요.” 나는 부끄럽고 후배는 흡족해했다. 


며칠 후 A와 B가 헤어졌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아, 나이들수록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한 세 가지가 연예인과 정치인 걱정, 그리고 남의 연애 간섭이었거늘.


A는 많이, 오래 아플지도 모른다. 하여, A를 위한 처방전이다. 슬퍼할 시간엔 맛있는 걸 먹자. 퇴근 후 혼술을 즐기는 30대 여성 쇼코의 일상을 그린 ‘낮술’(문학동네·사진), 추천한다. 쇼코는 ‘돌봄노동’에 종사하는데, 주로 밤부터 아침까지 일하고 퇴근한다. 그러니 술은 대낮부터. 소설에는 도쿄의 실제 존재하는 근사한 음식점 16곳이 등장한다. 맛깔나는 점심에 시원한 술 한잔을 들이켜며 소소한 행복을 쌓는 쇼코. “나 아직 살아있잖아” 하며 매일 삶을 단단하게 다진다. 

한창 자책 중일 A 씨. 배가 든든해지면, 다음 책은 이거다. 이기호 작가의 ‘누가 봐도 연애소설’(위즈덤하우스).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30편의 연애담이 담겼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짝사랑 상대에게 고기를 사주고, 함께 살다 헤어진 연인에게 개를 돌려주며 울기도 하는, 낭만보다는 짠한 기운이 가득한 얘기들은 그게 누구든, 언제든, 삶의 한순간을 차지했던 ‘그것’이 사랑이 아닌 적 없다고 조용히 위로해 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우아하고 지적인 실연 극복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