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 Dec 29. 2019

2. 게으름 탈출은 그라데이션처럼

◈ 변화의 원인


저는 왜 지난 세월 동안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원했으면서도 변화하지 못했고,

그때와 무슨 차이가 있기에 대학 졸업 후에는 변화할 수 있었을까요?

분석해보니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1. 인간의 변화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2. 그로 인해 지나치게 목표를 높게 잡았던 것.


저는 오로지 마음가짐 하나만 제대로 먹는다면 스스로를 단숨에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단 오늘은 낮 한 시에 일어나 수업을 결석하며 대차게 망해도,

내일은 아침에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나 새롭고 밀도 높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제가 결심만 단단히 한다면요.


그래서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습니다! 제가 무의식적으로 그렸던 이상적인 하루는 다음과 같았죠.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동네를 조금 뛰고 온 뒤 건강한 아침을 차려 먹고, 오늘 학교에서 배울 걸 예습하고, 수업 중에 절대 졸지 않고 집중하고, 공강시간을 틈타 교양 과제를 절반 끝내고, 집에 와 침대에 눕는 대신 배운 걸 복습하고, 깨끗이 씻고 간단한 청소를 하고, 헬스장에 갔다 와서 기분 좋게 잠들고, 등등등.......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시다시피 그런 하루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목표치가 현실에 비해 너무 높이 있었기에, 저는 늘 기준선에 비해서 조금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잘 시작해도,

몸에 밴 나쁜 습관으로 미적거리다 늦게 출발해 지각하고,

집중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 기에 수업시간에 공상을 했습니다.

혹은 아예 수업에 안 가버리는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잠들기 전 무의식적으로 하루를 돌아보며 나에게 늘 10점, 20점밖에 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스스로에게 10점밖에 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 나날이 오래 계속되다 보면 자괴감이 차곡차곡 쌓이고,

마침내는 스스로에게 10점을 매기는 게 어떤 의미인지조차 안 느껴질 정도로 둔감하고 우울해진 상태가 디폴트가 됩니다.


물론 목표에 맞춰 (제 기준에선) 무리해 열심히 산 날이 간혹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상적 하루에 비하면 그 날 역시 65점 정도 밖에 안됐기에, 자신감을 키우긴 역부족이었죠.

거기다 그렇게 무리한 하루를 보내는 건 게으른 저에겐 지속 불가능했고,

결국 다음 날에는 과도한 다이어트 뒤의 요요가 오듯이 원래의 나태한 생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면 자괴감은 배로 심해졌죠. 나는 게으름에서 탈출할 수 없는 건가, 스스로를 자책도 하고요.


몇 십 년 간 위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한 후에야 저는 그 패턴을 꺨 수 있었습니다.


즉,


내가 단숨에 변화할 수 있을 거란 망상을 버리고,

과도기의 불안정한 나를 자책하지 않기로 하고,

하루 하루의 목표를 대폭 낮췄습니다.


그러자 역설적이게도, 단번에 크게 달라지려 했던 때는

그렇게도 찾아오지 않았던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그것이 처음부터 큰 변화였던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하루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일들을 하고,

그것이 작은 선순환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하나에서라도 변화가 생기니 의욕이 생겼고,

다른 분야에서도 좋은 습관 만들기에 도전해보고,

점점 커지는 나선처럼 선순환이 다른 분야의 선순환들을 불러오며 마침내 큰 변화가 됐어요.





◈ 변화는 그라데이션처럼


'내일부턴 진짜 빡세게 열심히 살아야지' 를 반복하던 시절의 저를 비유하자면,

게으른 파란색의 내가 내일 눈을 뜨면 짠, 하고 노란색의 내가 되어있길 바랐던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그 무수한 농담과 기다란 그라데이션 상자를 무시하면서요.


하루 하루의 변화는 너무 작고 미묘해서 눈에 잘 안 보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루틴 몇 가지가 있긴 하지만,

몇 십 년 간 쌓이고 융합되고 혼합되며 만들어졌을 

나의 고유한 습관과 관성을 한순간에 변화시킬 만큼 크진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잡고 본다면,

그 미세한 변화를 한 달 혹은 일 년간 축적했을 때의 나 자신과,

작은 변화를 무시하며 그 자리에 멈춰있던 나 자신은 분명히 다른 지점에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빨래 널기를 미루지 않고,

스마트폰을 조금 덜 쓰고,

유혹을 뿌리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그런 좋은 행동 하나 하나가 물 한 방울이 되어

게으름이란 색채를 점점 옅어지게 해주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오늘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해버리면,

내일 설거지를 시작하는 게 조금 더 쉬워지고,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설거지를 시작하는 데 저항감이 심하게 줄어듭니다.

이런 나날이 쌓이고 쌓이면 밥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으면 어색한 지경까지 가겠죠.


과제를 받은 날 일단 자료 폴더와 과제 파일이라도 만들어두는 습관을 들이면,

그 다음 날 시작하는 데에 거부감이 덜할 거고,

막판에 몰아할 때보다 수월하게 끝날 겁니다.

미리 조금이라도 해두면 얼마나 편한지 깨달았기에 다음 과제부터는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을 거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과제를 처리하는 게 더 이상 막막한 과업이 아니겠죠.


게으름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분들 모두가

단숨에 큰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대신,

작은 실천과 좋은 습관을 하루 하루 쌓아가시며 어제의 나보다 게으름의 농도가 차차 옅어지고,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성실함의 색이 점점 짙어지시길 바라요.


그렇게 한 발 한 발 묵묵히 걸어가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내가 그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긴 그라데이션 박스를 통과해왔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멀리 오게 된 걸, 마침내 원하던 변화를 이루어낸 걸 발견하게 되실 거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1. 게으름을 탈출하고 싶었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