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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 Jan 06. 2020

3. 게으름 탈출 첫 단계-루틴의 중요성


대학 졸업 직후, 마침내 제 손에는 저 혼자 운용하고 관리해야 하는 24시간이 통째로 쥐어졌습니다.

그 때 제게 시간은 말하자면 액체괴물처럼느껴졌습니다.

담고 있는 그릇을 제거하면 바로 흐물흐물 퍼져버리고 마는 묽은 슬라임말이죠.



학교에 다닐 때 내 삶의 밀도가 다른 친구들과 비슷해 보였던 건

알맹이의 밀도가 비슷해서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담겨져 있던 그릇이 비슷했기 때문이란 걸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학교라는 최소한의 틀이 사라진 뒤 시간은 기분 나쁘게 끈적이면서 이리저리 질척거렸습니다.




이렇게요 ㅠㅠ




저는 그걸 전혀 컨트롤할 수가 없었기에 그 앞에서 심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시간은 어쩔 때는 너무 쭈욱 늘어났고, 정작 길게 써야 할 때는 움츠라들어 제 멋대로 뭉쳤으며,

눅눅한 질감의 시간 속에 감싸여 오도가도 못하는 기분의 하루가 반복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상한 질감의 시간 속에서, 무력한 기분으로 사는 느낌이 너무 불쾌해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회피하는 대신

웹서핑처럼 쉬운 소일거리로 시간을 때우며 보내는 하루,

목표를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오늘 또 하루를 보내는 게 목표였던 쳇바퀴 도는 나날.

성취 후 휴식이 아닌 질질 늘어지는 나태만이 반복되었던 시간들.


더는 하루하루를 이렇게 초라한 방식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무기력한 시간에서 탈출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으며, 또한 게으름 탈출의 첫 시작점이 되었던 것은

매일 반복하는 루틴(=고정 일과) 이었습니다!



루틴이 무엇이며, 루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점은 무엇인지는

최근 읽은 책에 좋은 내용이 많아서 인용구를 가져오겠습니다!







이처럼 일상의 선택을 최선은 아니더라도 당히 안정하고 검증된 선택으로 고정해서 반복하는 행동을 '루틴 routine' 이라고 한다.


- 하지현, 고민이 고민입니다. 161p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는 순간 에너지가 쓰이기 시작하고, 뇌의 자동화 과정은 방해를 받는다.(중략) 생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들고, 에너지가 많이 들수록 생각의 속도도 느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루틴과 같은 자동화 과정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 같은 책, 161p



루틴을 많이 만들면 그만큼 여유 공간이 생기고, 그 행동을 할 때에는 뇌가 거의 거저 움직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같은 책, 163p



루틴을 통해 융통성을 포기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것은 뇌의 빈 공간이고, 내적 안정성이다루틴은 내 마음 안에서 동요되는 것을 줄여주는 지지대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 같은 책, 164p







확실히 저도 매일 반복하는 루틴들을 도입한 후 하루의 밀도가 높아졌으며, 그래서 저는 어떠한 루틴들을 가지고 있는지 이제부터 소개할게요.


먼저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저는 루틴을 할 일 단위가 아니라 타이머를 이용해 일정 시간 단위로 구성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의 장점은



1. 기준이 명확해진다 - 예를 들어 '방 청소' 가 루틴이라면, 어느 정도에서 손을 떼야 할 지 애매해지고, 언제 끝날지 모르니 일단 시작을 하기가 좀 싫어집니다. 반면 타이머로 딱 정리시간 15분이라고 설정해두면15분만 끝나면 확실히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맺고 끊음이 확실해집니다.



2. 시작을 하기가 쉽다- 타이머가 시작 신호가 되어주니, 아.. 해야지... 웹툰 하나만 더 보고...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그동안 봤던 책들에서는 습관의 3요소가 신호 - 행동 - 보상 이라고 했는데, 그 중 하나인 신호 체계가 명확히 잡히는 것 같더라구요.





▣ 아침 기상 15분하루 밀도를 좌우하는 15분입니다.눈을 뜨면 바로 타이머부터 맞춰둡니다. 그러면 텐션이 생겨서 재깍재깍 움직이게 됩니다. 그날 그날 약간씩은 다르지만,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이불을 갭니다. 굳이 빡세게 갤 필요 없고 그냥 사각형 모양 되게 4등분으로 개기만 하면 됩니다. 옷을 갈아입고 이불도 갰으니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5분만 더를 외치며 잠들기는 좀 민망합니다.


이제 침대 밖으로 나와 미처 정리가 덜 된 것이 있으면 치우고, 어제 적지 못한 계획 중 갑자기 아침에 떠오른 계획이 있으면 적습니다. 타이머가 끝날 때까지는 절대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습니다. 하다보면 점점 자신에게 맞는 일과가 찾아지는데, 저는 이 시간에 일기를 적는 게 좋더라구요. “오늘 하루도 새 날이다/ 오늘 하루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등의 긍정적인 문장을 적고 나면 확실히 동기부여가 좀 됩니다. 여기에 차/커피 끓여마시기나 음악 듣기, 산책 정도를 추가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귀가 후 15분:집안 더러움 정도를 좌우하는 15분입니다. 이 때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도 집안이 걷잡을 수 없이 더러워지는 일은 없습니다.


15분은 생각보다 긴 시간입니다. 일단 옷부터 걸어놓고, 가방과 잠바 주머니를 바구니에 탈탈 비우고, 손발을 씻습니다. 외출 준비할 때 정리 제대로 안 됐던 부분도 이때 치우구요. 대강의 정리를 마치고 나면, 이제 저녁 시간 동안 뭐 해야 될지 간략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려 둡니다.




▣ 저녁 할일 타임 15분: 이 때 할 일은 고정되어있지 않고, 그 시기에 해야할 일들로 구성합니다.


이 루틴을 도입한 건 정식출판을 준비하면서입니다. 펀딩이 끝난 후 내용을 추가해 정식 책 출간을 준비해야 했지만, 부담감 때문에 한동안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계약금을 받았으니 글은 써야겠죠.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에 조금씩만이라도 써보자! 하고 타이머를 켰습니다. 딱 15분만 쓴 다음에 하고 싶은 거 하자~~ 라고 생각하니 15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이 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시작을 하면 부담감이 사라져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고, 며칠 후 무사히 추가본 원고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요새는 현대사 공부를 하고 있어서, 타이머를 켜두고 부담없이 25분 하고, 하다보면 재밌어져서 조금 더 하고 있습니다.




잠들기 전 15분: 조명을 어둡게 하고(이케아 장스탠드+주홍색 전구 사용), 잠에 들 준비를 합니다. 조명은 수면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때 주로 하는 건 내일 계획 짜기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내일 계획을 미리 안 짜두면, 다음날에 할 일을 방치하고 표류하게 되더라구요.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널부러져 있으면 이것도 치우고요, 특히 저는 책상이 더러워지면 순식간에 방으로 그 더러움이 확산되어서 책상 위를 신경 써서 치워줍니다.


정리와 계획 짜기를 다 하고 나면 남는 시간에 일기 쓰기, 오늘 하루 돌아보기 등등을 합니다. 이랬더니 오늘 하루가 게을러졌다, 이런 면에서 오늘 하루는 잘 보냈다 정도 간단히 적고 나면 좀 잘 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기분 내키면 감사 일기도 간단히 적는데 그러면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생각보다 감사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니다.







루틴을 도입한 후, 제가 체감하는 변화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매일의 고정 일과가 북엔드역할을 해주는 느낌이더라구요. 하루가 균형 잡히고 주기적으로 흘러가게 해주는. 아래 그림처럼, 큰 책장(하루 동안의 시간)에 북엔드(고정 일과)가 하나도 없으면, 책(할 일)들이 자기 마음대로 쓰러집니다. 북엔드를 하나 둘 세워두면 그 사이에서 책들이 균형을 잡고 일어서죠.






주기적인 루틴을 실행하며 자신의 생활을 최적화하다 보면, 결국 같은 일과는 일정한 시간대에 실행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 고정된 루틴은 24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나눠주는 구획이 되고, 다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신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대의 할 일을 기준으로 여러 일과들을 규칙적으로 배열할 수 있게 되고요.



여기서도 한 가지 포인트는,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루틴 여러개를 고정시키려고 하지 마시고, 하다가 무리가 되면 과감하게 시간이나 목표를 하향시키는 것도 좋아요. 저도 위에는 15분이라고 써놨지만 사실 요새는 또 마음이 풀어져서 15분 너무 길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10분 루틴으로 과감하게 바꿨습니다. 게으름 탈출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짧은 기간 빡세게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일이라도 오래오래 꾸준히 지속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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