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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ion Jan 29. 2016

내 인생의 만화

AKIRA

내가
만화가가 될 것이라는
결심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이 있다.


지금에야 그 순간을  '중 2병' 이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부끄러운 단어 하나만으로도 설명 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의 나에게는 성인이 되고 아이를 기르는 지금의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부모님을 따라 여러 지방을 돌아 다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가장 오래 된 소꿉친구가 생겼다. 앞집에 살던 그 친구와 매일 만나서 놀던 유년시절을 지나 중학생이 되고 보니 주위의 친구들은 하나 둘 연예인에 빠져 있었는데, 우리는 연예인이 아닌 만화책에 빠져 마르고 닳도록 만화책을 빌려 보기에 바빳고 유명아이돌의 팬클럽에 참가 하고 왔다며 무용담을 늘어 놓는 친구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만화 행사에 참여하고자 부모님 몰래 서울행 기차표를 끊어보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그 때 연예인에 빠졌더라면 이렇게 아이가 생긴 다 늙은 아줌마가 되어서까지 만화에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며 소꿉친구와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한다.


어찌되었든.

그 시절에 이렇다 할 만화책은 소꿉친구와 함께 닥치는대로 읽었더랬다.

읽다보니 점점 이야기와 그림체에 반해 상상만으로 이루어지는 그 세계에 빠져들어 급기야 내가 직접 상상의 인물들을 현실로 불러 내 오고 싶다는 욕심에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휩쓸린.

말 그대로 중2병이 온 것이다.


명문대에 합격을 하려면 그 누군가의 유행어처럼 가장 표준의 교과서로 국영수에 열중해야한다던 그 시절의 유행어처럼 만화를 그릴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보고 따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떤 이의 충고에 성문기본영어이자 수학의 정석과도 같은 만화를 소개받게 된다.


 그 이름하여 나에게 있어 인생을 바꾼 명작중의 명작 'AKIRA'


그 모든 선이 사람의 것이라는 말에
나는 그대로 이 만화에
빠져들었다.


좋아하니까 당연하게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에 가지고있던 용돈을 탈탈 털어 관련된 잡지와 만화책을 사서 읽고 그려보기를 무려 고등학교 3학년 에 진학 할 때 까지 지속했는데, 그 문제로 부모님과도 참 많은 마찰이 있었다.

세기말적인 내용을 묘사하고있는 이 만화의 분위기가 그 당시의 나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듯한 착각에 '나는 만화가 좋으니 만화만 그리면서 살고싶다'라고 외치며 이 만화책을 말 그대로 씹어먹을 정도로(?) 읽고 또 읽고 베껴그렸다.





이토록 뜨겁던 사춘기를 지나 만화와 비슷한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의 회유책으로 서울로 떠밀려 가듯 유학을 왔다.

처음으로 혼자 내 던져진 낯선 곳에서 어린아이처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늘 좌절에 지친 마음을 이끌고 작은 반지하 단칸방으로 숨어들어 그 때마다 작은 자취방에 틀어박혀 사춘기 시절의 원동력이었던 만화를 읽을때면 뜨거운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힘을 얻어 자취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무수한 펜선들에게 위로 받으면서 나의 멘탈은 점점 더 단단해 졌지만 그의 반작용만큼 만화를 그리겠다던 의지는 점차 옅어져 못내 아쉬운 마음에 그 열정은 미련으로 남아 만화책을 읽고 수집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며 스스로를 달래기에 이르러 지금의 나에게로 도착 한 것이다.



지금은 만화가의 길에서는
한참 멀어졌지만
아직도
나의 마음 가장 아랫부분에서
중심을 지키고 있는 작품이 되었다.


요즘도 종종 부모님은 나에게 '어린애들이 보는 그 것(부모님에게 만화는 여전히 금기된 단어인 듯하다.) 여태 보고있냐'며 넌지시 물어 오신다. 그 질문에 늘 그렇게 해 왔듯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보이는 것으로 부모님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을 마무리한다.


전통회화를 전공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도 나는 아직도 만화책을 읽는다.

작품을 만드는 섬세한 감성을 만화적인 그 어떤 유치함으로라도 유지하고 싶다는 큰 희망사항 때문이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만화' 인 것 을 몸소 실천이라도 하듯 미술사적인 기법과 표현보다 만화적인 표현으로 작업을 하고있으니 말이다.


내 인생은 만화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로 크게 나뉘어졌다.


지금에서야 의연한 어른의 모습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 속 깊은 바닥에 숨겨 둔 동심이 자리잡고 있고, 이 무거운 돌은 오뚜기 인형의 추와 같이 나를 흔들리고 다시 중심을 잡게 해 줄 것이다.




AKIRA                                                                                                           오토모 가츠히로가 창작한 일본의 만화로 고단샤가 발행한 만화잡지 주간 영 매거진에서 연재되었다.(1982-1990) 애니메이션 영화화(1988년)및 게임화도 되었다.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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