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dion Apr 02. 2016

영원한충격

에반게리온

갑작스럽게


한가로운 주말 오후 아이를 재우고  겨우 피곤한 몸을 기대 무심히 티비 채널을 돌리다 '퍼시픽 림' 이라는 영화가 나오던 그 날.

줄곧 남들에게 쉽게 내비치지 못한 나의 가장 큰 비밀을 남편에게 고백을 한 것이다.



그 어떤 남자가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만화에 미쳐있는 오타쿠 일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요즘은 '덕후'라는 단어가 생겨 자신이 어딘가 한 가지 일에 매료되어 빠져있다 라는 것을 ㅇㅇ덕후 라고 수줍게 밝힐 수 있게 되었지만, 오타쿠=변태 의 공식이 당연시 여겨지던 시기의 나는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지 않았던터라 그저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취미생활 정도로만 이야기 하는데 익숙해졌다.

남편을 만나 연애하는 동안에도 기회가 생기지 않았을 뿐 더러 먼저 이야기를 할 생각조차 하지도 못했는데 결혼 하고 한 참이 지난 후에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아주 자연스럽고도 갑작스럽게 스스로 오타쿠 임을 밝힌 것이다. 이럴수가!





충격에 충격을 안긴


중학교를 다닐 무렵.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새로운 만화가 연재된다기에 확인해 보자며 만화대여점 한켠에 서서 펼쳐 본 이 만화는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부터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여자아이에게도 이토록 매력적으로 보여지는 로봇이라니. 심지어 기존의 로봇을 타는 주인공과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의 나약한 주인공이라니. 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볼 수 없었고 접해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구성에 단숨에 머리속에 새기듯이 읽어 가며 자연스럽게 어떠한 영역으로 자각하지도 못한 채 빠져들었다.


불꽃같은 사춘기를 지나고 정신이 들고 보니 주위의 다른사람들은 나만큼 만화에 빠져있지 않았기에 남들과 달라 보이는 것이 두려워 그저 평범한 여대생으로 지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그런 한편으로 강한 팬심이 휘몰아치는 저 깊은 곳의 욕망은 멈출 줄 몰라 이 만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탐구해 학교를 졸업하는 것 보다도 더 진지하게 파고 들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열정적이지 못해 그저 이 만화에 대해 한 편의 책. 혹은 논문을 쓸 수 있을정도로 연구하고 탐구하는 많은 열성 팬들의 글을 기웃거리며 탐독하는것으로 밑바닥에 남아있는 먼지를 쓸어모으듯 마음을 다독이지만 관련된 글을 읽을 때 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를정도로 기쁘고 흥분이 가시질 않는다.





한동안
머리속에 강하게 남아있던
추억이 되살아 나듯
다시 돌아왔다.


다시 돌아와 퍼시픽 림 이라는 영화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는가를 나도모르게 줄줄 읊어대는 모습에 남편이 내 이야기에 집중을 하며 바닥에 누워있다 벌떡 일어나 앉는 것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여자사람코스프레'를 하던 나의 민낯을 본 남편은 내 걱정과는 달리 환하게 웃으며 그럼 그 만화를 다시 한 번 더 보자. 열정에 불을 붙이라며 당장 만화책을 주문했다.


다행히 남편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에 빠져 생업을 이루고 있는 성공한 덕후(!) 인 덕분에 만화에 빠진 내 모습은 그저 취미에 열성적인 모습으로 보인 것인지 나에게는 나름의 충격적인 덕민아웃에도 그다지 놀라워 하지는 않았고. 나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 다는 것에 안심을 하면서도 어쩐지 김이 샌 듯 허탈한 마음이 들어 다시 만화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무심한 듯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는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 이 만화는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는 탓에 사골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광적인 팬심이라는 것을 각성하게 만들어 그것을 당당하게 밝히게 만들어준 만화다.


아직도 제목만으로도 전율이 흐르고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봐도 빠져들게 만드는 강한 매력의 이 만화는 이렇게 또 한명의 팬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 놀랍고 충격적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 1995년 10월에 방영을 시작해, 상업적·비평적면에서 대성공을 거둔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이다. TV 및 극장판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만화 잡지 《월간 소년 에이스》(가도카와 쇼텐)를 통해 만화로도 연재되고 있다.애니메이션을 각색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의 기획, 각본 등을 토대로 한 독자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 외에 외전 격으로 출판된 여러 만화, 게임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게임, DVD 등이 제작되고 있다. -위키백과
작가의 이전글 상처받은 사람. 여기로 오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