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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n 21. 2022

영화관에서 생긴 일



퇴근한 남편과 영화 <마녀 2>를 보러 간 날.

코로나 이전에는 한산하고 영화비가 싼 조조 영화를 주로 봤는데 요즘은 조조도 싸질 않으니 볼 영화도 많지 않지만 선뜻 영화관을 가게 되지 않는다. 마침 남편 통신사 프로모션으로 1+1 행사가 있어 평일 야간 시간대 영화를 예매. 코로나로 억눌렸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에 비하면 아직 영화관은 한산해 보였다.


가운데 자리를 예매한 우리.

영화 시작 전 일찌감치 자리 잡고 앉아 저녁 대신 팝콘을 흡입하고 있는데 영화 시작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50대 중년 부부가 들어왔다.

잠시 뒤 우리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저기.. 여기 우리 자리인데..”

이미 두 청년이 자리 잡고 앉아있는 자리 옆에서 아저씨가 약간 짜증이 묻은 어투로 말씀하셨다.

“어.. 저희 자리 여기 맞는데..”

껄렁하게 앉아 있던 태도와는 다르게 말씨는 참 조신한 청년들.

“H6,7 우리 자리 맞는데..”

“저희 자리도 H6,7 인데.. 5관 맞으세요?”

“5관 맞아요.”

“이상하네. 시간이 저희는 8:40분인데 여긴 45분으로 되어 있네요.”

“이상하네.”

“물어보셔야 할 것 같은데..”

청년들의 표와 자신의 표를 나란히 들고 한참을 비교해보시던 아저씨는 못내 찜찜하신 눈치였다. 내 자리인데 너네가 앉아 있어서 기분 나쁘다는 생각이 말투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꼰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였다. 아저씨의 말투에는 아들뻘 되는 청년들에게 못마땅해하는 생각에 드러나 있었다. 뭐가? 나이가 많으니 당연히 대우받아야 한다는 건가? 같은 표가 발급될 일은 없지만 만일 발급되었다 해도 같은 자리표니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인 건데 마치 어른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듯한 뉘앙스가 폴폴 풍기는 아저씨의 말투는 옆에서 내가 듣기에도 못내 기분이 상했다.


입구에서 표를 검사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인데 홍대 롯데시네마는 자율 입장을 한다며 표검사를 따로 하지 않았다. 자율 맞나? 알바 부족으로 그런 건가 싶기도..


결국 옆에 계시던 아줌마가 “자리도 많은데 그냥 빈자리에 앉아서 봐요.”라고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그리고 두 분은 하고 많은 빈자리 중 두 청년이 앉아 있는 옆자리로 들어가 앉으셨다. 자신들의 자리를 청년들에게 빼앗겼다(?)는 찜찜함에 대한 시위일지도. 참 속도 좁지.

아저씨 못지않게 청년들도 찜찜하긴 마찬가지. 옷 입은 모습이나 앉아 있던 자세로 봐선 아저씨께 뭐라고 대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착한 청년들은 도리어 당당하게 옆에 앉는 아저씨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 자리 내놔.’의 몸짓으로 청년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갑자기 표를 보며 말씀하셨다.

“근데 오늘이 금요일이지?”

순간 청년들과 난 동시에 외쳤다.

“목요일이요!!!”

청년은 그렇다 치고 난 왜? ㅋㅋ

당황한 아저씨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금요일 아니야? 이상하네. 내가 예매할 땐 분명 목요일이었는데..”

그러자 옆에 아줌마 “난 내일 못 오는데 어떻게 해?”

아줌마의 눈총과 청년들에게 꼰대 노릇 한 게 무안해진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며 말씀하셨다.

“뭐 내일 안 보고 오늘 보면 되지. 자리도 많은데..”



그리고 잠시 뒤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여기 까맣게 표시된 좌석은 이미 예매가 된 좌석이거든요. 이 좌석들만 피해 앉으시면 되는데 지금 자리는 예매되어 있는 자리라 다른 곳으로 옮기셔야 할 것 같아요.”

핸드폰으로 예매된 좌석표를 보여주는 청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자리의 주인이 들어왔고 중년부부는 청년 덕분에 또 한 번의 멋쩍음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뉴스에서 혹은 주변에서 종종 “요즘 애들은..”이라는 한숨 섞인 소리를 들었었다. 버릇없고 이기적이고 생각 없고.. 등등. 오늘 내가  청년들은 버릇없고 이기적이고 생각 없지 않았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세상이 얼마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새삼   있었다. 버릇없고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요즘 애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갈라 치기 하는 버릇없고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요즘 어른들이 만든 아주 작은 세상의 일부분인 것을.. 결국 문제는  그렇듯 요즘 애들이 아니라 어른이라 믿는 우리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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