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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Feb 01. 2023

46일 차 : 장해출생 보험금을 받다.

50일 사진도 찍기 전에 엑스레이가 웬 말...

출산을 앞두고 가장 걱정했던 것은 와이프의 건강이었다. 신생아는 100일까지는 크게 아프지도 않고, 되려 산모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100일까지는 외출도 어려워서 산모가 집에만 있으니 갑갑한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이를 낳고 나니 하루 걸러 하루가 외출이다. 게다가 다 병원 진료.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내가 힘든 건 둘째치고 이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아이의 조리원 퇴소 이후 첫 병원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코로나 확진이 되었고, 아이도 콧물과 기침, 가래가 심상치 않아서 소아과를 방문한 것이 첫 방문이었다. 그리고 배꼽이 늦게 떨어져 매주 배꼽 소독을 위해서 병원을 찾았다. 사실 이런 것들은 집 근처 소아과 병원에 가는 것이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정작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출산 병원에 딸린 소아과에서 적어준 진료 의뢰서를 들고 가야 하는 이른바 큰, 종합병원 방문이었다. 미리 날짜를 예약하면서도 정말 이 피붙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이가 봐야 할 진료는 총 3가지였다. 심장 잡음, 딤플, 고관절 탈구가 그것이었다. 하루에 3가지를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하루에 1가지씩 총 세 번을 방문해야 했다. 세 번 다 아산병원에 방문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힘든 일이 될 것 같아서 우선 가장 중요한 심장 잡음은 아산병원으로 예약을 하고, 나머지 딤플과 고관절 탈구는 집 근처 상급병원으로 예약을 하였다. 최대한 간격을 길게 두었는데, 코로나 확진으로 병원 진료가 한 번 연기되면서 이틀 간격으로 병원을 두 번이나 가야 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게다가 이모님도 안 계시는 주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병원에 방문하는 날짜가 되었다. 첫 방문 목적은 딤플. 엉덩이 위쪽 꼬리뼈 쪽에 움푹 파인 보조개가 있고, 그 주변으로 털이 많이 자라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경우 뇌 척수액이 흘러서 보행 장애에도 이를 수 있다고 하니, 최대한 어릴 때 초음파를 통해서 확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몇 달만 지나면 뼈가 굳어서 MRI로 확인해야 한다니 시간이 생명이었다. 이 날이 영하 18도,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하필 산후 도우미 이모님도 집에 사정이 있어서 오지 못하셨다.


출산 휴가 중인 나와 와이프가 아이를 데려갔는데, 의사의 반응이 충격이었다. 육안으로 괜찮아 보이는데, 초음파를 보고 싶으면 3월 이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이럴 거면 미리 예약은 왜 한 거지 싶고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알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소아과에서 딤플 초음파를 봐준다는 것이 기억나서 전화를 하고 방문했다. 이것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신뢰도 0%의 소아과 의사는 딤플은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초음파 기계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환자 앞에서 구글로 검색해가면서 진단한 것이긴 하지만 일단 믿어 보기로 했다.


이틀 뒤에는 아산병원에 갔다. 아산병원은 전날 미리 진료시간과 필요시 초음파를 찍을 수 있고, 이 경우에 몇 시에 초음파를 찍는다는 것까지 확정된 스케줄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사람들이 왜 아이가 아프면 아산병원부터 가라고 하는지 방문도 하기 전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10시 반 정도에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하고, 1시경 엑스레이를 찍고, 1시 30분경에 초음파를 찍었다. 2시쯤에 와이프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50일이 다 되어가는 날까지 잡음이 들리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진단명은 심방중격결손과 폐동맥 협착증이라고 했다. 드문 것은 아니고, 아이들 중에서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미리 검색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크면서 자연적으로 메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지켜보자고 했단다. 그래서 1년 뒤에 추적 관찰을 위해서 진료 예약을 하고, 진단서와 세부 내역서 등등을 뽑아서 병원을 빠져나온 것이 3시쯤 되었다. 밤새 아이를 보고 하루 종일 병원을 쫓아다닌 와이프는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아산병원은 어린이 병원이 따로 있고, 소아 전문 응급실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픈 아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어린이 병원에서도 외래 진료가 아니라 입원 중인 아이들이 침대채 옮겨져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특히나 마음이 아팠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아이가 아픈 것이 보는 게 가장 힘이 든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보험사에 연락하니 심방중격결손은 장해출생에 해당되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치료비 실손 보장과 별개로 말이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 사실을 듣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애써 큰 일 아닌, 어느 아이나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별 다를 것 없는 증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돈을 준다니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 제법 큰 문제가 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돈을 받으면서 기분이 이렇게 찝찝하기는 또 처음이었다. 안 아프고 안 받는 게 백 번 낫다. 


다음 주는 고관절 때문에 또 병원에 간다. 엄마 뱃속에서 역아로 오래 있었고, 첫째에 여자 아이라 고관절 이형성증의 위험 요인이 높다는 것이 이유다. 집 근처 상급병원이라 아마도 당일은 진료만 보고, 초음파는 3월 이후에 오라고 할 확률이 높다.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다. 산부인과에서는 조금만 의심이 되어도 진료 의뢰서를 써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괜히 책임 소재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조기에 발견했을 때 치료의 용이성에 비해 늦게 발견했을 때의 불편이 훨씬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원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대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딤플 같은 경우는 과거라면 그냥 무던하게 넘어갔을 것 같고, 고관절도 당장 아이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 같다. 심장도 단순히 문제가 있으니 추적관찰을 하자는 정도에서 요즘은 구멍의 크기가 얼마고, 동맥의 협착 정도가 얼만지 수치까지 확인해서 비교하고 검토하는 세상이 되었다. 꼼꼼하게 아이의 건강을 점검하고 미리 질환을 예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거기에 불안이 늘 같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나 같은 자가진단명 불안장애인 사람들은 그 순간순간을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가 건강해지고 튼튼해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혹시...'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끼어든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오늘도 천사 같은 얼굴로 아빠의 품에서 곤히 잠이 든다. 한 없이 이쁘고 아름다운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조마조마한 이 기분. 이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가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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