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사진도 찍기 전에 엑스레이가 웬 말...
아이가 봐야 할 진료는 총 3가지였다. 심장 잡음, 딤플, 고관절 탈구가 그것이었다. 하루에 3가지를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하루에 1가지씩 총 세 번을 방문해야 했다. 세 번 다 아산병원에 방문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힘든 일이 될 것 같아서 우선 가장 중요한 심장 잡음은 아산병원으로 예약을 하고, 나머지 딤플과 고관절 탈구는 집 근처 상급병원으로 예약을 하였다. 최대한 간격을 길게 두었는데, 코로나 확진으로 병원 진료가 한 번 연기되면서 이틀 간격으로 병원을 두 번이나 가야 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게다가 이모님도 안 계시는 주에.
진단명은 심방중격결손과 폐동맥 협착증이라고 했다. 드문 것은 아니고, 아이들 중에서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미리 검색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크면서 자연적으로 메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지켜보자고 했단다. 그래서 1년 뒤에 추적 관찰을 위해서 진료 예약을 하고, 진단서와 세부 내역서 등등을 뽑아서 병원을 빠져나온 것이 3시쯤 되었다. 밤새 아이를 보고 하루 종일 병원을 쫓아다닌 와이프는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아산병원은 어린이 병원이 따로 있고, 소아 전문 응급실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픈 아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어린이 병원에서도 외래 진료가 아니라 입원 중인 아이들이 침대채 옮겨져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특히나 마음이 아팠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아이가 아픈 것이 보는 게 가장 힘이 든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보험사에 연락하니 심방중격결손은 장해출생에 해당되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치료비 실손 보장과 별개로 말이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 사실을 듣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애써 큰 일 아닌, 어느 아이나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별 다를 것 없는 증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돈을 준다니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 제법 큰 문제가 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돈을 받으면서 기분이 이렇게 찝찝하기는 또 처음이었다. 안 아프고 안 받는 게 백 번 낫다.
다음 주는 고관절 때문에 또 병원에 간다. 엄마 뱃속에서 역아로 오래 있었고, 첫째에 여자 아이라 고관절 이형성증의 위험 요인이 높다는 것이 이유다. 집 근처 상급병원이라 아마도 당일은 진료만 보고, 초음파는 3월 이후에 오라고 할 확률이 높다.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다. 산부인과에서는 조금만 의심이 되어도 진료 의뢰서를 써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괜히 책임 소재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조기에 발견했을 때 치료의 용이성에 비해 늦게 발견했을 때의 불편이 훨씬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원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대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딤플 같은 경우는 과거라면 그냥 무던하게 넘어갔을 것 같고, 고관절도 당장 아이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 같다. 심장도 단순히 문제가 있으니 추적관찰을 하자는 정도에서 요즘은 구멍의 크기가 얼마고, 동맥의 협착 정도가 얼만지 수치까지 확인해서 비교하고 검토하는 세상이 되었다. 꼼꼼하게 아이의 건강을 점검하고 미리 질환을 예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거기에 불안이 늘 같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나 같은 자가진단명 불안장애인 사람들은 그 순간순간을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가 건강해지고 튼튼해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혹시...'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끼어든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오늘도 천사 같은 얼굴로 아빠의 품에서 곤히 잠이 든다. 한 없이 이쁘고 아름다운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조마조마한 이 기분. 이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가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