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부모님이 오셨다. 와이프 힘든데 부담 주기 싫다며 당일로 아이만 잠깐 보고 가시겠다고 했다. 집 근처 숙소를 잡아드린다고 몇 번을 권했는데 극구 사양하시고 결국 당일치기로 아이를 보고 가셨다. 그러면서 자꾸 아기에게 정 붙이면 안 된다고 하셨다. 오다 주웠다며 무심하게 선물을 건네는 부산 사람들 특유의 반어적인 표현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이쁜 손녀딸을 당일로 몇 시간만 보고 가신다는 게 내심 섭섭해서였다.
수서역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왔다. 거실에 잠깐 계시라 하고 아기를 방에서 데려 나오니 정 붙이면 안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눈에서 꿀이 떨어지신다. 아니 이렇게 좋아하실 거면서 왜 그러신 거지? 나도 부산 사람이지만 참 부산 사람들은 정말 신기하다. 엄마는 품에 아기를 안고서도 연신 정 붙이면 안 되는 데를 반복한다. 나는 그럴수록 더더욱 부모님 품에 아이를 안겨 드렸다. 아버지는 결국 아기 분유까지 먹이시고서 다시 서울로 내려가시게 되었다.
배웅하러 같이 나간 수서역에서 기차를 타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마음이 짠했다. 대학부터 서울에 올라와 자취생활을 시작한 나는 저 뒷모습을 수백 번도 넘게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기분이 참 이상했다.
큰 조카는 부모님과 지근거리에 산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그 외에도 수시로 교류를 하면서 지낸다. 벌써 7살이 된 조카의 모든 성장 순간을 옆에서 함께 하신 셈이다. 그런데 우리 딸은 그 정도의 가까운 교류를 하면서 지낼 수가 없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에게 지난 20년간 그런 존재였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자주 볼 수 없고, 연락도 잘하지 않는 괘씸한 아들. 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상처도 클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그 마음이 너무 아픈 줄을 못난 아들 덕분에 이미 잘 알고 계셔서, 손녀딸을 보면서 정 붙이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결국 다 철없는 나의 업보였다. 자식을 낳아보니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참으로 실감 났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