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아이가 태어나고, 연초에 회사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고 느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참고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잘 알던 분께서 제의를 주셨고, 그래서 이직을 했다. 과거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지만, 보고서 쓰는 일이 또 어느 곳에 가져다 놔도 대충 어울리는 일이다 보니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있다.
입사 십 년이 넘어서 첫 이직이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다. 일도 새로운데, 업무 절차나 시스템도 새로우니까 하루아침에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느낌도 든다. 그래도 주변에서 잘 도와주어서 어떻게 꾸역꾸역 하고 있다. 업무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이직을 결심했던 이유 중에서는 업무에 대한 만족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마음에 드는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동기부여도 잘 되고, 하나를 해도 즐겁게 하는 것 같다.
새로운 곳에 와서 과거의 업무를 떠올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회사에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거의 5년 정도를 매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했음에도 소위 말하는 성과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경영진의 반복되는 뻔한 레토릭에 염증을 느꼈고, 새로운 리더가 와서 새롭게 시작하는 상황에서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 생각되지만 나는 그 과정에 함께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고 느꼈다.
새로운 회사는 눈에 보이는 일을 한다. 주기적으로 일이 반복되고, 잘했든 못했든 끝이 난다. 그러니 명쾌하다. 매듭이 지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직을 했을 때 과거의 십 년 치 일들에서 해방되었다는 기분이 얼마나 후련하고 나를 행복하게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은 누군가에겐 다 지나간 일들이었겠지만, 나에겐 끝나지 않는 일기나 방학숙제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달려 있던 것들이었다. 커다란 가위로 그 일들을 잘라내는 기분이란.
또 하나 느낀 것은 선택의 힘이었다. 지금의 회사도 완벽한 회사는 아니다. 분명 누가 봐도 명백한 단점이 있다. 실제로 이 회사에 재직 중인 사람들에게 이직 전에 물어보니, 모두가 다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 단점이 이직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회사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저울에 올려 비교했을 때 장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직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 단점을 알고, 감수했다는 뜻이었다. 그 회사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 단점을 받아들였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단점을 잘 마주하고 있다.
이직하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육아와 회사에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여유가 생겨 글을 쓴다. 앞으로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서 종종 글을 써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