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어느덧 15개월이 되었다. 문득 사진을 찍다가 이제는 어린이 같다는 생각에 놀라곤 한다. 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실제로 그렇다. 우리 아기는 키와 체중이 백분위에서 99로, 24개월에서 30개월의 아기들의 평균 키와 체중과 같은 수준이다. 그러니까, 진짜로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로 빨리 큰 것이다.
가장 많이 체감이 되는 순간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갔을 때다. 우리 아기보다 한참 작고 가냘픈 아기들이 쇼핑몰을 뛰어다니고 조잘조잘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게다가 당연히 우리 아기가 언니일 것이라 생각하고 개월 수를 물어보는 분들에게 15개월이라는 대답을 드리면 그분들은 더 깜짝 놀라곤 한다.
12월에 태어난 아기라, 사실 1월에 태어난 아기들과 같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보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부담은 모두 지우게 되었다. 적어도 외형으로는 같은 학급의 그 누구와도 뒤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바람은 그저 덩치 큰 레트리버처럼 유순하게 잘 어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아빠인 나도 키가 매우 큰 편이지만, 우리 아기의 엄청난 볼륨에는 엄마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 엄마는 이제와서는 아주 평범한 신체 사이즈를 지닌 대한민국 평균 여성인데,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돌 즈음의 아기 사진을 보고 다 큰 성인이 위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와이프의 어릴 때 사진을 보고 느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지금 우리 아기는 귀엽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우리 아기는 매우 건강하게 그리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몸이 크니까 그런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양을 먹고 있는데, 가끔은 아빠인 나보다 더 많이 먹는 느낌이라 좀 무서울 때가 있다. 저녁을 말도 안 되게 먹고 나서 자기 전에 자꾸 먹을 것을 찾는 다던가 하면 약간 소름이 돋는다.
지난 5월에 이직하고 회사 일이 바빠서 주중에 자주 못보다 보니, 이런 성장 속도는 아빠에게는 너무나 슬픈 일이다. 작고 앙증맞고 귀여운 시간이 참으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며칠 못보다 얼굴을 보면 매번 얼굴이 달라져 있다. 하루하루 큰다는 것이 참 행복하면서도 슬픈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가끔 사진첩에서 보이는 앙증맞은 모습들이 그립다.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를 알면서도, 그게 참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나이 먹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이는 두배로 크고 나는 그만큼 빨리 늙는다. 사실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저 행하는 단순함에서 오는 것 같다.
늘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밖에서 찾지만, 사실은 자잘한 욕심들을 현실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고 끝까지 놓지 못하는 내가 불행의 시작이자 끝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