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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연 Mar 11. 2019

착한 사람 콤플렉스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

나는 나의 우뇌가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감성적인 부분 혹은 창의적인 부분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양손을 깍지를 꼈을 때, 왼손의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면 우뇌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면 좌뇌가 더 발달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뒤로 나는 왼손을 위로 올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깍지를 끼곤 했던 것 같다. 우습게도 나는 원래 어떻게 깍지를 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소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이과생이고, 지극히 이성적으로 좌뇌만 운동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나는 숫자를 참 잘 기억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어떤 문제의 상황에 있을 때, 지극히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만큼.

한 번은 아프리카 여행을 가는 길이었다. 영국에 잠깐 들러서 일행들이 합류하여 함께 아프리카로 가는 코스였는데,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영국에 있는 친구들과 반갑게 만나다가 내 중요품(여권, 스마트폰, 지갑 등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내가 가방을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런던 시내로 이동하다가 트렁크에도 다른 차에도 내 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시내 숙소에 도착해서야 인지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내 머리는 재빨리 대책을 세우고 있었고, 나의 너무 태연한 모습에 일행들이 오히려 더 당황스러워했었다. 정말 다행히 다시 히드로 공항에 가서 나는 가방을 찾았다. 세계 각국의 사람이 넘치고 소매치기들도 넘치는 그곳에서 나의 가방은 벤치에 가만히 놓여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신기해했다. 가방을 찾은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여권 재발급받을 생각하고, 황열병 예방 접종 카드는 재발급이 어려우니 아프리카를 갈 수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던 나한테 다시 한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나의 좌뇌 활약에 친구들은 나에게 항상 '멘탈 갑'이라 칭했고, 이는 이번 상황(이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도 나는 스스로를 너무 객관화시키고 있었다. 이혼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살 수 있었을까. 내가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인 건가. 내가 너무 참다가 한 번에 폭발한 것은 아닐까.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혼한 사실을 말해야 할까. 나를 혹시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내가 남이었다면 나를 어떻게 볼까. 등등 수많은 '~까?' 앞에 나를 몰아세우고, 나의 전 남편과 전 시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생각하며 또다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것은 병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며,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가 만들어 놓은 룰에 내가 갇혀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병. 그동안은 이 룰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니 큰 갈등으로 번지지도 않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결혼생활에서 나타난 다름은 틀림으로 느껴졌고, 가족인 이상 외면할 수 조차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헤어졌음에도 나는 또다시 그 룰에 나를 넣고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


나의 이런 괴로움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 나의 부모님은 "상대방까지 생각할게 뭐 있어. 이럴 땐 너만 생각해.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라고 하셨다. 맞다. 나는 지금 '비상 상황'이다.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 봤자 이미 다 끝난 일이고, 그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를 위해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워하지는 않아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까지는 없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괴롭다면 말이다.


 



이혼하는 과정 중에 부부상담 클리닉을 받은 적이 있다.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면 최대한 노력해보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상담 중에 개인 상담을 각자 진행했는데(사실 이 개인 상담까지만 진행하고 상담을 중단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람들과의 갈등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최대한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는 내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 선만 지켜준다면 나는 다 웃는 얼굴로 받아줄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 착한 사람이려고 했을까. 왜 내가 불편한 것은 외면하고 그냥 괜찮다고만 생각하려 했을까. 왜 그렇게 웃고만 있었을까.

가끔은 조금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쌓아만 놓다가 폭발해버리느니, 가끔 그냥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런 부분이 있는 거니까. 나한테는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자. 적어도 '비상 상황'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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