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타이밍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고추멸치조림
**재료
매운(or)일반고추 : 먹을 만큼
중간 크기 멸치 : 고추랑 비슷하게
간장 : 적당히
설탕 : 조금 (기호에 따라 물엿이나 올리고당을 써도 무관하다)
물 : 간장보다 좀 더 많이
깨 : 솔솔솔
**소요시간 : 대략 50분
후식
#아궁이에 구운 군고구마
#엄마표 식혜
요즘처럼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뜨끈한 쌀밥이 유난히 그리워진다. 그리고 이 쌀밥에 궁합 좋은 반찬은 짭쪼름한 간장조림 반찬들이 아닐는지.
그중에서도 특히 고추멸치조림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특별히 다른 반찬이 없어도 초라하지 않고, 구운 김이나 김치를 만나면 입안을 휘젓는 환장의 콤비가 된다.
엄마의 생일.
생일상 위에 고추멸치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우리집은 매운고추를 사용한다.) 화려한 자태의 갈비와 형형색색 컬러의 샐러드와 얌전하게 누운 배추김치 사이로, 조금은 촌스럽고 투박한 모양의 녀석이 식탁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어찌나 다정해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고추멸치조림부터 집어 들고야 말았다.
"딸 그거 맛있지~."
"응. 엄청 반가워, 이거."
"너 그거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
"글쎄, 한 15분?"
엄마는 어림 없다는 듯 웃었다.
"50분 걸려 이것아."
"에...에??"
별 것도 아닌 듯, 생기다 만 것이... 50분이나 걸리다니.
"처음에 고추 넣고 간장이랑 물이랑 설탕 조금 넣고 한 30분 졸여. 그 다음에 자잘한 거 말고, 중간쯤 되는 멸치를 넣고 다시 한 20분 졸여. 그러면 고추가 쫀득쫀득해져."
돈 값, 아니 '시간 값'을 하는구나 싶다. 괜히 맛이 있는 게 아니었다. 50분이나 이렇게 한 공간에서 눈빛과 맛을 교환하고 있으니 맛이 없을 리가 있나. 맛이 없는 게 이상한 거다.
50분 간 불 위에 올라간 고추는 간장과 설탕과 물을 만나 맛을 교환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멸치에 다시 한 번 맛과 향을 교환한다.
누군가와 만남도 이런 것이 아닐까.
만남의 축복.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이렇게 부른다.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을 교환하고 나누는 것.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시간이 씁쓸한 쓴 맛일수도, 환희에 찬 천상의 맛일수도,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찝찌름한 맛일수도 있으니까.
"아~. 연애하고 싶다. 올해도 끝났네. 망했어..."
절레절레.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이 문장을 달고 사는 그녀를 볼 때 반응이다. 올해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망했'다는 표현을 이렇게 서슴없이 쓰는 걸까.
"기다려. 때가 되면 나타난다."
"지금까지 기다렸거든?"
"원래 기다림이 길수록 맛은 깊어지고 열매는 커지는 법이야."
"또 도인 같은 소리한다."
피식, 이 순간 고추멸치조림이 생각난 건 왜일까.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고추가 마른 햇볕에 뽀송하게 커가는 시간, 멸치가 어부의 손에 매달려 젖은 몸을 해풍에 말리는 시간, 들판의 깨가 묵직한 고소함으로 물드는 시간, 설탕이 졸아들고 몸을 태워 녹아드는 시간, 콩이 익어 검은 빛 액체로 짠맛을 입히는 시간.
하물며 사람인데 말이다.
수 년을 살아온, 내 몸에 적히고 새겨진 일기들을 짜내고 뽑아내서 상대와 맞교환 하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육지의 고추가 바다의 멸치를 만나는 시간을 더하고, 다시 또 육지의 모든 재료들이 양념이 되어 또 다른 것들과 섞이는 시간만큼일까.
모든 한상이 차려져 입안에 퍼지는 향연들처럼, 모든 만남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내가 무르익고 상대가 무르익어,
나의 향과 맛이, 저쪽에도 달큰하게 물드는 시간이.
[고추멸치조림 일러두기]
1. 짜게 먹고 싶은 사람은 간장 비율을 높이자.
2. 여기에서 '조금'은 1티스푼이 될 수도, 1큰술이 될 수도 있다. 기호에 맞춰, 선호에 맞춰 바꿔도 좋다.
3. 어느 계절에나 다 잘 어울리는 반찬이다.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꺼내어 즐길 수 있다. (특히 입맛 없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