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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주 Oct 28. 2022

#2. 미역이 바다를 품을 때

-나를 위로하는 음식

                                            [오늘의 레시피]


미역국

**재료 (1인분 기준)

미역 : 자기 양에 맞춰서

들기름 : 한바퀴 휘이

마늘 : 밥숟갈로 반만

국간장 or 조선간장 : 쪼로록

굵은 소금 : 식성에 맞게 간 조절


**부속재료

소고기, 전복, 바지락, 흰살 생선 : 기호에 따라 선택


**소요시간 : 대략 20-30분


후식

                                            #생일 케이크와 커피

생일날 아침.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둔 핸드폰에서 지잉 지잉, 지이이잉. 멈추지 않는 진동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침부터 이게 웬 난린가 싶었던 거다.


[카00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00님께서 선물을 보냈습니다]


각종 기프트콘 선물 폭탄과 함께,


"내 딸, 생일 축하하고~. 사랑한다."

"쭈! 생일 축하해~."

"사랑하는 친구야, 올해도 살아 있는 너에게 축복을!"

"오늘 파티 알지?"


생일 축하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맞다, 내 생일이었지. 눈물이 왈칵하고 감동이 밀려들었다. sns에 생일 표시를 해놓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니.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들 때였다. 핸드폰 진동이 또 한 번 울렸다. 발신자는 스승님이었다.


"오늘 뭐해?"

"저녁에는 친구들 만나고 낮에는 뭐 없어요."

"그래? 그럼 점심 먹자!"

지인들과 함께 간 곳은 미역국 전문점이었다. 미역국 전문점이라니. 미역국처럼 접하기 쉬운 메뉴도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에 코웃음이라도 치듯 미역국 한상 차림의 역습이 시작됐다.

메뉴판을 열어보니 미역국 종류만 여럿이었다. 소고기가 들어간 것부터 전복, 조개 등. 게다가 곁들임 음식들까지 고품격을 자랑해 미역국이란 게 '그 흔한', 또는 '단순한' 밥상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미역국 밥상을 마주하고 맛을 보니 꽤 깊은 맛이 났다. 그동안 왜 이 맛을 '그냥 아는 맛'이라고 여겼을까. 미역국을 먹으면서 든 생각은 이랬다. 흔하게 볼 수 있고 늘 겪는 거라고 해서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


내가 사는 인생도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누군가의 사연이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하고 조언하고 충고를 하는 일들 말이다.

 

"네가 쟤보다 더 힘드냐?"

"너 지금 겪는 거, 진짜 별 거 아니야."

"나도 겪어 봐서 아는데~."

"그거 좀 힘들다고 안 죽어! 엄살 좀 그만해."


누군가의 고민 앞에, 그리고 사연 앞에서.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거라고 쉽게 결론 지어 판단하는 건 상대의 인생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는 명백한 실례다.

그리고 지금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결례다.

쫀득이 종류가 이렇게 많을지 어찌 알았을까.


감정이란, 그리고 인간사의 갖가지 사연들은 밖에서 바라봐야 할 때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안에 파고 들어가 대면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감정이 꼭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아픈 누군가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봐주고 공감해주는 것에 대하여, 내 시선으로 얘가 쟤보다는 더 아플 거고, 저 사람이 이 사람보다는 상황이 나을 거라는 생각은 시선의 오류다.

내가 차마 알 수 없는 상대의 세계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것도 대단히 많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만 내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선배에게 어떤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게 그렇게 어려운 문젠가? 고민이 될 정도라면 안 하면 되지 않아?"


참 쉬웠다. 그리고 쉬운 게 맞다. 대답을 한 사람에게, 그리고 고민이 될 정도라면 하지 말라는 대답까지도.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 사연을 들고 온 사람에게는 고민이 될 정도의 깊은 것이다 (마음에 담아둔 시간은 사람에 따라 짧게는 며칠일수도, 길게는 몇 달에서 몇 년일 수도 있다). 마음에서 끌어올려 입으로 뱉을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애태워야 했을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 거 아닌 그저 흘려 들을, 스쳐지나는 사연일지라도 말이다.

그 순간 반성이 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고민이나 사연에서 내 경험과 생각만을 불쑥 들이밀지는 않았는지.


생일날 미역국을 먹으며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사진으로 볼 때는 크게 보이지만, 이 케이크의 실제 사이즈는 스몰이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하고 트집을 잡는 대신 따뜻하고 부드럽게 그 인생을 감싸준다면. 미역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미역이  몸을 풀어내는 동안, 전복은 바다의 내음을 계산 없이 내어줄 것이다. 소고기는 뱃속까지 뜨끈하게 덥혀줄 힘찬 기운을 더해줄 것이며,  말린 북어는 바람과 햇볕을 담은 육해공의 풍성함을, 이도저도 싫다면 그저 미역 자체의 맑고 고요한 맛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미역은 바다의 마음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나고 자라며 그 안의 풍요로움을 제 몸에 가득 담았을 것이다. 밭을 품은 재료도, 하늘을 품은 재료도, 각기 다르지만 저마다의 맛과 향,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과 보완해야 할 단점들까지도 튀지 않고 끌어안는 방법을.

미역은 너른 바다에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어린 치어들에게 때로는 자신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는 법도 익히면서.

은은한 향으로 뾰족한 누군가를 품을 수 있도록.

이 세계라는 바다를 내 몸 안에 담을 수 있도록.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올곧고 맑은 것을 더 많이 담을 수 있기를.



[미역국 일러두기]


1. 미역은 충분히 불려서 사용하자.

2. 짜게 먹는 사람은 국 간장 대신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자. (국 간장이 많이 들어가면 맛이 시큼떨떨해질 수도 있다)

3. 미역은 대부분의 재료들과 사이가 좋다. 그렇다고 부속재료를 이것저것 많이 첨가하지는 말자.

4. 미역국은 무엇을 더하고 빼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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