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하상 Mar 07. 2019

엄마는 날 가끔 초라하게 만들어

  언제나 내 편인 엄마지만 엄마도 본의 아니게 날 가끔 초라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엄마는 최근까지 입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대학생 2학년이 되어서도 엄마는 편입 얘기를 꺼내며 나에게 다시 입시에 뛰어들기를 권유했다. 엄마의 속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학교 합격했을 때는 힘든 시간 이제 끝났다면서 눈물 흘리며 기뻐할 땐 언제고... 지금 와서 다시 나에게 수험생이 되기를 부탁했다. 어쩌다보니 나는 여름 방학동안 편입 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다시 수험생이 되어있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엄마는 날 가끔 초라하게 만들어’였다. 학교도 잘 다니고 있고 내 공부도 잘하고 있는데 엄마는 뭐가 그렇게 아쉬운 걸까... ‘엄마의 눈에는 내가 많이 부족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로 점철된 시간들을 보내니 당연히 나의 학원 생활은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학원 빠질 변명만 수십 가지를 항상 만들어내야 했다. 더 이상의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현명한 포기를 하기 위해 용기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너무 다니기 싫어! 거기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히는 거 같아, 내가 왜 아직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나 너무 힘들어” 

  

  조용히 듣고 있더니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또 엄마의 욕심이 앞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했다. 미안하단 말을 듣고 싶었다. 엄마는 또 실수한 거란 걸 제대로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막상 미안하단 말을 들으니 답답한 마음이 풀리기는 했지만 시원하진 않았다. 그래서 매번 연습하던 ‘엄마는 날 가끔 초라하게 만들어’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됐다. 

  그리고 엄마도 예상하고 있었단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떨어져 지내고 있어도 목소리에서 다 느낌이 오나보다. 엄마도 알고 있었고 나도 어느 정도 맘의 준비를 한지 오래됐지만 누구도 먼저 얘기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봤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서로의 감정을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계속 묵히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우린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끝낼 문제였는데 우린 눈치 보는 사이다 보니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넘어갔다. 그래서 가끔 알고 있는 것들을 덮어버리고 우린 아무것도 모르기를 택했고 이번에도 그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