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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틸다 Mar 23. 2022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엄마의 결심

Doing something or Doing nothing

휴학 포함하여 6년의 대학 생활, 1년의 백수 생활, 또 6년의 직장 생활을 지나 아기 엄마이자 주부로 살아온 지 9개월이 되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일을 접어두고 아기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어린이집 언제 보낼 거냐는 질문을 종종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3년 정도는 내가 돌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복직해야겠다는 생각할 틈도 없이 아기를 케어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나를 중심으로 살아오다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내 에너지를 다 바치는 일은 처음이었고 에너지 소모는 엄청났다. 그러다 보니 육아 외의 시간에는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육아-휴식-육아-휴식, 쳇바퀴 돌듯(.. 이라기엔 스펙터클하고 매 순간 어렵고 힘든 것이 육아이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정체되어가고 있었다.




일을 해야겠어.


그렇게 ‘내’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발버둥 치며 거부하기라도 하듯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의 뇌 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일'이라고 하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육아휴직수당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돈 들어올 구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5개월 뒤 끊길 거라 생각하니 초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막연했다. 나는 워커홀릭도 아니고 특정분야에 빼어난 사람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멋지다 할 구석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본래 하던 일을 이어서 하는 옵션도 있지만 직장생활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야근이 많았던 IT업종이라 육아보다 더 예측이 불가능한 게 나의 일이다. 밤늦게 고객 서버에 장애가 생길 때도 있고 부족한 인력과 넘쳐나는 일, 빠듯한 마감 일정에 쫓겼던 기억이 많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연봉도 낮았던 터라 내가 직장에서 벌어오는 돈이 가계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수준이었고 그럴 바엔 차라리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애착 형성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난 사업가 체질도 아니다. 천성이 느긋하고 내향적이어서 사업을 거느릴 역량은 부족한 것 같다.




뭐라도 하자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하고 계속 고민하고 인풋을 만들기 위해 추천 도서를 찾아보고 강의를 듣고 SNS를 탐색하고 아티클이나 칼럼 등을 들여다봤다.

그러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셈 솟는다. 거창한 계획과 마일스톤은 없지만 일단 뭐라도 하고 있으면 작은 점들이 그림을 만들어내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실천'이 무기인 세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 인풋이 많을수록 더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배운 것들을 모두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드는 감정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의 내면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ㅡ이것도 무언가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ㅡ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내가 바라던 사회의 모습, 내가 가진 콘텐츠에 대해서 생각한다. 결국엔 내 안에 '나'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무슨 일을 하든 퍼즐처럼 술술 풀릴 것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뭐라도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어려웠다.


엄마가 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이 '나'를 잃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내면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가장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기록'이라고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기록되어 있지 않은 나의 생각, 가치관, 느낌, 일상들은 추상적이고 완전하지 않아서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글로 남겨서 시각화하면 나를 잃지 않을 것 같았다.




뭐라도 쓰자


그래서 이번에는 뭐라도 기록하고 쓰기로 했다. 기록의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노트에 끄적였다가는 내가 죽었을 때 가족들이 유품 정리하다 태워버릴 수도 있으니 나를 남기기 위해서는 디지털 공간이 더 좋았다.

또 나만 볼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에 적으면 내가 갑자기 죽었을 때 아무도 못 보는 글이 될 수 있으므로 오픈된 플랫폼이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데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하루에 감사한 일 3가지를 찾아 적어 보기로 했다. 진부한 방법이지만 요즘같이 만사가 짜증인 나의 하루를 긍정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쓰기이다. 감사한 하루는 나에게 반짝이는 에너지를 선사하고 그 에너지로 글을 쓰면 나의 내면을 더 들여다볼 수 있다.



뭐라도 하려고 발버둥 치려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더니 글쓰기가 보였다. 거창한 글은 아니지만 쓰기를 통해 만날 나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커버 사진 출처: Tatiana Syrikov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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