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ónde estoy en este mapa?
03/05/martes
5월 3일 화요일
desde Ponferrada hasta Villafranca del Bierzo
폰페라다에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까지
여행한 지 30일, 걸은 지 27일
6시도 안 된 시각. 은배가 뒤척이는 소리에 눈을 뜬 나는, 준비가 빠른 그녀에게 보조를 맞추기 위해, 조금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복도에 배낭을 꺼내어 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는 침낭을 갰는데, 어느 곳 하나 기대지 않고 허공에서 정리 완료! 어깨가 저절로 으쓱. 알맞게 커버에 씌워진 둥근 침낭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짙은 푸른색을 띤 하늘에 노란 조명이 바닥에서부터 피어났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보니 내 손등 같았다. 바탕은 뙤약볕에 검고, 쉼 없이 바뀌는 온도차에 마디마다 갈라져 그 틈은 색이 밝은 내 손등 말이다. 새벽녘 아직 공기가 찬 때였다. 나는 얼른 시린 손으로 재킷 호주머니를 찾았다. 까슬까슬하니 조심히 넣는다고 한 건데, 옷자락에 쓸려 손에서 피가 찔끔, 고개를 내밀었다. 이럴 줄 알고 약국에서 받은 밴드를 따로 꺼내 놨는데, 어디 있더라?
점심을 먹자며 지수가 고른 식당은 꽤 낭만적인 곳이었다. 천장에 담쟁이덩굴이 늘어져 있고, 나무 기둥은 코바늘로 지어 만든 뜨갯것으로 감싸져 있었다. 그래서 기분은 좋지만…… 메뉴판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을 빠르게 스캔, 역시 만만한 게 참치지. 나는 이번에도 참치가 든 샐러드를 시켰다. 샐러드 한 접시를 후다닥 먹고는 길을 나서는데 한글로 '라면 있어요. 김치도.'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보였다. 셋의 탄식 소리. 아, 여기서 먹을 걸.
- 저어. 한국 분들이시죠?
노란색 등산복을 한 벌로 쫙 빼입은 한국인을 만났다. 그녀는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 이제 몸이 풀리고 걸을 만 해지는 것 같아요.
- 저흰 안 아픈 곳이 없네요. 온몸이 쑤시고 뻐근해요.
그녀는 우리의 어설픈 허세를 멋있게 본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와 함께 걷길 바랐다. 그녀와 동행이 된 후에도 지수와 은배, 나는 녹초가 되어 앞만 보고 걷는데, 걸은 지 얼마 안 된 새내기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나저나 허세(혹은 장담)는 금물이었다. 적게 걸었다고 우리가 하수 취급했던 그녀는 모든 걸 완비한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순례길"을 걸은 지는 좀 더 되었다지만 “이 길"은 네 명 모두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물 한 모금씩의 호의를 베풀었다. 가다가 보이면 사지 뭐. 여태 해왔던 거니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랬던 우리는 빈 물통뿐이기 때문이었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라도 뒤집어써야 했다. 모자를 쓰면 그 사이로 땀이 비가 오듯 내렸다.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무 밑 쉴만한 곳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가끔 우뚝 서있는 나무를 찾는가 하면 그 아래 그림자에 백발백중 사람이 들어차 있었다.
- 근데 좀 전에 한글로 적힌 간판 보셨어요? 라면 판다고 하던데.
- 맞아요, 한글도 한글인데 김치도 있다고 해서 놀랐어요. 거기서 먹을 걸 나중에 알아서.
- 제가 거기서 먹었는데, 라면은 역시 한국이죠. 맛은 없었어요.
우리가 처음 들어간 알베르게는 이제 두 명 자리밖에 없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으나, 여태 같이 온 정이 있고 의리가 있는데 다 함께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 잠시만요, 제가 옆 알베르게에 전화해둘게요.
주인은 미안해하며 다른 숙소에 전화로 자리가 있나 확인해주고, 그 길을 소개했다.
- 힘들 텐데 두 명은 그냥 거기 있죠.
- 조그만 더 걸으면 되는데요, 뭘.
- 그런데요, 여기 너무 좋은데요?
새로 찾은 숙소는 생각보다, 아니 그냥 너무 좋았다.
- 코난, 부엌엔 들어가면 안 돼.
순한 레트리버, 코난은 문지방에 턱을 대고 엎드려 우리의 식사를 구경했다. 우리는 각자 음식을 조금씩 사서 함께 나눠먹었다. 그리고 맨 꼭대기 층의 침실로 올라갔다. 숙소가 좁고 위로 높게 세워진 건물이라 매번 목적에 따라 층을 달리 해야 했다. 오늘도 역시 내 침대는 2층 침대인데, 거기에다 특별히 가드를 빼낸 것에 걸렸다. 꼭대기 층의 계단 바로 옆 침대라…… 우두둑 소리 내는 무릎도 걱정이지만 자다 떨어질까 심히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당장은 창가 의자에 앉아 사색을 해본다. 분에 겨운 편안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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