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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뻬로까 May 22. 2019

산티아고 일지 35 편안한 곳

¿Dónde estoy en este mapa?

11/05/miércoles

5월 11일 수요일

desde O Pedrouzo hasta Santiago de Compostela

오 페드로우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여행한 지 38일, 걸은 지 35일



   이 길을 끝으로 산티아고에 당도하므로, 아무쪼록 오늘만큼은 평소엔 건너뛰던 작은 동상들도 귀하고 소중하게 다뤄야 했다. 성당의 세요와 마켓, 바르, 식당도 마찬가지. 아기자기하지만 꾸밈없던 일상들이 아쉽기만 했다.

   길에서 만난 헨리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다른 어느 때보다 나를 반겨주었다.


-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하지만 나는 헨리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왠지 마지막은 아닐까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 또 봐요. 부엔 카미(노.)


나는 헨리의 대답을 흘려들은 채, 마치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리고 최대한 걸음을 재촉했다. 울음이 제어 되질 않았다. 바보 같아. 이게 마지막이라면 더더욱 멋있는 인사를 해야 했고, 아무렴 지금도 산티아고를 향하는 우리가 마지막 일리가 없잖아! 어찌 되었든 나는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아픔을 무릅쓰고 속도를 냈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4.4KM. 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 즐거움과 환희의 산을 의미하며, 프랑스어로 '나의 기쁨이여'라는 뜻의 몬 쇼이_Mon Joie에서 유래하여 몬쇼이_Monzoy라고도 불린다. 말을 타고 온 순례자들은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이곳부터 산티아고까지 말을 끌고 걸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에 서자 드디어 산티아고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그래서 그곳의 이름이 기쁨의 언덕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순례자들은 언덕 위 기념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과연 꿈에만 그리던 곳.


- 저-기가 끝이네요.


은배도 카메라에 사진을 몇 장 담았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꾸준하고 침착하게 다시 길을 나섰다.


- 다리가 아파서…… 이렇게 걸으면 안 아프더라고.


은배는 갈지 자를 그리며 걷고 있었다.


- 자꾸 잊어버리네요. 내리막길은 역시 지그재그인 걸요.


하루 20KM 후반의 긴 거리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길을 더 내어 걷는다는 것은 정신 나간 짓 같아 보이지만, 그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는 은배의 뒤를 따라 미친 듯이 길을 만들었다.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길은 무척이나 길었다. (우유부단한 성격은 여전해서 식당을 고르지 못해 점심을 거른 것도 한몫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구시가지로 들어갈수록 성당은 가까워졌다.


- 이제 도착하는 거야?


고벽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을 한 이는 다름 아닌 엘레나와 박 씨 아저씨였다.


- 좀 있으면 점심 미사가 시작해서 말이야.


둘은 벌써 산티아고를 마스터한 모습이었다. 


- 저희는 아직 순례자 사무실을 못 갔어요.

- 아! 사무실은 성당 뒤편 길로 쭉 가다 보면 있어. 그럼 이따 시간 되면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순례자 사무실 안, 중앙 분수대를 둘러싼 나무들이 꽃잎을 흩날렸다.


- 크레덴시알을 주시겠어요? 7일부터 걸은 건가요?

- 네, 6일에 생장에 도착해서 7일부터 걸었어요.

- 와! 정말 제대로 걸었네요. 힘든 길이었죠?


봉사자는 도장이 빽빽하게 찍힌 크레덴시알 2개를 펼쳐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조금은 과한 듯 손에 힘을 주어 마지막 도장을 찍어주었다. 첫 도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한 달간 나의 일기와도 같은 기록물. 어떤 마을도 피하거나 건너뛰지 않고 만났음을 알려주는 증표.


-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 물론! 그라시아스. (Gracias)

- 저야말로. 무차스 그라시아스. (Muchas gracias.)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온 후, 나는 나의 친구들을 한 명씩 떠올리며 어울리는 사진을 신중히 골랐다.


- 총 6명이니까…… 저-어, 이것들 계산해주세요.


그리고 가게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생전 처음 세 가지 언어로 사진 뒤편에 편지를 써 내려갔다. '고마워요. 카미노에서의 모든 것들이 그리울 거예요. 다음에 또 봐요.' 소중한 그들에겐 생각보다 그리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엔 비가 오고 있었다. 이젠 순례자의 티를 벗어보겠다며 상점에서 산 우산을 쓰고 한동안 광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공기는 그간의 것과 다를 것 없었다. 축축하고 고요했다.

   한참 뒤 유빈과 윤승이 광장 끝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같은 방향 조금 앞서서 헨리가 보였다.


- 우린 또 우리 보고 반가워서 달려오는 줄 알았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헨리와 재회의 포옹을 했다.


- 네가 해낸 거야.


헨리는 추억과 감격을 그 한 마디로 정리했다. 나는 결국 또 울음보를 터뜨렸다.


- 자, 자. 그만 울고 우리 같이 사진 찍을까?


유빈과 윤승은 괜스레 더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었다.


- 저 얼, 얼굴이 이런데 사진 찍어요?

- 에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빨리 같이 서. 빨리!


헨리는 비에 젖을까 내가 품에 품고 있던 카드를 받은 후, 저녁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유빈, 윤승, 팀을 광장에서 만나기로 한 이유는 순례길 초반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향한 곳은 이발소. 사실 팀은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수염을 깎겠다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다.


- 여기서 수염을 깎겠다고?


다들 큰 이벤트에 놀랐지만, 결국은 떨고 있는 팀을 놀리기 바빴다. 이발사와 팀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이발사는 그럴수록 쇼맨십을 발휘했다. 몸동작을 크게 하여 흰 수건의 먼지를 털고 칼을 다듬었다. 구경꾼들은 그 모습이 우스워 연신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나는 그러고도 유빈, 윤승, 지수와 함께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내가 묵은 숙소 중에 가장 넓고 비싼 곳이었다. 지수의 조언으로 그렇게 숙소를 구했었다. 마지막 날은 '마지막'이라는 것 때문에 알베르게에서는 술 잔치가 벌여질 거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래서 내 방은 침대만 세 개가 들어찬 큰 곳인데…… 나는 침대에 앉았다. 풀썩 침대의 하얀 커버와 이불, 매트리스가 따로 펄럭였다. 쪼가리 난 책들, 매일같이 먹어 온 염증약, 고름 자국이 진 양말, 이제는 펼 필요 없는 침낭. 그 모든 것들을 침대 위로 꺼내 사진 찍었다. 그러자 다시 울음이 났다.



instagram.com/lupe.l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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