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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뻬로까 Jun 12. 2019

산티아고 일지 37 그럼 끝이야?

¿Dónde estoy en este mapa?

13/05/viernes

5월 13일 금요일

a 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여행한 지 40일, 머무르기



   혼자 떠났다고 생각한 그 길은, 사실 많은 이들과 함께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이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그럼 진짜 혼자인가? 이는 걷는다는 것 외에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은 내게 기다림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그럼 오늘은 무엇부터 해볼까. 바글거리는 성당보단 조용한 성당이 보고 싶어 졌다. 나는 이른 아침, 친구들과 여독을 푸느라 도착 당일 보지 못한 성당을 꼼꼼히 살폈다.



- 아, 배낭부터 맡겨야 할 텐데……


그런데 나 아직 순례자가 맞나? 의구심이 들어 한 없이 조심스럽던 나는 그 어느 곳에도 가방을 맡기지 못하고 곧바로 버스터미널(Estacion de autobuses de 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봐 두었던 포르투갈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했다. 산티아고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포르투갈이라니! 한 숨을 크게 내쉬고 바라본 도시는 주황빛이 깜빡이는 신호등, 파란 모자를 쓴 학생들,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는 이들, 꼬마 기차가 마을로 채워져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여러 일을 처리하고 나서도 아직 정오인걸 보면, 그동안 부지런해진 게 확실했다. 하지만 다시 방문한 성당엔 훨-씬 부지런한 이들이 많았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맞춰 온 것인데, 벌써 의자는 꽉 찬 듯하고 기댈 기둥이나 계단을 찾는 게 현명해 보였다.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배낭을 들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때는 숙소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배낭을 숙소에 두고 나온 후였다.)

   미사 전, 수녀 한 분이 성도들에게 성가를 마디마다 끊어가며 가르쳐주었는데 성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성가 한 곡을 거의 완성시켜갈 즈음 예배가 시작되었다.


   긴 설교가 끝나고,


- 오레무스. (Orémus. 기도합시다.)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자그맣게 수상 자리가 마련되었다. 내게 순례증을 주었던 이도 단상에 올라 상을 받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는 적어도 친한 친구가 상을 받는 것처럼 손뼉 치며 축하를 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물인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 교회의 향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향로를 매단 밧줄을 서너 명의 신부가 아래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휘-이익. 매캐한 향기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닿을 때까지. 장관이었다. (향로가 크게 호를 그리며 첫 번째 궤도의 정점에 섰을 때, 사람들은 모두 제 머리 위로 휴대폰을 들었다. 이 또한 장관이었다.)


   이제는 이틀간 묵었던 숙소를 떠날 시간. 나는 더 이상 여행에서 필요하지 않을 스틱과 침낭을 침대 맡 탁자에 두고 새 숙소를 찾아 나섰다. 나는 어제 버거킹에서 은배에게 푸념을 늘어 놓았었는데…… 글쎄 나 말이에요, 내일 묵을 곳이 없는 거 있죠. 숙소 주인이 숙박 사이트 화면을 보여주더니 아마 산티아고 안에 예약할 수 있는 숙소가 없을 거래요. 그 전날도 어렵사리 전화로 예약을 연장했던 건데…… 어쩌죠? 그때 은배는 자신의 친구가 며칠 전 묵었던 곳이라며 한 곳을 소개해줬었다. 그래서 오늘의 숙소는 다시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다.


- 저 순례자 사무실에서 마지막 도장을 찍었는데 여기서 묵어도 될까요?


   며칠 새 밤만 되면 멈추질 않던 눈물이 거짓말처럼 알베르게에 들어서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데 난 왜 또 1인실을 예약했을까. 언제부터 1인실이 당연했다고? 1인실은 마치 감옥 같았다. 복도를 따라 걷다가 본 도미토리 룸은 머릿속에서 더 따뜻한 이미지로 변해갔다.


- 이건 물리적 공간이 좁아서가 아니야.


나는 사람의 존재가 그리워서 이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은배 말고도 팀이 본인이 묵는 숙소도 도심에선 조금 떨어져 있지만 자리가 있다고 했었다.) 나는 사람 무리를 찾아 아래층 식당으로 갔다. 그곳은 더욱 자유로웠다. 매점에선 먹을 것과 기념품을 팔았고, 반대 편엔 벽에 길게 싱크대가 붙어있는데 그러고 보니 한창 식사 때라 물 끓는 소리와 연기가 피어올랐다. 또 거기서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탁실이 운영 중이고, 세탁기 앞엔 언제나처럼 세탁이 끝날 시간을 기다리며 한 두 명이 자리 잡고 앉아 독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하 식당 동선이 제일 많이 겹치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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