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뻬로까 Aug 08. 2019

산티아고 일지 38 0.00일

¿Dónde estoy en este mapa?

14/05/sábado

5월 14일 토요일

desde Santiago de Compostela hasta Oporto.Portugal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포르투갈 오포르토까지

여행한 지 41일, 다시 00일



   산티아고에 도착한 몇몇은 한식 혹은 중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흥분상태였다. 한데 난 도착과 동시에 거의 대부분의 흥미를 잃어버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날지 혹은 만날 수 있을지, 것보다 걷지 않아도 된다라. 붕 뜬 마음에 얼떨떨했다. 결국 사흘 정도는 구경하려던 이곳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오늘 버스를 타고 포르투갈로 향한다. 처음 배낭을 메고 출발하던 4월과 비슷한 감정들이 마음을 들쑤셨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이제 내가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라는 점. 하지만 나는 아직 뜻 모르는 스페인어를 우물쭈물 읽는 것이 좋고, 방에 꽉 들어찬 이 층 침대들이 좋았다. 특히 부끄럼 없이 확 트인 공간에 자리를 차지해서는 눅눅한 공기를 내뿜는 갖가지 빨래가 그리울 것 같았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긴 복도를 지났다. 밖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기 전이자 비 오는 어느 날, 판초는 이제 싫다며 숙소 옆 가게에서 우산을 샀었는데, 그 우산을 개가 제 갈기를 털어내듯 거칠게 털어냈다. 팡! 그리고 우산살을 위로 올려 머리에 가림막을 만들었다. 근데 왜 난 그때 판초가 싫었을까.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올 거면서 왜 그렇게 빨리 순례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여겼을까. 앞에 주민이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 중인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제치고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버스터미널에서 오래 쉴 수도 있겠지만 난 그들을 앞지르지 않았다. 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와 아직은 성치 않은 발목으로 걷는 돌길, 배낭을 멘 이들에겐 언제나 상냥한 이 도시를 조금이나 더 담아보려고 했다. 해서 주민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당장의 뒤숭숭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것도 급하지만 그 후에 더 크게 다가올 그리움이 버거울 것만 같았다. 계속 두 가지 마음이 극단에서 끄는 줄다리기는 승패 없이 팽팽했다. 어찌 됐든 바닥을 기는 민달팽이만 보고도 부럽다고 느끼며 한낮에 길을 걷던 것이 벌써 한 달이 되었고 완료되어 있었다.


- 지금 가니?


매점 주인이었다. 나는 어제 지하 1층 식당에 내려가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매점에 별일 없이 들르게 되었다. 오, 기념품이다! …… 방에 들어와 산 것들을 다 꺼내어 보니 한 아름이었다. 엽서와 지도, 일러스트 카드, 수첩. 실로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 침대 위에 늘어놓은 것들이 나의 기록들과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불평불만 투성인 모습도 힘에 부쳐 힘들어하는 모습도, 그리고 나의 옆을 지켜주던 이들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 네, 잘 지내요!


어느새 하늘은 비구름으로 가득했다.


   덜컹. 끼-익.

   다 온 건가? 빠르게 넘어가는 풍경은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없는 탓인지 금세 지루해져 꾸벅꾸벅 졸음으로 온 길.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여행이 기다리는 곳, 포르투갈.


- 자! 숙소로 가려면……


휴대폰에 미리 저장해둔 지도를 야심 차게 켜려는데, 붉게 변한 살갗이 따가웠다. 또 손끝에서 살이 터져 피가 나온 것이었다. 먼저 약국부터 찾아야겠군. 다행히 터미널을 근처엔 약국이 많았다. 나는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 가장 작은 밴드를 샀다. 밴드가 필요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네. 붙이다 보니 손은 어느새 덕지덕지해졌지만 상관없었다. 다시 구글 지도를 돌렸다. 약 30분. (물론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하지! 숙소를 찾아 걷다 보면 내가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나타나겠지. 휴대폰 통신사도, 동전 빨래방도. 게다가 24시간 영업. 운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골목길 모퉁이에 노란 화살표까지 보았다. 산티아고를 떠나온 포르토에서 다시금 노란 화살표를 발견했다.



- 와이파이 번호는 여기 적혀있고요. 현관 키는 빨간색, 방 키는 노란색에요.


집주인에게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둘러본 숙소는 혼자 쓰기에 크고 매우 좋았다…… 뭐, 정말 좋았다. 어찌 됐든 나는 지난 한 달간 해왔던 것과 같이 먼저 마트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제 7부 평소 하지 않던 요리에 도전하기로 했다. (다행히 마트에서 한국인을 만나 어렵지 않게 파스타 재료들을 추천받았다.) 집에서 엄마, 언니가 해줬던 음식들을 떠올렸다. 면, 소스, 마늘, 버섯, 감칠맛을 낼 문어 통조림이 있으면 더 좋겠고, 평소에 먹을 과일과 과자, 아침식사 대용 시리얼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 면을 더 넣지 말걸. 괜한 욕심에 더 넣은 면 몇 가닥이 문제였다.


- 뭐 처음 치고는 밍밍하지만 괜찮아. 아- 이젠 화살표가 없는 이곳에서어디로 가야 하나. 뭘 먹고 무엇을 봐야 할까. 아까 본 통신사가 문을 닫았으니 아직 밖에서 데이터는 못쓸 테고. 그나저나 계속해서 등산 바지에 절룩이며 돌아다녀도 되는 걸까.


혼잣말로 생각을 정리해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지금의 일부터 해결해야 되는 일이었다. 오늘은 울지 않고 단잠을 자야 할 텐데. 나는 지쳐 잠에 곯아떨어질 때까지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에서 휴대폰으로 포르투갈의 여행 정보를 끌어모았다.



instagram.com/lupe.loca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일지 37 그럼 끝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