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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비 Apr 29. 2019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 더스토리

붉은색과 금색으로만 이루어진 강렬한 디자인이었다.



나의 기억 속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커지고 작아지는 주인공 앨리스,

회중시계를 차고 두발로 걷는 토끼,

고양이, 카드병정이 생각나고,

그리고 이런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는 모험을 한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전부이다.


"나 어릴 적에 봤어. 알아 그거 토끼랑 카드병정"

"동화는 어린이들이 보는 거지"


어린 시절 눈으로 훑었던 동화책 속의 그림들이 잔상으로 뇌리에 남아 있는 데다가,

'동화'이기에,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기에.

20대 후반인 내가 다시 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솟았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다 알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가볍게 속여 넘겼다.


지금껏 나는 동화를 무지와 무식에서 비롯된 무시로 일관했었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이다.

아동문학이자, 고전문학이다.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 나왔다.


아동문학은 마치 딸기맛 해열제처럼.

어른들의 가치 있는 경험들을 아이들의 눈높이로 녹여낸 예술작품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15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을 버텨,

2019년 현재 내 손에 쥐어져 있다.


15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을 넘어,

동화로서, 그리고 이야기로서

나의 생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에 대한 세 가지 흔적을 적어본다.



'나의 선택'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


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노는 것 대신에

조끼를 입고, 두발로 걸으며, 회중시계를 보는

말하는 토끼를 따라서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는 깊은 굴 속으로 떨어진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떨어진다

.



.

..

..

..

..

.


떨어지기를 멈추고 도착한 곳은 아주 이상한 나라였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목이 길어지기도 하고.

너무 작아져서 내가 흘린 눈물에 빠지기도 한다.


토끼가, 생쥐가, 도도새가,

동물들이 말을 하고,

애벌레가 말을 하고,

카드병정들이 살아 움직인다.


기존의 가치들이 끊임없이 전복되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는 부정이 아닌 적응을 선택한다.


그리고 나아간다.

누군가의 종용이나 강요 없이

스스로 선택한다.


작은 병에 든 알 수 없는 액체를 마시고, 케이크나 버섯을 먹기도 하고,

사람이나 동물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꾹 참고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몸이 커지는 바람에 방 안에 갇히거나, 상대방에게 적대감을 갖게 할 수도 있고,

목이 길어지는 바람에 뱀처럼 보여서 상대방과 원치 않은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작아진 나를 배고픈 개가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선택 없이는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앨리스는 언니와 노는 것 대신 토끼를 따라간다는 선택을 했고,

이상한 나라에 도착해 환상 속을 모험한다.

그녀에겐 이 환상의 나라를 끝까지 모험해야 한다는 책임이 뒤따랐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똑같은 삶을 산다고 말한다면,

어제와 똑같은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변화를 위해선 충분한 지루함과 용기, 책임이 바탕이 된 선택을 해야 한다.



앨리스의 선택들은 결국,

스스로의 꿈을 깨뜨릴 만큼 그녀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


'방향과 목적지'
앨리스와 채셔고양이
앨리스와 채셔고양이는 6장에서 만난다.
"고양이야!"

"내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 줄래?"
앨리스는 말했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에 달렸어"
고양이가 대답했다.

"난 어디라도 상관없는데..."
앨리스가 말했다.

"그럼 어디로든 가면 돼."
고양이가 대꾸했다.

"그러니까 어디든 도착하기만 한다면...."
앨리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럼, 계속 걷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는 도착할 거야"
고양이가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89p>


 나는 이 대화에서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방향을 정하기 이전에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목적과 목표 없이 어느 방향으로든

그저 나아갔을 때,

내가 가는 이 길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가질 수 있을까?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의 두발로 나아갔음에 대한 처절한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나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자원을 쓰게 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자원은 시간일 것이다.


문득, 제자리에 멈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썼음을 깨달았을 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너무나 먼 거리를 지나왔음을 깨달았을 때,


그때 만약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니었는데..'라는 혼잣말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누가 들을 새라 자조 섞인 한숨에 감싸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 버리지 않을까?

'그저 나아간다' 또한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

먼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해져야만

어느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 갈지 정할 수 있다.


하나의 목적지마다 수많은 길들이 있을 것이다.

도달한 목적지 또한 더 큰 목표를 위한 중간단계일 뿐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계단의 끝에 삶에서 최종적으로 바라는 무엇인가를 올려두어야 한다.


내 삶에서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가치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쥐어보며 비교하고 가려내야 할 것이다.


인생이 마라톤은 아니라고 하지만.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 유한한 삶이기에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는 온전한 나의 선택.

그리고 목적과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방향과 목적지에 대한 내 선택만 있으면 되는가?


.....


'나의 위치'
앨리스와 애벌레
앨리스와 애벌레는 5장에서 만난다.
애벌레와 앨리스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애벌레가 입에서 물담배를 떼며 졸린듯한 늘어진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넌 누구냐?"

대화를 유쾌하게 나누기에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
앨리스는 약간 주눅이 들어 조마조마하며 대답했다.

"저……, 이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잠에서 깨었을 때는 분명히 내가 누구인지 알았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

<61p>


 앨리스는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변화했다.

변화는 짧은 순간에 다양하고 빠르게 이루어졌으며,

앨리스는 그것들을 모두 수용했다.


그리고 애벌레에게 받게 된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껏 하나의 형태로 굳어져 있던 '나'의 모습이 모험을 하는 짧은 순간 동안 

다양한 선택을 통해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는 마치 달리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왼발과 오른발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땅을 박차는 것처럼,

'나의 선택'에서 '나'와 '선택'은 끊임없이 반복다.  


나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나를 변화시킨다.

변화된 나는 또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나를 다시 한번 변화시킨다.


변화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나의 선택이 반복됨으로

지속적으로 변화하, 움직이고, 나아간다.


'선택'을 통한 '나'의 변화를 인지해야 하며,

'나'가 변했다면 그에 맞는 '선택'또한 다시 정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나아감이 아닐 것이다.

한 발로 뛰는 모습이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변화에는 목적 또한 있어야 한다.


앨리 양쪽의 버섯을 반복해서 먹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그녀의 목적은 안정감 있는 원래의 키 이다.



현재 나의 목적에 비해서 키가 작은지, 큰지를 알아야만 먹어야 할 버섯을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만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나의 위치가 목적지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방향과 방법을 재정립해야 한다.



네이버 지도를 생각해 보라.

내 위치와 목적지가 설정이 선행 되어야만.

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준다.





책을 덮고 남은 것



그렇다면,

바뀐 나는 내가 아닐까?


 삶 속 수많은 선택의 과정과 결과 사이에서 변화하며,

그 순간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그때의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 순간의 나는 내가 아닐까?


변화하고 있는, 움직이고 있는 나 또한 모두 나이며,

나의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전의 나, 현재의 나, 앞으로의 나. 모두 나 라면,

그렇다면,

나는 왜 변화하고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는 모두 나의 선택으로 정해지는데,

나는 왜 변화할까?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하여 변화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은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인지 각해봐야 할 것이다.


변화는 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내가 정한 목적지는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누군가의 목적지를 그저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인가?




애벌레는, 언젠가는 번데기가 되고, 그런 다음 또 나비가 되었을 때.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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