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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May 04. 2024

고통과 치유 사이에 '안간힘'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 展,  김명숙 작가의 공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오늘과 작업을 마주해보려고 합니다.

- 김명숙 작가의 인터뷰에서-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 展,  김명숙 작가의 공간 전경


심장을 뛰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어떤 작품은 보면 볼수록 가슴을 간지럽히고, 어떤 작품은 가슴에 먹먹하게 스며든다. 김명숙의 작품은 심장을 마구 흔든다. 심연 아래로 쿵. 쾅. 후욱하고 심장을 끌고 내려가는 것 같다. 내면을 그리는 작품들 중에는 수행, 구도, 깨달음, 본질 등을 말하며 작업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썰을 푸는 경우가 있다. 난 그런 작품들을 경계한다.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말로 전달하려는 작품 속에서는 허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표현되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려는 허영,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는 허영이 있다. 좋은 그림은 여러 말이 필요 없다. 좋은 그림은 첫눈에 알아본다. 심장이 그 그림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좋은 그림은 기어코 심장을 일으켜 내 몸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고 만다.  



내면의 빛을 찾으려

김명숙 <렘브란트 만다라>, 2018, 종이 위에 혼합재료, 160X180cm
김명숙 <렘브란트>, 2024, 종이 위에 혼합재료, 120X160cm


전시장의 그림들은 액자도 없이 도화지채 벽에 붙어 있다. 먹 혹은 흑연 또는 돌가루일지 모를 혼합 매체를 사용한 검은 그림이 하얀 벽면을 차곡차곡 메우고 있다. 내 심장은 나를 가장 어두운 그림 앞으로 끌고 갔다. 누군지 모를 그림 속 사람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시선을 옆으로 옮기자 다음 그림에서 점차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다시 처음의 검은 그림을 보았다. 제목은 <렘브란트 만다라>(2018)였다. 그림 속 남자는 렘브란트였다. 그림을 구석구석 훑던 중 갑자기 남자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심장은 더 빨리 뛰기 시작했고 호흡은 깊어졌다. 터지지도 못한 눈물이 온몸에 축축이 베인 것만 같다. 이 그림을 작업하는 동안 작가는 무슨 생각에 젖었을까? 무엇을 만났을까? 그녀의 몸은 무엇을 경험했을까?


<렘브란트 만다라>를 작업하며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고 문지르고 뿌리고 말리고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지 종이는 군데군데 해져 있었다. 특히 눈 주변의 그림자는 안료로 두터워졌고 마르면서 갈라졌다. 그럼에도 어둠속에 묻혀 있는 눈동자는 볼수록 빛이 났다. 작가는 짙은 어둠 속에서 그 눈동자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어둡고 어둡고 무겁고 무겁지만 눈동자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얼굴에 깃든 영혼을 찾으려

(좌) 22세의 렘브란트 자화상 (1628년)  / (우) 53세의 렘브란트 자화상 (1659년)


빛의 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렘브란트(Rembrandt , 1606-1669)는 80점 넘는 자화상을 유화와 에칭으로 그렸으며 수많은 자화상 드로잉을 남겼다. 자화상은 자기 자신을 그리는 일이다. 화가는 자신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 후 자신에게서 발견한 것을 이끌어내어 표현한다. 자화상에서의 모습은 자기 인식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에는 수많은 자신이 들어 있다. 자신감 넘치고 허영이 있던 젊은 시절부터 삶의 희로애락을 알아가는 얼굴까지 다양한 측면의 자신을 그렸다. 렘브란트는 인간 내면을 탐색하려고 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빛을 탐구하고 표현하려고 했다. 렘브란트가 그린 빛은 인공이 조명이 아닌 저마다 내면에서 발하는 빛을 발견하려 했다.


김명숙 작가는 렘브란트를 그리며 무엇을 보려 했을까? 렘브란트가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어둠 속에서 발하는 빛을 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 빛깔의 색채와 밝기 흔들림을 느껴보고 싶지 않았을까? 김명숙의 렘브란트 연작은 2018년도 첫 작품으로 시작하여 2024년으로 이어진다. 최근 작품은 과거보다 조금씩 더 밝아지며 얼굴 윤곽이 드러난다. 최근 작품에서도 완성작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드로잉을 하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선이 성글하다.


작가에게 작업의 끝은 언제일까? 어느 시점을 완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작가에게 작품의 완성은 없을 것이다. 이 종이에서 저 종이로, 이 캔버스에서 저 캔버스로 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김명숙 작가의 렘브란트 연작은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같다. 아마도 내면의 빛을 탐구하는 동안은 계속 렘브란트를 그리지 않을까 싶다. 렘브란트가 죽기 전까지도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을 보면 말이다.



깨달음을 향해가는 안간힘

종이 위에 혼합재료, 각 75X95cm


작가는 렘브란트뿐 아니라 예술가와 철학자들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며 그들의 삶, 그들의 철학, 그들의 수행한 흔적을 탐구했다. 그녀가 종이에 올린 이들은 비트겐슈타인, 케터콜비츠, 미켈란제로, 프루스트, 베이컨, 로렌스, 밀레, 터너, 모네, 고야, 세잔,  바슐라르, 루시안 프로이트 그리고 니체이다. 이들은 자신의 글과 예술과 삶을 일치시킨 이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삶의 고통에 민감했고 그 고통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루시안 프로이트가 "paint(그림)는 pain(고통)에 T를 붙여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곳에 그려진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은 모두가 고통이다. 그럼에도 그 고통에 압살 당하지 않았다. 그 고통 위에 선을 긋고 글을 쓰고 물감을 부었다. 그들은 고통을 품고 고통너머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붓을 든 자는 그림으로 펜을 든 자는 문학과 철학으로 애를 썼다. 김명숙 작가는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작업은 "안간힘"이다. 자신을 한없이 끌어내리는 힘과의 겨뤄온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만다라라고 말한다. 만다라는 고대 인도어로 원과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본질적인 것을 소유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만다라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깨달은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미술치료과정에서도 만다라 작업을 하거나 원상의 이미지를  활용하곤한다. 중심이 있는 원형이나 정사각형에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그림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알아챌 수도 있고 내게 필요한 것, 내가 바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만다라 작업은 작은 깨달음을 시작으로 더 큰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과정이다. 작가가 이 작업을 끝내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하나의 깨달음은 다음의 삶으로 이어준다고 말한다.  깨달음이 궁극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깨달음은 다음 깨달음의 징검다리라는 의미이다. 김명숙 작가는 예술가 만다라를 통해 깨달음을 향한 점진적 수행을 하고 있다. 미궁을 헤매일때 나무 수풀에 온몸이 긁히는 고통을 감수하며, 깊은 심연속의 답답한 호흡을 견디며, 무겁게 내려오는 무기력을 들어 올리며 그렇게 안감힘을 내고 있다.



삶을 그린다. 그리고 본다.

김명숙 <미켈란젤로>, 2014, 75 x 95 cm, 종이 위의 혼합재료


이제 알겠다. 작품 앞에서 내 심장이 흔들렸는지 말이다. 작가의 작업에서는 고통이 보인다. 그녀는 작업을 할 때 재료를 손이나 수세미 같은 도구들을 사용한다. 물감이 손에 묻을 때 느끼는 축축하고 물컹한 느낌, 도화지를 손으로 문지르며 느끼는 까슬하면서도 부들한 감촉, 수세미가 지나가면서 내는 쓸리는 소리, 물감이 아래로 흐를 때마다 떨구어진 기억의 줄기들, 큰 화지 앞에 온몸을 휘저을 때 흔들리는 거친 호흡과 심장박동이 지금 내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내 심장이 이 그림을 알아보는 것은 내 심장 또한 같은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신의 얼굴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 미궁 속에서 헤매면서도 안감힘을 내는 마음을 알아본 것이 아닐까?


심장이 요동칠 때면 마음 한편에서는 위험경보기가 작동했다. '워워. 그것은 어려운 일이야, 결국 상처받게 될 거야.'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은 나를 지켜보는 감시병의 목소리가 뒤로 물러난다. 김명숙 작가의 작품은 미궁 속에서도 심연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화지는 구겨지고 해졌지만 그녀의 고통을 담아내었다.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며 수행하는 과정을 담아내었다. 그리고 작가 또한 도화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했다. 자신에게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그러면서도 도화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상황을 살피며 그녀가 찾고자 하는 것을 향해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무기력과 혼란 때로는 악몽을 만나기도 했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 그리고 그리고 그린다. 예술가의 이런 수행은 작품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녀는 자신을 구도자라거나 수행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어디선가 들은 말이라며 겸손히 말을 흘린다. "삶이 종교다. 일은 삶을 경배하는 행위다." 이 말을 생각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오늘과 작업을 마주한다"라고 말한다. 전시실에 틀어진 작가와의 인터뷰 영상 속의 그녀의 말은 길지도 않고 멋스럽지도 않다. 그녀는 그저 작품을 통해 구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수행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자신을 혹독한 겨울 속으로 처참히 내몰면서도 파괴되지 않는 안간힘을 보여준다.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예술도 그렇다. 예술의 주제, 소재, 형태, 의도 등에 따라 다양한 예술작품의 종류가 있다. 그리고 작가의 수만큼 작품 세계도 다양하며, 개별 작품마다의 담긴 세계관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세계를 보여주며 나란 사람을 분명하게 한다. 자화상속에 자기 인식이 있듯이 작품을 보는 감상자의 시선에도 자기 인식이 반영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작가의 철학이 들어 있고 예술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선에도 자기만의 철학이 들어 있다. 내 심장은 김명숙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전해지는 고통, 노동, 반복, 안간힘, 모지름, 수행등이 지금의 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만날 때는 반가우면서도 부끄럽다. 그리고 뜨거워진다.






Exhibition Details

드로잉, 삶의 철학을 그리다

2024.04.19.~ 2024.08.25.

소마미술관 1관 (서울 송파구)

soma.ksp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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