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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Apr 27. 2024

사랑하기에 고독하다

서동욱 개인전 <토성이 온다>

일상의 멜랑콜리


서동욱 작가의 그림이 낯익었다. 등장인물들이 지금 내 나이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풍경과 색채도 아니었지만 마음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단걸음에 전시장으로 찾아갔다. 갤러 안에는 밖의 때이른 무더운 날씨와는 다르게 건조한 봄날 황사바람 같기도 한, 꿉꿉한 장마철의 냄새 같기도 한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그림들은 채도가 낮고 탁하며 등장인물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둘이 함께 하고 있는 그림에서도 시선이 교환되지 않아서 혼자 있는 것보다 더 고립되어 보이기도 했다.


서동욱  <TV가 나를 본다>, 2023 / <TV가 나를 본다>, 2023
서동욱 <TV가 나를 본다 II>, 2024


나는 이 그림에 왜 끌려들어 갔을까? 아마도 멜랑콜리한 정서에 자극을 받아서일 거다. 흔히 사람들은 밝고 긍정적인 정서를 좋아한다. 젊은 시절에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거나 생각에 빠져 있으면 "무슨 일 있어?", "기분이 별로 안 좋니?"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사실 별다르게 나쁜 일도 없고 기분이 우울하지도 않았지만 미소를 보이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내 기분을 살피곤 했다. 살면서 그런 것들이 점차 불편해졌고 주변 사람들도 내심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친해지기 전까지는 사회적 미소를 많이 짓게 되었다. 마치 전화 상담사들이 항상 목소리 톤을 '솔'음으로 끌어올리며 명랑한 목소리 톤을 유지하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남발하고 살았다.


그런 가식은 공허하다. 결국 그런 친절로는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타인에게 친절하기 위해 내 감정에 불친절하다 보면 결국 마음은 꼬이고 만다. 심지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대를 탓하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내가 오해받고 싶지 않아 시작한 친절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대를 미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이르기도 한다.


서동욱의 그림이 좋은 이유는 대놓고 멜랑콜리하기 때문이다. 그림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고독하며 피로해 보인다. 혼자 있는 장면은 고독하고 둘이 있는 장면은 더욱 외롭다. 우린 많은 순간 이런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상의 피로와 걱정, 숙취 등으로 고단하기도 하고 특정한 사건으로 힘들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있지 않더라도 과도한 경쟁과 유한한 삶에 대한 불안으로 멜랑콜리한 정서를 경험한다.


SNS의 사진들처럼 사는 것이 늘 새롭고 도전적이며 기쁨에 젖어 있을 수는 없다. 삶에는 어둠의 끝에 밝음이 오며, 슬픔이 있기에 기쁨을 인식하, 추함이 있기에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다. 서동욱의 작품에는 밝음, 기쁨, 아름다움 뒤에 우리가 외면했던 혹은 은폐시켰더 우울이 자연스레 드러다.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이다.



멜랑콜리의 역사


(좌)알프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1514 / (우) 에드바르드 뭉크 <멜랑콜리 II>, 1894-1896


이번 전시 명이 독특하다. 서동욱 작가는 영화 <멜랑콜리아(2011)>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명을 지었다고 한다. 영화 <멜랑콜리아>에서는 멜랑콜리아라고 불리는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지구인들은 우울과 불안에 휩싸인다. 영화에서의 행성은 멜랑콜리아지만 작가는 이 행성이 '토성'이라고 생각했다. 점성술에서 토성은 어두움, 불행, 죽음, 고립 등과 관련지어 생각했으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들은 토성을 고대 의학의 사체액설 가운데 하나인 우울과 연관시켜 해석했다. 뒤러의 <멜랑콜리아>에서 하늘에서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토성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작가의 추측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철학자처럼 지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은 멜랑콜리에 빠지기 쉽다고 하였고 낭만주의 시대에는 멜랑콜리가 예술가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와서는 멜랑콜리 애도되지 못한 슬픔의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사랑의 대상을 상실했을 때 그 대상에 달라붙었던 리비도(삶의 에너지)가 애도되지 않고 슬픔으로 남아 있는 상태를 멜랑콜리로 보았다. 현대의 멜랑콜리의 정의는 프로이트식의 정의가 여전히 유효하며 우울과 비슷한 감정으로 사용된다. 뭉크가 그린 <멜랑콜리>는 가족들과의 사별, 연인과의 이별 사건 등에서 애도되지 못한 채 남겨진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멜랑콜리의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점성술에서의 어둠, 르네상스 시대에 철학자와 같은 사색, 낭만주의 시대의 천재성 혹은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되지 못한 슬픔 같은 것일까? 서동욱 작가는 "아름다움이란 예쁘고 매끈한 것은 단지 장식일 뿐이며 예쁜 순결함과 더러움, 단맛과 쓴맛의 모순을 수용"한다고 했다. 작가는 멜랑콜리의 어떤 아름다움에 대해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멜랑콜리가 알려주는 것


서동욱 <기타 연습>, 2023


작가는 모델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인물의 내면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 모델을 등장시키고 배역을 주고 캐릭터를 설정하여 영화감독처럼 작업한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그림)에 젊은 이들을 등장시켰고 그들은 홀로 있어 고독하거나 둘이 있지만 소외된 상태로 그려졌다. 홀로 있을 때보다 둘이 있을 때 훨씬 더 외롭고 소외된것으로 보여진다.


<기타연습>의 서사를 따라가 보자. 남자는 소파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자세로 보아하니 여자에게 연주를 해주기 위해 각 잡은 모습이 아니다. 아마도 기타 코드를 연습하고 있는 중인 듯하다. 가타의 음이 제대로 잡히는지 손가락의 느낌과 귀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가 다가가고 있다. 여자는 남자 앞에 멈추어 서서 긴장이 되는지 두 손을 뒤로 비틀었다. 아마도 긴 시간 고민했던 말들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 입을 열지 못한 채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기를, 혹은 입을 뗄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다. 혹은 이 시간이 부질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녀는 앞에 남자가 있기에 더욱 외로움을 느낀다. 아마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만큼 더욱 외로울 것이다. 사랑은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소통하고 싶기에, 함께하고 싶기에, 가까이 있고 싶기에, 만지고 싶기에 그렇다. 이 욕망의 좌절을 겪게 되면 그리고 이 욕망의 성취가 불가능하다고 느끼면 우린 홀로 있을 때보다 더 큰 고독이 찾아온다. 아니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하지 않아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외로운 것이다. 지금 멜랑콜리 한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혹은 사랑했던 것, 혹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서동욱 작가의 작품에는 모두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젊음은 순간이고, 짧기에 더욱 간절한 아름다움이 있는 시절이다. 이 젊은이들로 묘사된 멜랑콜리는 사라져 버릴지 모를 찰나의 순간에 대한 소중함과 긴장감에 대해 말해준다. 그러니 멜랑콜리하다고 무기력해지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에 젖어들지는 말자. 내가 멜랑콜리하다는 것은 소망하는 것이 있다는 말일테니 말이다.


지금 멜랑콜리 한가? 그렇다면 사랑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혹은 사랑했던 것, 혹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회복하고 싶은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찰나의 순간으로 사라지기 전에.





Exhibition Details

서동욱 개인전  : 토성이 온다

2024.03.16.~ 2024.04.28.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www.oneand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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