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덧없고 영원한>
엄마 방에서 이상한 빛과 함께 희미한 소리가 새어 나왔어.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지.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어. 수상함에 끌리기도 했고 들키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지. 문 틈 사이로 두 쌍의 발이 보였어. 작은 발의 발가락은 천장을 보고 있었고 큰 발의 발가락은 땅을 보고 있었지.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내방으로 도망쳤어.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까치발을 들고는 황급히 도망 나왔지. 내 심장은 작은 새처럼 빠르게 팔딱거렸어.
누구였을까? 분명 엄마방인데 엄마가 아닌 것 같았어. 엄마가 아니라면 누굴까? 큰 발의 주인공은 아빠였을까? 엄마가 아니라면 아빠도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대체 무엇이지? 내가 본 것은 환영이었을까? 나는 밤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어. 소리가 들릴까 봐 빛이 새어 나올까 봐 두려웠어. 문을 벌컥 열어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확인할 수 없어서 불안했어. 나는 밤마다 울었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는 것밖에 없었어. 울면 못생겨진다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울었어. 울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
내가 본 장면을 떠올려 보았어. 그것은 몸이었어. 두 명의 몸이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덩어리였어. 한 사람의 다리는 의족을 했어. 다리를 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 사라진 다리에 의족을 끼운 모양이 기괴하면서도 이상하게 매력적으로 보였어. 매우 비극적이지만 섹시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더욱 에로틱한 생각에 사로잡혔어. 상실은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어. 상실이 가진 무언가에 난 빠져들었지.
그 이후로 나는 두려움과 매혹, 슬픔과 분노, 사랑과 증오, 공격성과 연약함 이런 극단적인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지. 끝도 없이 요동치는 감정은 내 안에 잘 담기지 않았어. 내 몸은 나의 감정을 담기에는 너무 작았어. 나는 내 감정을 글과 그림 그리고 조각을 하며 밖으로 끄집어냈어. 아니, 내가 끄집어낸 것이 아니야. 그것들은 내 안을 빠져나왔어. 기어이 기어이 밖으로 존재를 드러냈지. 나를 빠져나온 것들은 이상한 형상으로 나타났어. 좀 기괴하고 정돈되지 않은 그런 모습이었어. 찢어지고 갈라지고 분열되었지.
나는 그런 기억과 감정을 모두 바늘로 엮어 냈어. 그래, 바늘이야. 바늘은 공격적이면서도 연약한 것이지. 바늘은 부드러운 것들을 뚫고 들어가서 다른 것들을 연결시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가느다란 실을 가지고서 옷, 인형, 태피스트리 등 이전과 다른 것을 창조해.
나의 엄마는 태피스트리를 수선하는 일을 했어. 아주 유능한 기술자였지. 하지만 여자로서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 엄마는 무언가를 늘 숨기는 것 같았거든. 엄마는 외로워 보였어. 능력이 있었지만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 같았어. 엄마는 감옥에 갇혀 있었어. 엄마는 자신을 보호를 해줄 주 알았던 집이라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어. 나도 엄마처럼 늘 집이 필요하면서도 불편했어. 나쁜 기억들로 가득 찬 집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거든. 어느 날 그 집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 나는 어두운 그 집을 나오기로 결심했어.
그렇게 나는 집을 떠났어. 아이를 낳고 키웠어. 지난날의 엄마와 다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야.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 나는 마치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처럼 상실의 고통을 겪었어. 슬픔 때문에 아이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는 날이 많았어. 나는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힘들어했지. 아이에게 먹여할 할 젖은 과거의 기억들이 모두 뽑아 가는 것 같았거든. 내가 집을 나올 때는 이런 것을 상상하지 못했어. 멀리 떠나온 바다 건너 이곳에는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어. 하지만 이전에 살던 집의 기억이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어. 물리적으로는 이전의 집과 멀어졌지만 마음은 언제나 이전 집에 갇혀 있는 것 같았지. 왜 그랬을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하지 말아야 할 상상을 때문일까? 욕망해서는 안 되는 것을 꿈꾸었기 때문일까? 허락받지 못한 것을 한 대가로 저주에 걸린 것일까?
나는 매일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했어. 괴로운 생각이 들 때마다 무언가 만들어 내며 쏟아 냈어. 때로는 파괴적인 분노이기도 했고, 끓어오르는 감정의 분출이기도 했어. 하지만 무언가를 만들면서 서서히 격정적인 감정은 잦아들기 시작했어. 나를 가두고 있던 집은 실제 나의 집이 아니었어. 나의 상상이 계속 만들어낸 집이었음을 알게 되었어.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던 거야. 나는 문을 열고, 아니 열린 문틈 사이이로 걸어 나오면 되는 거였어. 이제 누가 나에게 나가도 된다고 허락해 주지 않아도 돼. 밖에 있는 누군가가 환대해 주지 않아도 돼. 나는 그저 걸어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나는 이제 다시 집을 지을 거야. 예전 어머니가 했던 방식처럼, 실을 엮어 나만의 집을 지을 거야. 내 품의 알들을 보호하는 집을 지을 거야. 다리가 잘려도 머리통이 날아가더라도 끝내 '너'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집을 지을 거야. 나의 집은 나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자, 지금의 나에 대한 사랑이며, 내 안에 낯선 타자를 사랑하는 새로운 기억이 될 거야.
루이스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2025. 08. 30 ~ 2026. 01. 4
호암미술관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562번길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