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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감각을 포획하기

김찬송 개인전 <Vein and Fever>

by 정희주
김찬송 <꼬리들>, 2025, 캔버스에 오일, 193.9X130.3cm


처음에는 숨고 싶었는지도 몰라.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곳으로 숨어들고 싶었어. 처음에는 '나'의 숨김이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실은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더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야. '너'를 통해 비치는 '나'의 모습에 자신이 없어서야.


나는 ''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 ''의 눈동자에 비치는 ''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 ''의 눈동자 속에 ''는 부적절해 보였거든. 끊임없이 흔들리고 불안정하고 어지러웠어. 더는 ''를 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난 숨었어. ''를 볼 수 없는 곳으로 숨었어.


숨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 무엇으로도 '나'를 잘 가릴 수 없었거든. 어떻게 숨어도 '나'는 드러날 것만 같았어. 그래서 나는 주변의 것들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어. 나뭇잎과 함께 흔들렸어. 흔들리면서 살이 긁히기도 했어. 가끔은 그 작은 긁힘의 접촉도 좋았어. 살아있는 것 같았어.


바람과 함께 호흡했어. 바람과 함께 숨 쉬는 것이 가장 강력한 숨김이라는 것을 알았어. 바람이 불 때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바람이 지나갈 때 숨을 내쉬었지. 그럼 나는 바람이 되는 것 같았어. 바람을 통해 나를 숨기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바람이 되기도 했어. 바람이 되어 너의 근처에 가기도 했지. 그렇게 나는 바람이 되어 세상을 다니고 바람이 되어 숨 쉬고 바람과 함께 숨었어.


스크린샷 2025-07-13 153258.png 김찬송 <그 아래의 맥동>, 2025, 캔버스에 오일, 100 X 30.5cm



내 호흡이 들리니?

나는 숨어 있지만 숨어 있는 것은 아니야.

나는 언제든 바람이 되어 너에게로 갈 거야.

나는 그 순간을 노리고 있어.

내 모습이 보이니?

나는 숨어 있지만 숨어 있는 것은 아니야.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

나를 찾고 있는 너에게 갈 준비를 하고 있어.

바람이 부는 날

바람처럼 너에게 흘러갈 거야.







Exhibition Details

김찬송 <Vein and Fever>

2025. 06. 20 ~ 2025. 07. 18

파이프 갤러리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21 2-3F)

pipe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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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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