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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Oct 12. 2020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냐’라는 말을 듣고

누구보다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오늘로 중국에 입국한지 5일째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한 호텔에서 격리 생활을 한 지도 5일이 흐른 셈이다.


추석 연휴 무렵 급히 출국 준비를 하면서 옷가지며 먹을 거리를 이것저것 챙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연초부터 줄곧 먹고 있는 우울증 약도 빼놓을 수 없었다.


사실 이미 약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건강은 이미 좋아졌다. 코로나 시기에 외국으로 가기 위해 챙겨야 할 서류에 시달리며, ‘약까지 처방받기 번거로운데 그냥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니까. 나는 이미 그 때보다 단단해졌으니까. 약이 없어도 건강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로는 약 없이 학교로 돌아가기가 겁이 났다. 특히 모든 짐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온 기숙사 방을 떠올리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집으로 돌아왔던 그 마지막 순간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 무렵에는 밤마다 가슴이 떨려 도저히 잠들 수 없었지. 정신을 갉아먹는 생각들이 멈추지 않고 자꾸만 자꾸만 떠올랐었지. 그랬었지. 정말 괴로웠었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마치 그때처럼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은 약을 넉넉히 챙겨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들렀다. 어쩌면 또 다시 그 때처럼 아무리 잠들고 싶어도 도저히 잠들 수 없는 밤이 올지도 모르니까. 만약 커다란 파도가 나의 조그만 마음을 덮쳐 버리는 그런 밤이 오더라도, 이 5mg의 조그만 알약 반 조각이 나의 구명정이 되어 줄 테니까.




그런데 오늘은 그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발단은 온라인 수업이 끝날 무렵,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대답 중 마지막 한 마디였다.

“이 문제가 그렇게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야”


그 말이 귀를 통과해 내 머리에 입력되는 그 순간 심장이 쿵, 하면서 가슴이 떨려왔다.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구구절절히 질문하는 나를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게다가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바보이거나 잘난척쟁이라고 생각하겠지? 중요한 질문을 했어야 했는데.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의 감정은 날카로운 유리가 되어 내 가슴을 마구 찔러왔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봐도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원래 수업이 끝나면 바로 녹음 파일을 들으며 필기를 보충하려고 했는데, 차마 그 수업의 녹음을 다시 켤 수가 없었다. 바보같다.


아직 학교에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펼쳐진 캐리어 안의 두툼한 약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약에 의존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 일을 계기로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다.


꼭 이렇게 자책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마구 찔러야만 하는지.
꼭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헤집어놓아야만 하는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확실치도 않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만에 하나 다른 사람들이 정말 나를 비웃고 있대도 나만은 굳건한 내 편이 되어줄 수 없는 것인지.


오늘과 같은 일을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마주치게 될까? 수없이 많이, 이 길을 걷는 내내 끊임없이 마주치게 될 것이다. 너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너의 생각은 틀렸다고, 너의 질문은 핵심이 아니라고, 너의 분석은 엉뚱하다고. 그리고 심지어 때로는 더 적나라하고 더 날카로운 비판을 또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떨려 오는 내 가슴을 진정시켜 주는 것은 이 약이어야 할까? 아니면 나 자신이어야 할까?


공부를 하면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생각을 부정당하는 일은 많을 것이다. 내 존재를 부정당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를 지켜주는 것이 이 약이어야 할까? 아니면 나 자신이어야 할까?


답은 정말이지 간단하다.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부정할 때에도 나만은 나를 감싸안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간단하고 당연한 일을 잘 해내지 못해서 이렇게 스스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이렇게 넋두리처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고 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의 편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아직은 쉽게 흔들리는 이 마음도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단단해질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더 강하고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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