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가는 길, 바지락 파는 할머니를 보며 든 생각
건강상의 문제로 올해 1월에 북경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치료를 마치면 곧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 졸업논문을 쓰게 되리라는 예상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완전히 빗나갔다. 당분간 돌아갈 수 없게 된 학교 기숙사의 도서관 대신 집 근처의 작업 공간을 찾게 됐다.
그렇게 논문을 쓰기 좋은, 아주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냈다. 동네 시장을 가로질러 가면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일주일에 7일씩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어느 날, 느지막이 일어나 휘적휘적 카페로 향하던 길이었다.
터벅터벅 걸어 시장을 지나고 인도를 걷는데 문득 길가에 줄지어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들은 인도 아래 찻길에 앉아 인도 위에 야채며 마른 생선 같은 것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시장 안의 야채가게나 생선가게에 비하면 대부분 열 가지를 넘어가지 않는 단촐한 제품 구성이었다.
시장 입구에서 카페에 이르는 짧은 길 위에서 할머니들은 저마다 쪽파를 다듬거나, 마늘을 까거나, 상추를 예쁘게 진열하거나, 바지락을 까면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한 할머니가 파는 바지락살이었다.
한 봉지에 5,000원 하는 그 투명한 비닐봉지에는 할머니가 하나씩 직접 깐 바지락살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전에 카페로 향하는 길에 보면 할머니는 바지락이 가득 담긴 상자를 옆에 두고 한 알씩 바지락을 까고 계셨다. 입으로는 연신 "바지락살 한 봉지에 오천 원이야 오천 원"이라며 손님을 부르셨다.
오후에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바지락을 까고 계셨다. 입으로는 여전히 같은 말로 손님을 부르셨다.
딱 하나 차이가 있다면 저녁 무렵의 바지락 상자는 바지락이 거의 다 팔려 상자 바닥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아침저녁으로 카페를 오갈 때마다 그 할머니를 눈에 담게 되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늘 그 자리에서 바지락을 까고 계셨다. 바지락을 한 알씩 까서 봉지 한 장을 채우고 또 채웠다. 그렇게 조그만 바지락살로 몇 장이나 되는 비닐봉지를 가득 채워냈다.
바지락 파는 할머니를 보게 된 이후 카페에서 공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조금 달라졌다.
우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 4,100원이 바지락 한 봉지 5,000원의 가격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과도를 쥐고 손을 한참 놀려 채워 넣는 바지락 한 봉지. 그것을 5,000원에 팔고 있는데, 나는 한 잔 커피를 위해 이렇게 4,100원이라는 돈을 쓴다.
그렇다면 나는 4,100원을 쓰고 여기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쓰는 논문은 4,100원의 가치를 하는 글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바지락을 까고 그것을 매일 반복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 늦게 들어오신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일터에서 사계절 내내 땀 흘리며 일하고 계신다.
그렇게 일하시는 것이 이미 20년이 넘었다.
그래서 논문을 쓴다고 시원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나의 하루가 때로는 사치와 같이 느껴지곤 했다.
마지막으로 노트북의 하얀 화면과 할머니가 바지락을 채워 넣는 투명한 봉지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그 조그만 바지락 살을 하나씩 까 넣어 결국 한 봉지 비닐을 가득 채워내는 것처럼, 나도 한 자씩 한 자씩 써넣다 보면 한 장을 다 채워낼 수 있겠지 하는 희망 같은 것이 생겼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매일매일 같은 일을 하시면서도 그것이 싫다고 과도를 내팽개치지 않는다.
매일 가만히 앉아 과도를 쥔 손을 놀리고 또 놀리실 뿐이다.
카페에 오는 길에 본 할머니의 그 모습을 떠올리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금세 짜증을 내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져서, 다시금 자세를 바로 하고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결심했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그렇다면 나의 졸업논문은, 내가 앞으로 써낼 글은, 오늘 내가 쓰는 글은 과연 얼마의 가치를 가진 글인 것일까?
할머니의 바지락 한 봉지보다, 부모님이 사계절 내내 흘리는 땀방울보다 더 가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많은 발견을 하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더 간절해진다.
(메인 사진: Photo by Reuben Blak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