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별반짝 Jun 21. 2020

6개월의 시간, 나를 뒷받침해준 것들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한 편의 졸업논문을 완성하기까지


마치 길이 나 있지 않은 숲을 헤매는 것 같았다.

석사 졸업논문을 쓴다는 것 말이다.

헤매어도 헤매어도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괴로운 일이었다.

우선 '심사기간 내에 완성할 수 있을까'라는 공포감이 있었다.

또 어찌어찌 결과물을 쥐어짜 낸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너무 형편없을까 봐, 아니면 '도저히 학위를 줄 수 없는 수준의 결과물'이라고 비판받을까 봐 겁이 났다.

마지막으로 내가 들고 간 결과물이 다른 누군가의 작품과 똑같은 것은 아닐까, 즉 '내가 부지불식간에 표절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예민해지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에 매일 아침 카페로 나가 노트북을 열면 새하얀 화면이 주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러 왔다.

몇 주가 걸려 겨우 끄적여 놓은 제1장을 보며 '이렇게 해서 대체 어떻게 제5장까지 써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던 괴로운 여정도 결국에는 모두 끝이 났다.

'오늘은 제발 1,000자만이라도 쓰자'라고 기도하며 노트북을 열던 아침이 모여 70,000자의 논문이 되었다.

논문을 완성한 것도, 무사히 심사를 통과한 것도 모두 기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성과는 아마도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편의 논문을 완성해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이러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무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 감정을 뒷받침해주는 멘토, 성공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우선 "실무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라 함은 바로 지도교수님, 가까운 동기들, 그리고 선배님들이었다.


지도교수님은 내 졸업 논문의 모든 부분을 꼼꼼히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해 주셨다.

졸업논문을 쓰는 내내 길을 헤매는 심정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더 막막함을 느끼는 순간이면 교수님은 ‘그래 지금쯤 네가 더 헤매고 있을 줄 알았다’라는 듯이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마치 구호품과도 같은 지시 사항을 몇 개씩 던져주고 가셨다. 그걸 받아 들어 펼쳐보면 지금 나의 문제점과 해결책이 늘 아주 정확하고 간결하게 지적되어 있곤 했다.


가까운 동기와 선배님들은 나 혼자 처리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교수님 선까지 가기에는 애매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동기들과는 서로 논문 초고를 보고 문제점을 지적해 주기도 하고, 좋은 점을 칭찬해 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동기들의 논문을 보며 스스로 배운 점도 많았고, 나의 논문에 대한 동기들의 지적을 통해 개선한 점도 많았다. 선배님들은 나의 논문을 보고 동기들과는 또 다른 더 넓은 관점에서 다양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셨는데 이것 또한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값진 도움이었다.


Photo by Tengyart on Unsplash


다음으로 "감정을 뒷받침해주는 멘토"라 함은 바로 중국어 선생님과 운동 트레이너 선생님, 그리고 가족들이었다.


내가 “논문 진도가 안 나가서 너무 막막해요...”라는 투정을 부리면 중국어 선생님은 마음을 뒤흔드는 멋진 중국어 성어를 툭 던져주고 “할 수 있어”라고 북돋아 주었다.

운동 트레이너 쌤은 "하면 됩니다. 자, 준비!"라며 운동 한 세트를 더 빡세게 시켰다(?).

가족들은 "일단 밥부터 좀 잘 챙겨 먹어"라며 건강하게 6개월의 여정을 해낼 수 있도록 나를 돌봐 주었다.


내가 사소한 힘듦에 관해 이야기하면 이들은 나의 힘듦이 정말 별 것 아닌 것임을 확인시켜주었던 것이다.

곁에 이러한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이 사소한 힘듦을 크게 키우지 않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었다.



Photo by Steve Halama on Unsplash


앞서 두 가지 요소가 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었다면, 마지막으로 “성공의 경험”은 온전히 나의 내면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성공의 경험으로 충만한 사람”은 아니다.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우므로 내가 정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공의 경험이 적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실패를 끊임없이 곱씹고 확대 재생산하는 성격 때문에, 내 내면에는 주로 실패의 경험이 더 깊이 남아있다.

그런 실패의 경험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아마 이번에도 해내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주입하고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습관을 버리고 "성공의 경험, 성공의 기억, 성공의 감각"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년간의 유학생활 동안 작은 성공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왔다.

이런 성공의 기억들을 근거로 삼아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도 정말 막막했었는데 결국에는 해냈지’, ‘그때도 지금처럼 길 없는 숲을 헤매는 기분이었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지’, ‘대 성공은 아니더라도 언제나 평균 정도는 무난히 해냈었지’.


Photo by Jukan Tateisi on Unsplash


결국, 서툴게 졸업논문을 써 나가는 6개월의 시간은 길이 나 있지 않은 숲 속을 헤매는 것처럼 막막하고 두려운 시간이었다. 때로는 도저히 시간 안에 논문을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이대로 1년 졸업 유예를 선택할까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막막함, 두려움,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어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끝까지 버텨 봤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보자면 단순히 논문을 끝까지 써내는 것뿐만 아니라, 졸업논문을 쓰는  시간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점철되지 않기를 또한 바랐다.

모르는 길을 헤매더라도 그 길 위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원했다.


길이 없는 깊은 숲 속을 헤매듯 막막하고 두려웠다.

하지만 나 홀로 헤매는 이 깊은 숲 속이야말로 하얀 햇빛, 햇빛 아래 초록 잎사귀, 잎사귀를 찰랑찰랑 흔드는 산들바람, 발목을 스치는 신선한 풀과 꽃, 나무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람쥐, 그 아래 둥근 버섯을 한껏 구경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리라 믿었다.

그래서 어쩌면 다시 못 올 이 깊은 숲 속을 기쁜 마음으로 한껏 향유하고 싶었다.


Photo by Emma Frances Logan on Unsplash


이번 6개월의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위의 세 가지 요소의 뒷받침 덕분이다.

감사한 일이다.

이 6개월의 시간을 좋은 경험으로 기억에 새기고 또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맞이하고 싶다.




(메인 사진: Photo by Jukan Tateisi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당신의 검색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