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별반짝 Mar 06. 2020

저는 당신의 검색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정보가 필요할 때만 다짜고짜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이름을 보니 썩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에휴... 또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바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핸드폰을 한켠에 밀어 두고 하던 일을 마저 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이이이이잉...


핸드폰이 한 차례 더 울리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재차 전화를 건 것이다.

'뭔가 급한 일이 있으신가?'

전화를 받을 상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핸드폰을 옆으로 밀어 두었다. 진동은 금방 멈추지 않고 끝까지 울리다가 마침내 멈춘다.


'급한 일이 있다면 문자를 남기실 테지.'

하지만 두 번의 전화가 걸려온 이후 어떤 연락도 다시 오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를 남겼다면 '어떤 일로 전화했었으니 전화/문자 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주는 것은 나 혼자서만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이었던가?


Photo by Koby Kelsey on Unsplash



'좋은 게 좋은거지'에서 '이 사람은 진짜 싫다'가 되기까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나와 같은 학교, 같은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람이다.

연락이 빈번해진 것은 지난 1월부터였다. 이제 장학금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항상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은 상대방 쪽이었는데, '잘 지내?'라는 말 다음에는 반드시 장학금에 관한 질문이 나오곤 했다.

정보가 유용하기에 내게 계속 연락을 하는 것일텐데도, 단 한 차례도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내가 일방적인 정보 '제공'이라고 느끼는 상황을, 상대방 쪽은 함께 하는 정보 '교류'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두달 여간 그러한 상황을 너그러이 받아주었던 것은, '좋은 게 좋은거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너무나 개인적인, 지원 서류의 상세한 내용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걱정이 많이 되시나보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귀찮다는 이유로, 조금 불쾌하다는 이유로, 사실은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는 이유로 모른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하면 내가 아는 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얼마나 궁금하시면 그러시겠어', '얼마나 애가 타고 불안하면 그러시겠어', '얼마나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그러시겠어'......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나를 불편하게 했다.

결국 상대방의 연락이 달갑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Photo by Ryan Franco on Unsplash



쓸모 있는 경쟁자

그 분(A) 외에도 장학금에 함께 지원하는 사람은 더 있었다. 분을 B라고 칭해야겠다.

B 역시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오곤 했다.

그런데 A와 B를 대하는 내 마음이 정말 달랐다.


B가 질문을 해올 때면 나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내가 아는 것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조잘거렸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두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B는 나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올 때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 고마워'.


B와 나는 신청에 관해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함께 답을 찾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관해 함께 걱정하고 함께 웃었다.

그랬기에 나는 B를 동반자라고 느꼈다.

같은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전우라고 느꼈다.

우리 두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든,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같이 맥주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A는 달랐다.

A는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 또는 그 질문을 하기 위한 사전 질문('잘 지내?') 이외에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마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나 구글 검색창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단 한번도 고맙다는 인사가 없었다. 마치 우리가 네이버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듯이.


게다가 그가 던지는 질문의 내용은 때로 단순한 신청 절차에 관한 궁금증을 넘어섰는데, 그것은 바로 '내 서류의 수준'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나의 어학 점수, 추천서를 써준 교수님, 지도교수님의 확답 여부, 기관의 추천 여부, 학업계획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나로 하여금 '아, 이 사람은 나를 경쟁자로 여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에 더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으면서, 나의 정보를 얻어가려 하곤 했다.

이 사실 그와의 대화 중에 눈치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에 의해, 나는 A가 나를 쓸모 있는 경쟁자 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hoto by Ashley Jurius on Unsplash



자신이 절박하다고 타인을 도구 취급하지는 맙시다.

A는 나에게 몇 차례 이런 말을 했었다.

'꼭 되어야 하는데... 꼭 합격해야 하는데......'


학교에 합격하고 장학금을 받는 것은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꿈이고 중요한 목표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는 다른 이들보다 장학금이 더 절박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관련 이야기: <"집에 돈이 좀 많나 보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절박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신을 도와줘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신이 절박하다고 해서, 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타인을 도구 취급하는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이런 사람이 정말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做事儿先做人"(쭈오 슬 시엔 쭈오 런)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라'


때로 목표를 이루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어떻게 보냈는가'라고 생각한다.


나를 검색창으로 여기는 그 분께 해 드리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번 일을 거울 삼아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에게는 "컨셉"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