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당면한 과제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들에 관하여
포항제철이 없었다면 한국 중공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포스코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하는 강연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위의 말은 강연을 진행해 주실 연사분을 모시며 사회자 분께서 하신 말씀이다. 한국 산업사에서 포항제철이 갖는 중요성을 아주 명료하게 보여주는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70-80년대는 포항제철을 통한 산업재 조달과 전면적인 중공업 육성이 발 맞춰 진행된 시기였다. 철강은 시멘트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다. 전면적으로 제조업을 육성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철강을 자체적으로 생산 및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산업재 확보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반대로, 국가 차원에서 중공업을 육성하는 정책 배경은 포항제철이 성장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한국 정부의 정책은 "전후방 산업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이끌어냈고, 이것은 당시 한국 경제의 호황을 이끈 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포항제철의 성공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성과다. 처음에 한국에서 제철소를 만든다고 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 특히 1968년 세계은행(IBRD)의 <한국경제동향보고서>가 결정적이었다. 이 보고서는 ‘가난하고 기술이 부족하며 노동자 교육 수준도 낮은’ 한국이 대량의 자본 및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철강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국 철강산업은 이러한 예측을 뒤엎고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당시 세계은행이 투자하기 적합한 곳으로 인정했던 브라질은 한국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
이후, 1986년 영국 런던에서 박태준 회장과 60년대 당시 IBRD 아시아지역 실무 담당자인 선임연구원 자페(Jaffe)박사가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박태준 회장은 "그 때(1968)년 세계은행은 당신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라 한국을 거절하고 브라질을 선택했죠. 당신은 지금도 한국이 제철소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웃으며 물었다. 자페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이 그 때와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같은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나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나는 당시에는 바로 당신 같은 한국 사람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중국의 등소평도 신일본제철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포항제철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1978년 10월일 것이다. 이 시기에 등소평은 외교적으로 일본을 방문했으며, 그 일정 중 하나로 신일본제철 사장 이나야마 요시히로와 함께 기미쓰 제철소를 방문한 바 있다. 포항제철은 이미 1973년 7월 3일 포항 제1기 설비를 성공적으로 완공하고, 3년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해외의 예상과 달리 본격 개업 6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었다. 등소평은 신일본제철 사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같은 회사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나야마 요시히로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불가능할 것 같다. 중국에는 박태준 회장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포항제철의 성공은 기적이었다. 과거의 누구도 감히 예상치 못했고 미래의 누구도 섣불리 따라할 수 없는 전설적인 것이었다.
오늘의 포스코가 당면한 과제
이처럼 세계 철강산업의 역사를 새로 쓴, 그리고 개발도상국 경제성장 연구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사례가 된 포항제철은 오늘날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 새로운 과제란 바로 공급과잉 문제와 샌드위치 위기이다.
1. 공급과잉 문제
주로 중국 철강업계의 부상으로 인해, 세계 철강업계의 공급(조강)능력은 크게 증가해 있다. 반면, 주로 중국의 경제 둔화로 인해 세계 철강소비는 감소 추세에 있다. ‘공급 능력은 이미 큰 폭으로 증가해 있는데, 수요가 여기에 따라주지 못한다면 이 공급능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이 바로 현재 철강업계의 최대 이슈이다. 아래 그래프는 바로 이러한 철강 공급과 수요 사이의 격차를 보여준다.
2. 샌드위치 위기
샌드위치 위기란 한국 철강산업 뿐만 아니라 한국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겪는 문제이다. 원래 한중일 3국은 제조업 영역에 있어서 나름대로 균형적인 분업 구조를 유지해 왔다. 바로 일본이 상대적으로 기술 경쟁력이 높지만 가격 경쟁력은 낮은 상품을 생산하고, 중국은 기술 경쟁력이 낮되 가격 경쟁력이 높은 상품을 생산하며, 한국은 이들 사이의 중간 포지션을 담당하는 분업 구조이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일본이 아베노믹스와 구조조정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국은 기술수준이 급속도로 향상되며, 둘 사이에서 한국의 포지션이 상당히 애매해졌다. 즉,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버려서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포스코의 전략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포스코의 전략은 크게 사업 다각화와 차세대 설비를 통한 상품 경쟁력 확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사업 다각화
포스코는 이미 철강제조를 중심으로 다각도로 뻗어나간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 포스코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고, 아래의 '포스코 그룹 사업 개요 목차'에서도 이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이차전지 부문과 관련된 '포스코케미칼' 그리고 '포스코에너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철강 분야와 2차 전지 소재 분야를 새로운 성장 축으로 설정한 바 있는데, 바로 이 두 계열사가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중심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곧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은, ‘포스코는 원재료 확보에 대해 과연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포스코의 핵심 사업인 조강은 물론 새롭게 확장하는 이차전지 소재 분야 또한 안정적인 원재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포스코는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중국, 강력한 조직력을 가진 일본과의 경쟁 속에서 어떻게 원재료를 확보해내려는 걸까?
이번에 이 오랜 의문을 해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얻은 답은 첫째, 포스코는 이미 다량의 원재료를 확보해 두었으며, 이것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마침 바로 엊그제도 ‘포스코가 인수한 아르헨티나 소금호수의 리튬 매장량이 전기차 3억대분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둘째, 포스코는 원재료 특히 2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업계의 리딩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며, 다만 이들 분야가 포스코의 사업 구조를 다각화해주는 역할을 발휘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포스코 케미칼에서 이차전지 관련 부문은 현재 아직 매출의 20-3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율을 차근차근 늘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스코의 이차전지 부문 진출에 관해서는 다음 글의 후반부에 보다 자세한 내용이 있다)
2. 차세대 설비(파이넥스 방식의 용광로) 도입을 통한 상품 경쟁력 확보
포스코는 1992년부터 기존 용광로 공법에 비해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인 새로운 공법 개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파이넥스 공법이다. 파이넥스 공법의 개발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 1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따라서 그만큼 안전성이 검증된 기존 고로 방식을 대체하기까지는 아직 시간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만약 파이넥스 방식이 성공을 거둔다면 상품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방식 자체를 수출할 수도 있게 된다.
추가적으로 철강의 국제 수요에 대해서 포스코는 "국가별 철강 수요는 줄겠지만, 전지구적으로는 철강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철강 수요를 강력하게 견인했던 중국의 수요는 둔화되겠지만, 인도,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의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세계 수준에서 철강 사용 영역 및 수요 총량은 끊임없이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포스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나는 줄곧 포스코라는 기업에 대해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확신은 주로 그 동안 한국의 경제발전사, 산업구조, 정부-기업관계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면서 형성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차전지 산업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한국 기업은 전후방 산업의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절박하다'라고 판단했다. 포스코의 최근 움직임은 나의 이러한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점이 나로 하여금 포스코의 행보를 진심으로 지지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포스코의 한 관계자분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 분을 통해 포스코라는 기업에 대해 더욱 강력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포스코는 출범 자체가 국민을 위해 탄생한 기업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포스코가 재벌 그룹과는 또 다른 (성공적)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스코는 제철보국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발전할 겁니다"
그 분의 믿음은 단단한 땅 위에 건설된 성벽처럼 아주 견고한 것이었다. 왜? 포스코가 극복해야 할 어려움을 냉철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 방향성을 따라 움직임에 있어 포스코의 구성원들이 가진 능력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짊어진 포스코의 밝은 내일을 기대한다.
*저는 최근 포스코 관계자분의 강연에 참석하여 포스코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내용은 그 분의 말씀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강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