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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Jan 03. 2023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더니

11월 25일, 북경대 중관신원 3호동 건물 봉쇄와 학생들의 항의

11 25, 날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열고 상황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숙사 단톡방에는 메시지가  그대로 화산 폭발  남은 화산재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수많은 메시지를 파헤쳐 상황을 파악했다. 핵심은 3호동에 거주하는 중관신원 직원  명이 확진되었다는 것이었다. 중관신원 단지 내의 모든 거주자들은 단지 밖으로 나갈  없었다. 특히 중관신원 3호동은 통째로 봉쇄되어 아무도 3호동 안에서 나갈  없게 되었다. 오전 중에 3호동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PCR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봉쇄 해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었다.


11월 25일 새벽 3시 41분에 2호동 거주자 단톡방에 공지된 내용. '십혼일관'에서 양성이 검출되었으며 해당 튜브에 학생의 샘플이 들어있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공지되어 있다


북경대학교의 외국인 학생들은 '중관신원'이라 부르는 기숙사 단지에 산다. 이 기숙사 단지는 총 아홉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학생들이 사는 것은 2호동부터 6호동까지 다섯 개의 건물이다. 그 다섯 개의 건물 중 하나인 3호동 건물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3호동은 총 12개 층으로 이루어진 큰 건물이다. 이 안에 사는 학생은 거의 천 명에 달한다. 직원들까지 포함하면 천 명을 훌쩍 넘길 것이다. 학생들의 국적 또한 아주 다양하여 정확한 수치가 기억나지 않지만 백여 개 이상의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두루 거주하고 있다.


방호복을 입고 다니며 각 방마다 도시락을 나눠주는 중관신원 직원들. 한 방문 앞에 중관신원 측에서 나누어준 생수가 놓여 있다.


학생들은 바람이 꽉 차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풍선처럼 예민해져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아침 요깃거리로 빵 한 조각과 삶은 달걀 하나가 나온 것에 대해 항의했다. 목이 마른데 물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것과 배가 고픈데 오후 한 시가 넘도록 점심식사를 주지 않는 것에도 불만을 표출했다. 일분일초마다 3호동 거주자 단톡방에 항의의 글이 넘쳐났다. 이러한 학생들의 불만과 반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들은 어린아이처럼 학교의 방역 조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떼를 쓴 것일까?


제로 코로나 시기 중국에서 생활을 하는 외국인 학생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불합리한 것이 넘쳐나지만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나는 확진자가 나온 곳에 간 적이 없는데 통신 기록상 내가 간 곳이라고 확인된다면서 내 통행증(健康宝)을 잠가버려도(弹窗) 어쩔 수 없다. 내 몸에는 아무 증상이 없지만 나와 어딘가에서 스쳐갔던 사람이 코로나에 걸렸다며 나를 끌고 가 격리 시설에 가두어도 어쩔 수 없다. 사랑니를 뽑아 진통제를 사 먹고 싶을 뿐인데 코로나 아니냐며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 PCR 검사를 요구하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 통행증을 잠가버려도 어쩔 수 없다. 건물 거주자 중에 확진자가 한 명 나왔다며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건물 안에 가둬놓고 못 나오게 해도 어쩔 수 없다. 바로 지금, 봉쇄되어 버린 3호동 안에 있는 우리에게 어쩔 도리가 없듯이 말이다.


각자의 방문 앞에 놓인 도시락


그렇다면 3호동 건물 안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있을까? 제로 코로나가  나라의 정책이라고 하니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놓고 있어야 했을까? 확진자   때문에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물 안에 갇혀버린  상황부터가 상식에 부합하는 상황이 아닌데 내가 불만을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키고 싶은 권리가 있다면 목소리를 내야 했다. 당장 우리를 풀어주라고, 건물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항의를 해야 했다. 아침이 이게 뭐냐, 점심은 이게 뭐냐, 저녁은  이게 뭐냐, 물이 부족하니  달라, 학업에 지장이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불만을 표출해야 했다. 당신들은 지금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자유를  순간에 박탈해 렸고 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주지시켜야 했다.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사실을 알았다. 매 순간 온갖 불만을 단톡방에 마구 쏟아냈다. '우는 아이  하나  준다'라고 했던가? 불만을 쏟아내는 학생들이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들처럼 보였을망정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결국 기숙사 측은 3호동 안에  이상 확진자가 없다는 PCR 검사 결과가 나오면 봉쇄를 풀겠다고 공지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이번에는 PCR 결과를 한시라도 빨리 공개하라고 재촉했다. 일부 학생들은 3호동 1층에서 시위를 하겠다며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시에 모두 일층으로 모여라'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이  시간에 3호동 1층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봉쇄에 항의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1층으로 내려온 3호동 학생들(좌). 시위를 촬영해 파급력을 키워 주려고 3호동 밖으로 찾아온 다른 동 학생들(우)


우리는 분명히 봉쇄당해 있었지만 기숙사 측은 처음부터 끝까지 '봉쇄(封闭)'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관리 통제(管控)'를 한다고 했다. 초반에는 잠시 ‘닫고 통제(封控)'한다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11월 26일 오전 11시 41분. 드디어 유학생 사무실의 담당자가 '관리 통제'를 해제한다는 메시지를 3호동 거주자 단톡방에 올렸다. 모든 사람들의 PCR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확인되었으므로 필요한 사람은 건물을 출입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해제를 알리는 정식 공고문도 발표되었다.


관리 통제 해제를 알리는 유학생 담당자의 메시지(좌)와 정식 통지(우)


만 하루를 넘겨 북경대 외국인 기숙사의 확진자 발생과 봉쇄는 일단락되었다. 봉쇄는 풀렸지만, 확진으로 판명된 그 한 명의 직원과 밀접 접촉자들이 어디로 옮겨졌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면(학교 밖)에만 만연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학교 안과 내가 사는 기숙사에까지 도달해 왔음을 사무치게 느낄 수 있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언제 또다시 기숙사가 봉쇄될지 모르니 방 안에 물을 좀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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