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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Dec 06. 2023

팔았다, 배추

결국 팔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월동배추들을 묶어주기로 하고, 꼬박 삼일동안 새벽마다 인부님들을 밭으로 날랐다.


진작 포기했다면 들지 않았을 큰 돈을 써서 어쨌든 배추를 묶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했다. 배추값이 그새 또 떨어졌다더라, 상인들이 계약한 밭도 포기를 한다더라 그런 말들을 해도 후련하더란 말이다.


정 안되면 내가 한포기씩 이고 지고서라도 팔아야지, 뭐. 그런데 오늘 낮에 전화가 왔다.


처음 우리밭을 같이 계약재배하기로 했던 농부언니가  자기것만 팔리고 우리 밭은 못 팔아서 많이 미안했던지, 중간에 소개해준 원예사 아주머니다. 그 아주머니가 결국 나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준 것이다.


워낙 배추값이 안 나오는 때라서 기대도 안했었는데, 어쨌든 아주머니가 데려온 상인 덕분에, 아주머니가 그 상인을 설득해준 덕분에 여차저차 팔게 되었다.


누구는 너무 싸게 팔았다고 하고, 누구는 너희가 직접 거름까 해야한다면 다시 전화해서 이삼백만원이라도 더 받으라고 하고, 또 거름도 제일 싼거 사서 대충 줘버리라고 한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최선까지는 아니어도 최악은 면했고, 어쨌든 나를 믿고 중간에 소개해준 원예사 아주머니도 고맙고, 이번에 계약금이라고 천만원을 보내준 상인할아버지도 인연이 된 사람이니 얼굴을 부딪히고 살 사람이다.


번 거래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우리 식구들 고생한거 생각하면 턱없는 가격이기는 하지만, 아빠 말대로 아예 포기하고 갈아엎는 것에 비하면 훨씬 감사한 결과이다. 그리고 정말, 정말 많이 배웠다.


이 세상에 편하게 돈 벌 수 있는 것은 없는데 농사는 더더욱 그렇다. 너무나 오만했던 내 잘못이지, 이제와서 누구를 욕할 것 하나 없다.


그리고 사람의 인연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이런 성품때문에 몇 해 전 사기사건으로 경찰서를 드나들며 속앓이를 했음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큰 마음으로 보답을 해야 한다.


평일에 열심히 배추를 절여서 보내고, 주말에는 또 열심히 월동배추밭에 거름을 줄거다. 그리고 잘 크라고 기도도 해주고 그래서 그 상인할아버지가 좋은 배추를 가져가실 수 있게 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조금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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