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둘째 주에 코타키나발루로 휴가를 다녀왔다. 내가 없는 동안 내 몫의 일까지 해주시던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당연히 일얘기일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내용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역행자 재밌다. 나 자기계발서 좋아하네."
[역행자]는 작년에 고추 딸 때였던가? 일을 하면서 노동요처럼 오디오북으로 틀어놓은 게 다였다. 그래서 결국 책읽고 글을 많이 쓰라는 거네, 운동도 하고. 아, 감사한 마음은 반드시 표현하라고 해서 당시 내가 마음 속으로 늘 존경해오던 '오은환 선생님'께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평소 자청님의 영상을 워낙 많이 보다보니 굳이 책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속한 독서모임(북적북적)에서 [역행자 확장판]을 선물받게 되었다.
언젠가 읽어봐야지하고 여행을 떠났는데, 나보다 우리 엄마가 먼저 읽게 된 것이다.
평소 시나 에세이를 좋아하는 엄마는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책들은 온통 어렵기만 한 책이라고 여겨, 나와 독서취향이 참 다르다고 느꼈다. 그런 엄마가 역행자를 읽고 나서 온갖 자기계발서와 심리학책, 경영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으셨다.
도대체 어떤 점이 우리 엄마의 독서입맛을 바꿔둔 것인지 너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나의 두번째(제대로 책으로 읽는 것은 처음이지만) 역행자는 5일만에 완독하게 되었다.
역행자의 7단계 모델이야 워낙 유명하니 이 글에서 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은 이 위대한 역행자의 여정을 단 한 줄로 요약해준다.
"유전자, 무의식, 자의식의 명령을 역행할 때, 완전한 인생의 자유를 얻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읽었을까를 생각했는데, 평소 전형적인 순리자의 삶을 살아오신 엄마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들이 생각났다.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안돼. 우리는 빚이 많으니까 안돼. 쓸데없이 돈 쓰고 다닐 궁리만 하는 것이냐. 나는 차라리 돈으로 줘, 돈이 제일 좋아.
평생 가난하게 살아왔고, 사업을 하던 아빠와 결혼하자마자 그 사업이 망하게 되면서(아빠는 친구들에게 큰 사기를 당했고, 그 결과 우리 가족은 쫄딱 망해서 진도로 내려오게 되었다)엄마는 평생을 빚과 가난에 시달렸다.
물론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많이 벗어나면서 우리집에도 여유라는 것이 생겼지만, 그 힘든 기간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로 남았으면 아직도 엄마에게 돈과 빚은 가장 두려운 존재인 것 같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나 역시 돈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면서 학창시절 성격도 점점 내성적으로 바뀌어갔다. (물론 어른이 되면서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점차 밝고 긍정적인 그루루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돈때문에 멈칫하게 되는 상황은 많이 남아있다)
그런 엄마가 이 책을 읽고 부디 자의식을 해체하고, 정체성을 바꾸고, 우리도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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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싶었다. 책도 좋아하고(요즘 가장 큰 낙은 독서다) 글쓰기도 제법 잘 한다. 제법 잘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어제도 한 사장님께서 "그루님은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시나요"라며 부러워하셨다. 인스타그램에서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릴스도 가만보면 화려한 영상편집이 아니라 그 안에 담담하게 담았던 내 글들이 사랑을 받았다.
고3 때,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논술기출문제의 지문을 읽다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해 옆 반에서 가장 똑똑한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 번 스윽 읽고는 이건 이런 내용이고, 이런 주제를 묻고 있다 설명하는 그 친구를 보고 나는 독해력이 떨어지는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되니, 책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올랐다. 절대 못 읽을 것 같았던 [코스모스]도 심지어 재미있게 읽고 다른 팀원들에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코스모스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른 책도 못 읽겠어?라는 마음으로 독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이것이 지나치면 자의식 과잉이겠지만)
독서모임 덕분에 책읽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도 하게 되었다. 전에는 읽고 나면 끝이었는데, 책에서 느낀 점들을 내 스타일대로 완전히 소화하고 싶어서 브런치에 독서기록도 열심히 남기고 있다. 이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라도 더 열심히 책을 읽는 지 모르겠다.
물론 책 속에서 자청님이 우려하는 대로 '책만 읽고 실천하지 않는 헛똑똑이'가 되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정도 부끄러운 글솜씨로 브런치같은 전문가스러운(?) 공간에 올려도 되는 것일까 자가검열을 많이 했었던 내 자신을 반성한다. 이 부족한 글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울림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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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순리자라고 칭했지만 사실 나 역시 어떻게 우리 집이 그 정도 매출을 올려, 어떻게 우리집에서 절임배추를 그 만큼 생산할 수 있겠어, 어떻게 우리집에서 그런 차를 탈 수 있겠어 하며 코딱지만 한 자의식에 사로잡혀있었다.
하지만 나의 몸과 마음과 정신은 갈수록 업그레이드되어 5년 안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가족들의 행복을 지킬 것이다.(물론 우리 가족은 화목한 편이지만 돈 걱정 하지 않는 행복)
역행자를 읽고 만든 나의 정체성은 '스토리텔링 전문가'이다. 생산자들이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꺼내놓고 더 반짝거리는 이야기거리로 다듬어서 소비자들과 연결해주는 일. 내가 정의한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자, 다음에는 중간까지 읽다 말았던 [부자아빠 가난한아빠]를 마저 읽어야겠다. 순리자로 시작해서 역행자의 삶을 사는 수 많은 사례들을 접하면서 내 안의 순리자그루를 점점 없애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