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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Jul 20. 2024

핸드폰을 바꿨다.

핸드폰과 연애의 공통점

최근에 핸드폰을 바꿨다. 한 번만 더 접히는 폰을 사면 논두렁에 던져버리겠다는 우리 엄마가 그렇게나 말렸는데 나는 또 접는 폰을 샀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워낙 상향평준화된 스마트폰 시장이라 큰 감흥은 없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데이터를 옮기는 것도 그리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니라 '환승'이 참 쉬웠다.


이번 폰은 2년 반만에 바꿨다. 사실 이전 핸드폰을 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바꿨다.


우리 엄마는 6년 넘게 같은 폰을 쓰고 있는데, 버벅거리고 느려도 "아직은 더 쓸 수 있으니까"하면서 놓아주지 않는다. 아직도 많이 아끼는 게 느껴진다.


그래. 엄마랑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다.




올해 서른넷인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폰'을 갖게 된 것이 열다섯이니, 나의 핸드폰 인생은 벌써 20년이나 된 것이다. 내 인생 첫 스마트폰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마련했는데, 그 때부터 짧으면 1년 반, 길어도 2년 반만에 다음 폰으로 넘어가곤 했다.


핸드폰을 바꾸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작동도 잘 되었고 조금 깨진 부분이나 수리하면 그만이었으니, 굳이 이유를 대라면 '그냥' 혹은 '조금 질려서'가 아닐까.


처음에는 애지중지 아끼다가 '조금 질려서' 곁을 바꾸는 것은 핸드폰만이 아니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도 짧으면 1년, 길어도 3년을 넘기지 못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핸드폰을 바꿨던 이유와 이별의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곁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 생각을 처음 한 것은 대학교를 막 졸업할 즈음이었다. 그 아이와 헤어진 것도, 핸드폰을 바꾼 것도 막 비슷한 즈음이었다.


평생 함께할 것처럼 굴었고, 오랫동안 아껴주겠다 다짐했었는데 말이다. 별 다른 이유 없이 '조금 질려서' 이별했다. 핸드폰도, 그 아이도.


그리고 그 뒤로 몇 번을 더 나와 꼭 붙어다니는 핸드폰의 자리가 바뀌고 나서야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요즘 흔히 말하는 '능이백숙'의 표본같은 사람이었다. 핸드폰을 바꿀 때처럼 또 '조금 질려'버리면 어쩌지? 연애 초반에 걱정까지 했었다.




그를 만난 지 2년이 훌쩍 지나고 또 핸드폰을 또 바꾸니 옛날 생각들이 난다. 앞으로도 그의 곁에 있는 동안 내 핸드폰은 2년 만에 바뀔 수 있겠지만, 왠지 이번 핸드폰은 오래오래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폰으로 가장 먼저 통화한 사람이 남자친구이다. 나의 능이백숙같은 사람아. 불닭볶음면같은 여자 만나느라 수고가 많아. 늘 고마워.


새 폰으로 예쁜 사진 많이 찍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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