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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Nov 15. 2024

일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놀이터가 되기를

브랜드 '루밍'을 보며 진도농부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부지런한 엄마 덕에 평소에 설거지를 잘 하지 않는다. 한 달에 두 세번 정도 하려나. 오늘은 간만에 설거지를 하는 그 두 세번 중 하루였고, 그 몇 분을 못 참고 그새 유튜뷰를 틀었다.


엊그제 윈키아 플래너를 쓰면서, 새해에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 것을 중요항목으로 배치했기에 '유튜브를 삭제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건강한 컨텐츠만 봐주면 되잖아라는 나다운 합리화를 했다.


내가 선택한 오늘의 건강한 컨텐츠는 '채널톡' 인터뷰 영상이다. 힙hip한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나와 어떻게 시작했고, 손님들은 어떻게 모았으며, 어떤 가치와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등에 대해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이다.


평소 좋아하던 영상인만큼 큰 기대를 가지고 최근에 올라온 인터뷰 영상을 클릭했다. 솔직히 채널톡에 나오는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내게는 참 생소한 브랜드인데, 이미 한국에서 힙하단다. 그 만큼 내가 유행에 둔감한 사람이구나 싶다.


오늘 만난 브랜드도 난생 처음 들어본 브랜드였다. 루밍? 이미 15년이나 된 브랜드라고? 유럽의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들이 전시까지 한 매장이라고?




루밍의 스토리는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였던 대표님께서 그녀의 안목과 취향으로 하나하나 고른 가구와 소품들로 매장을 열었는데 입소문이 났고, 8평에서 시작한 매장이 지금은 360평(?)이 되었단다. 처음에는 매장일을 도와주시던 엄마께 한 푼도 드릴 수 없었는데 지금은 100억대의 매출이라는 것까지.


10분 조금 넘는 영상을 보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이 꿈틀대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을 꿈틀대게 한 것은 8평과 360평, 무일푼과 100억이 아니었다.


그저 가구가 너무 좋아서 시작한 일, '나만 좋아할리는 없잖아. 분명 이걸 좋아할 다른 사람도 있을거야'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 스타일리스트 일을 겸하며 임대료를 충당해야 할 만큼 돈이 되지 않았던 일, 단 한 번도 대출없이 물건이 팔린 만큼 또 다시 다른 물건을 사오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역량이 되는 만큼만 확장해온 일, 지금은 허름하게 하고 다녀도 나중에 제대로 잘 쓸 날을 기대해온 일.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무일푼으로 기꺼이'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할까? 그 전에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 가족들은 진도농부에서 하는 일을 사랑할까? 행복할까?잘 될거라는 확신이 있을까?


루밍 대표님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후에 샌드위치를 사러 읍내에 나가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도농부는 우리 모두의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구성원이 서로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맛있는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며, 맛있게 먹었다고 말해줄 때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니 엄마는 진도농부에서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아빠는 식물을 너무나 사랑한다. 식물이 자라서 매일 매 순간 달라지는 모습에 감탄한다. 그러니 아빠는 진도농부의 1차 원물인 채소들을 아빠만의 속도로 제대로 키워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진도농부의 다른 농부님들에게도 우리의 재배 철학을 잘 전달하는 것 역시 아빠의 일이다.


나는 20대 때 한창 편집샵, 독립서점에 매료되었다. 주인의 취향으로 채워진 공간과 분위기, 상품의 배열을 사랑했다. 진도농부의 온라인, 앞으로 만들어질 오프라인 공간에 우리의 기준과 안목으로 채운 상품들을 사람들에게 잘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상품과 생산자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쉽게 풀어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


우리 솔이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농장의 곳곳을 솔이가 만들어낸 조형물로 꾸며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소품샵을 운영하고 싶다했던 바람처럼, 진도농부의 '굿즈'를 만들어서 우리를 찾는 방문객들이 꼭 먹거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컨텐츠를 제공한다.


그리고 앞으로 진도농부에서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 역시 각자의 역량과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의 자아실현과 안락한 삶을 위한 일터이자 놀이터를 이곳, 진도에 만들어내는 것이 내 소명이 아닐까, 요즘에 부쩍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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