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그루 Nov 29. 2024

난 정말 멍청하게 일하는 걸까?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

일주일 내내 비가 잡혔다.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배추를 해다 쌓아두었다(나와 엄마는 밭으로 가지 않았지만). 날씨는 배추농사도, 절임배추 작업도 힘들게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틀동안 배추를 두둑히 해놓아서 참 든든하다. 편하게 작업할 수 있잖아,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대한민국의 꼭대기가 폭설로 난리다. 배차가 움직이지를 못 하고 꼼짝없이 갇혀있단다. 우리 배추는 무사히 갈 수 있을까?또 전전긍긍이다.


밭에서 배추를 키우고, 여러 과정을 거쳐 배추를 절이고, 꼼꼼하게 작업해서 안전하게 고객님의 집까지 도착을 해야, 다음 날 김장을 했을 때까지 이상이 없어야 비로소 마음을 놓는 것이다. 그제서야 절임배추값이 '진짜' 우리 돈이 되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은 식구들을 비롯해 모든 절임배추 작업자들에게 임금정산을 한다. 우리 식구들도 절임배추나 해야 정산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절임배추가 우리를 먹여 살려 주는구나, 싶다가도 야근수당까지 꼼꼼하게 챙겨 보낸 외국인부님들의 정산금액을 보면 어떤 '현타'도 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한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한달만에 순수익이 수백만원씩 난다는 영상이었다.


그 분의 말에 따르면, 스마트스토어를 비롯해 최대한 많은 채널(플랫폼)에 상품을 올리라고 했다. 여기서 상품이란, 도매사이트에서 퍼온 것을 말한다. 상세페이지도 그대로 쓰면 된다고 했다. 다만 남들과 다른 '차별화'를 위해서 대표사진이나 상품명을 바꿔주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정말 못 해도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의 수익이 난다고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도전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안 될거라고 한다했다. 경쟁자가 너무 많은거 아니야? 의구심만 품고 도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 현타가 왔다. 왜 현타가 왔냐면...


처음에는 사기꾼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성과를 내고 계셨다. 전화응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고, 삼십여명의 직원들이 프로그램을 돌려 최대한 많은 채널에 최대한 많은 상품을 올린다고 했다. 상품을 만드는 것도, 포장해서 배송하는 것도, 교환이나 반품처리를 하는 것도 도매업체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하루에 한 두시간씩 '체크'만 한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덜 일하고 훨씬 많은 돈을 벌면서 훨씬 많은 직원을 두는게 배아파서 현타가 온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너무 멍청하게 일을 하는 것인가 싶어서 현타가 왔다.


영상에서 그 분은 이것저것 다 떼고도 순수익으로 본인에게 하루에 백만원 정도 들어온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절임배추를 하면서 순수익으로 백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절임배추를 절이고 팔아야 하는 것인가. 또 얼마나 안전하게 도착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이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것인가.


외국인부들보다 적은 인건비를 내 통장에 보내면서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 부모님은 더 이상 18년 전, 처음 절임배추를 시작하던 그 젊은이들이 아닌데 언제까지 얼마나 더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게다가 차별화라니. 나에게 차별화란 다른 농장보다 얼마나 더 맛있는 배추를, 얼마나 더 청결하게, 얼마나 더 꼼꼼하게 작업해서 보내느냐, 얼마나 더 친절하게 다정하게 응대하느냐였는데, 저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정말 차별화가 되었다는 것인가.


나는 하루에 순수익으로 백만원씩 벌 수 있는 날이 올까? 정말 나도 저런 부업이라도 뛰어야 하는 걸까? 그럼 우리 부모님도 고생을 덜 할까?


이런 생각들이 십오분 정도 되는 짧은 영상이 재생되는 시간동안 퍽퍽 내 가슴을 쳐댔다.


그렇게 오후를 꽤 멍하게 보내다 절임배추 작업을 마치고 저녁에 다시 사무실로 출근했을 때 마음을 고쳐먹었다.


배추를 잘 받았는데 너무 좋다고, 덕분에 김장 잘 했다고,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고 예쁜 말씀 잔뜩 남겨주시는 소중한 고객님들 덕분에 마음을 먹어버렸다.


그래, 나는 원래 좀 느리고 답답한 사람이야.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유도리(융통성)가 없어서 꽉 막혔다고 부모님조차 절레절레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이렇게 차곡차곡 천천히 내 방식대로, 내 속도에 맞춰 '사람'을 쌓다보면 언젠가 돈도, 여유도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분명 돈이 따라오는 속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고 더디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폭발적으로 터지듯 쌓이는 때가 올거야. 돈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우리 부모님들을 더 평온하게 모실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니까.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해. 그런데 지금은 너무 돈돈거리지 말자. 눈 앞의 돈만 쫓지 말고, 내가 말하는 '진짜 차별화'로 승부하자. 우리의 편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자.


그렇게 언젠가 나도 하루에 순수익으로 백만원씩, 천만원씩 벌면서도 나 대신 든든한 직원들이 회사를 돌아가게 만드는 그 날이 되면 꼭 그렇게 말해야지. 누군가 내게 성공의 비법을 묻거든 나 역시 누구나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다만 그 길이 꽤 더디고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줘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