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일기를 쓰다가 펜을 드는 일조차 귀찮아져 그만두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던 시기에도 계획표를 매일 쓰는 습관은 끝까지 들이지 못했습니다. 일기를 쓰다가 화가 나거나 속상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감정이 더 상해서 일기장을 중간에 덮어버린 적도 많습니다. 이런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실현 가능한 목표를 잡아야겠다고 판단했어요. 매일 하지 못해도 스트레스는 받지 않지만 실천할 때마다 즐거워서 의미가 있는 습관을 가지고 싶어서, 사진으로 좋았던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순간이든 좋아요. 문득 시선을 들었을 때 아름답다고 느낀 창밖을, 사랑하는 가족이 사소한 일에 몰두한 모습을 찍었습니다. 어떤 날은 사진을 찍을 만큼 좋은 일이 없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해도 성과가 없는 것 같은 날, 실망하고 슬픔에 잠긴 날 사진 폴더를 열면 몇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인 수많은 찰나가 저를 위로합니다.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는 금세 사라지는 길고양이나 바쁘게 걷던 길가의 꽃을 찍고 싶었기에 비싸고 좋은 기능이 탑재된 카메라보다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는 데다, 사진 기법이나 구도에 대해 배운 적 없으니 전문 작가에 비하면 제 사진은 대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눈에도 매년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집 앞 목련나무는 아름다워요. 아직 가지는 잎조차 없고 겨울 속에 남겨진 듯 앙상하지만, 수수한 목련꽃이 우아한 것은 오히려 다른 무엇보다 먼저 피어 홀로 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떨어지는 목련꽃을 따라 시선을 내리면 덤불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 있습니다. 철쭉은 부드러운 분홍색인 진달래보다 더 선명히 붉고, 조금 늦게 핀 만큼 더 오래 봄을 증명합니다. 완연한 봄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피는 벚꽃을 보며 마음이 가벼워져요. 초여름은 창밖의 녹음을 따라 다가오며 낮은 담장의 장미 덩굴에 붉은 왕관을 씌웁니다. 집이 학교와 일터에서 멀어 이사를 가야겠다고 불평을 하다가도, 익숙한 집 앞 길목을 나설 때 햇살을 담은 꽃향기가 숨을 가득 채우면 카메라 앱을 켭니다. 항상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오직 10초만 멈춰서 찰칵.
먹지도 못하는 꽃에 흥미가 없으신 분들은 좋아하는 음식을 기록해보면 어떨까요? 주변에 자연이 없는 장소에 살더라도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즐거움을 느끼니까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는 평범한 메뉴라도 더욱 특별한 행복을 남깁니다. 음식이 식탁 위에 올라오기 전부터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다 보면 싹싹 비운 그릇만 남아서, 뒤늦게 사진을 찍을 걸 그랬다고 생각하곤 하잖아요. 하지만 밥풀 묻은 접시라도 좋습니다. 다 먹은 후의 사진만 올라온 후기가 진짜 맛집을 증명한다고 하니까요. 즐거운 시간이 지난 뒤의 어수선한 모습이라도, 사진으로 남겨두면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은 카메라가 그 날짜와 시간을 대신 남겨줍니다. 계산하러 가느라 초점이 흔들린 사진이라도 좋아요. 그만큼 신났던 식사의 기록이니까요.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고 더럭 겁이 나는 일입니다. 글을 쓰면 맞춤법이 걱정되고, 그림을 그리면 원근법이 알쏭달쏭하죠.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기록한다면 그게 나만의 작품입니다. 어차피 내 스마트폰 속에 남을 사진이니 오늘부터 새로운 습관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어떤 작품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좋았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다 문득 돌아보면, 스스로의 시선이 세상의 어떤 모서리에 가치를 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기록은 작품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 10초,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다 문득 아름다운 순간을 만날 때 사진으로 남겨보세요. 슬픔은 쉽게 잊기 어렵지만 좋았던 시간은 기록하지 않으면 금세 증발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커버 이미지 역시 2020년 4월 19일 직접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