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변리사의 법상만사
요즘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아이의 향후 5년간의 독서 로드맵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제 두 돌 반이 막 지난 아이기에 만 3세부터의 독서 계획을 짜고 있는데, 요즘 나오는 책들을 보면 새삼 놀란다. 일반적으로 아가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창작 그림책을 넘어 돌잡이 수학, 과학, 명화부터 만 2세가 넘어가면 경제동화까지 등장한다. (여기에 영어는 기본..)
집에 수학, 과학 전공자인 나와 경제 관련 전공자인 배우자가 있는 입장에서 책 제목만 보고서는 정녕 어린아이가 이런 걸 읽고 이해를 한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다른 부모들이 올려 둔 블로그, 카페에서의 책 후기를 보고 서점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느새 결제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법률 동화는 없지? 학문적으로 법을 아주 늦게 접한 나는 법의 조기 교육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아이에게 어떻게 알려줄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승기의 이번 사태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일단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면, 삭발, 가스라이팅 등 아주 자극적인 단어들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여러 기사의 제목부터 한 번 보면서 뭐가 문제였는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이승기 "소속사 대표, 가족처럼 의지했는데 모욕적 언사 전해 들어"
일단 돈으로 엮이면 가족도 원수지간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먼저 일로 엮인 사이인데 가족처럼 의지했다는 것. 그리고 가족 간에도 모욕적 언사는 오고 갈 뿐만 아니라 종종 폭력사태도 오간다..
이승기 측 "후크 권진영 대표 위협적 언사, 신뢰 깨졌다"
언사로 신뢰를 쌓을 수는 있지만, 사업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일단 그 신뢰는 계약서로 이루어진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이승기 측은 간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승기 측 첫 공식 입장..."믿었던 소속사, 음원료 안 주고 모욕"
사실 사기를 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다. 그것도 내가 가장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 사기를 칠 확률이 높지, 쌩판 모르던 사람에게 그냥 사기를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감정적인 헤드라인 일색으로 여론을 조성하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단편적인 기사만으로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기에 여론을 들끓게 하는 데는 이만한 전략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봐도 저 헤드라인만 보면 이승기는 너무너무 불쌍하고 그 대표이사는 십수 년 동안 이승기를 부려먹으며 이제와서는 인격모독까지 한 천하에 나Xㄴ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승기는 왜 18년간 발생한 모든 음원료를 한 푼도 정산받지 못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내역을 공개하고 정산하라고 한 것일까? 정말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그동안 제기하지 않은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승기가 당연히 주장해서 받아냈어야 할 권리에 대해서 너무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에게 권리가 있는지 정말 늦게 안 것일 수도 있고.
지난주 슈룹에서 세자빈으로 간택된 병판의 장녀와 중전 김혜수가 궁 밖에서 나누던 장면이 떠올랐다.
"여인을 내쫓을 수 있는 법인 칠거지악은 있는데, 여인을 보호해 주는 법은 없는 것인가요?"
"있습니다. 삼불거라는 법이 있지요"
법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방패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 한 장면으로 보여준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삼불거라는 법이 있는 줄 이 날 처음 알았다!!
최근 출판 계약을 한 대표님께서 계약서를 나에게 보여주셨다. 계약서를 읽어보기는 했는데 법은 어렵고 실제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 예측이 어려우니 이 조항이 불리한지 유리한지 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계약서를 쓰면서 어느 한쪽에 명백히 불리한 조항이나 명백히 유리한 조항을 넣는 것은 일반적이 법률 검토를 한 번만 받아도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분쟁이 생기는 것은 급변하는 환경에 따라 과거에 썼던 계약서의 조항이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법을 알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행위가 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미적분이나 주기율표는 살면서 쓸 일이 없어도, 계약서는 안 쓰고 살 수가 없다.(우리가 앱을 깔 때 체크하는 그 표시도 모두 일종의 계약이다)
그래서 나는 이승기의 기사를 보며 아이에게 보여 줄 법률 동화를 찾아본다. 찾아보고 없으면 내가 만들어야지 뭐 별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