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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 Apr 18. 2021

[헤비컨슈머] 심야괴담회,살려야만 한다.

MBC, 비판만 받을게 아니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다가 MBC의 한 토크쇼를 보고,

MBC는 역시 MBC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레트로, 스토리에 있어서 레트로란 무엇인가

 레트로의 유행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아니 오래가고 있다. 빈티지,레트로, 뉴트로를 넘어서 이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할머니룩까지 유행한다. 어르신 유튜버인 박막례님, 밀리논나님의 인기 역시 정말 핫하다 핫해.

 이러한 유행과 함께, 방송가에서도 레트로라는 키워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놀면뭐하니>는 새로운 캐럴 대신, 컨츄리 꼬꼬, 김범수 등 추억의 겨울송에 집중했고, 추억의 예능인 <동거동락> 포맷을 가져와 새로운 스타들을 조명하고자 노력했다. 그 외에도 tvN의 <배달가요 - 신비한 레코드샵>의 경우도, 초반 구성을 보면 라디오식 사연부터 노래 추천, 그리고 세트장 배경까지 사람들의 추억을 건드리려 하는 시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레트로 자체가 주요 콘텐츠가 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우선 현실적으로 단순히 과거의 콘텐츠를 가져오는 것은 현시대의 감성과 맞지 않을 수다. <강호동의 천생연분> , <실제상황 토요일 -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같은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다소 자극적이고, 인위적이라는 평을 배제할 수 없다. 한두 번 콘텐츠를 회생하기에 좋은 '코너' 정도로 활용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X맨 일요일이 좋다> 같은 프로그램들에 대한 향수도 짙다. 하지만, 게스트를 생각해보면, 예전처럼 아이돌이 전 세대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면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거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시크릿', '포미닛', '소녀시대' 등 다양한 그룹들의 이름이나 멤버 이름을 부모님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 'ㅇㅇㅇㅇㅇ'의 ㅇㅇ라고 하면, 전혀 모르실 확률이 매우 크고, 나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또한, 팬덤 자체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전 멤버가 출연하는 게 가능한 아이돌 자체 예능 콘텐츠가 늘어났고,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돌들이 해외 활동도 활발히 했기 때문에 스케줄에 있어서도 조율하기가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러한 와중에 '스토리'로 레트로 감성을 제대로 끌어오면서도 장르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건 바로 MBC의 <심야괴담회>다.

 공포물은 적어도 여름에는 '납량특집'으로 소비되면서 늘 존재하는 콘텐츠지만, 특히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굉장했다. 일요일 아침 온 가정이 보던 <신비한 TV서프라이즈>부터, 애들끼리 돌려보던 <무서운게 딱! 좋아!> 시리즈, 그리고 '빨간 마스크' 등의 이야기는 우리 곁에 늘 있는 콘텐츠 중 하나였다. 나는 정작 무서운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었는데도(실생활에서 자꾸 떠올랐다..), 이러한 이야기를 피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비록 <신비한 TV서프라이즈>가 현재까지 방영되고 있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만, 확실히 이러한 콘텐츠 자체는 웹툰 시장 외에서는 줄어들었다.


 <심야괴담회>는 그렇게 공포라는, 미디어 시장에서 없어진, 레트로적인 장르를 건드린다.

 

 정규 편성에서는 사라졌지만, 파일럿 편성 내에서는 초반에 과거 공포 관련 콘텐츠를 소개함으로써, 당신의 마음 한 편에 숨겨져 있던 공포에 대한 욕망을 끄집어내고 추억한다. 우리가 잊고 있던 레트로 콘텐츠를 꺼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용기 있는 도전이라 평할 수 있다.


2) 스토리텔링의 매력 -> 과몰입

 스토리텔링 콘텐츠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급격하게 늘어났다. <연애의 참견>이 그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해당 프로그램 클립은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썰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까지 생겨,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스토리텔링은 다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이자, 실제 경험으로써 그 자체로 몰입감을 더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더불어, <연애의 참견>에서 나오는 고민상담 이후 후일담 등은 또 보는 재미가 있다.

스크린샷만 하면서 봐도 너무너무 무섭네...

 MBC <심야괴담회>에서도, 일반인들의 사연을 받아 진행된다. 선정된 사연을 4명의 패널들이 각각 하나씩 맡아, 신비롭고 무서운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데, 친구가 얘기해주듯 들려주는 것이 또 하나의 포인트이다. 은밀하고 친밀하게 들려주는 것 같은 모습과, 출연자들 역시 공포로 물든 모습은 몰입감을 더한다.

 +우연히 발견한 웃긴 포인트가 있다. '허안나', '김숙', '황제성'의 조합, 세 명 모두 큰 눈동자(?), 동공(?)을 가진 코미디언이라는 점이다. 제작진이 이를 인지하고 캐스팅을 한 것인지, 우연히도 이렇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끔 눈을 크게 뜨고 사연을 재연하는 허안나의 모습은 진짜 무섭기까지 하다. 따로 인서트 영상이 필요 없을 정도...

 한편,  여기에서 조금 아쉬움이 있는데, 같은 큰 눈 계열(?)인 박나래가 프로그램이 정규화되면서 빠졌다는 것이다. 파일럿 편을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박나래가 유난히 이야기를 생생하게 잘 들려주고, 공포물을 정말 애정 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메인이었던 박나래가 빠지니 이야기에 대한 몰입감이 조금 덜 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파일럿 때 메인 MC였던 신동엽이, 김구라로 바뀐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있었다고 들었다. 나 역시 1화를 보고, 신동엽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나, 회차가 지날수록 김구라가 해당 프로그램을 파악하고 맞춰가서 동화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역시 김구라는 김구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 겁쟁이인 나도 본다

 공포물이 나는 정말 싫다. 내가 겁쟁이기 때문인데, 단순히 콘텐츠를 콘텐츠로서 보지 못하고 한껏 과몰입하여 나의 실생활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공포물을 본적은 단 한 번 밖에 없다. 중학교 때 친구들의 제안에 못 이겨 박민영님 주연의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데, 흔히 망작이라 불리는 그 작품조차 너무 무서웠다. 한창 <고사> 같은 공포 영화가 학생들 간에 유행이었던 때, 나는 정말 볼 게 없었다. 심지어 스릴러 영화인 외국 영화 <나를 찾아줘>가 그런 무서운 영화인지 모르고 엄마에 의해 보게 되었을 때, 밤에 울면서 왜 나에게 이런 영화를 보여줬냐며 베개를 팡팡 두드렸다.


 하지만, <심야괴담회>는 조금 달랐다. 물론 모니터링을 하면서, 가끔 몇몇 에피소드들은 넘기면서 봤으나,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특유의 구성에서 기인한다.

 심야괴담회에는 두 전문가가 등장한다. 화학자 겸 작가인 곽재식 전문가, 괴기한 역사학자인 심용환 전문가는 각각의 이야기에 몰입감을 부여하기도, 혹은 몰입감을 해제시켜버리기도 한다. 특히, 곽재식 전문가는 어떤 이야기를 들은 다음, '그것은 지역의 기후 특성으로 보았을 때, 혹은 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갇혀있을 때 인간은 이런 현상을 겪는다.' 등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공포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패널들의 상상을 와장창창 깨버리곤 하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이런 부분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마니아층 말고 일반 시청자에게도 접근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겁쟁이 입장에서, 곽재식님 없었으면 나 기절했다.

 반대로 가끔씩 심용환 전문가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과거에도 있었다는 것을 인용해 말해주면서, 해당 이야기를 더 오싹하게 만들기도 하고, 공포 이야기에 의미를 더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공포이야기라고 믿고 싶은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과학적으로 다 믿을 수 있게 만든다. 해당 장치를 통해, <심야괴담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결국 시청자의 몫이 된다.

공포 이야기,, 근데 역사 사실을 곁들인

 최근 유행을 좇으면서, 콘셉트가 너무 비슷하거나 (집, 트로트 관련..) 구성적으로 빈약해 보이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하지만 <심야괴담회>는 얼마나 본질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자 집중했는지 그 노력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구성을 보면 정말 오랜만에 탄탄한 구성의 예능이 탄생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애초에 일반인들로부터 사연을 받아, 선정된 사연에게 상금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44인의 온라인 방청객인 어둑시니가 최고의 공포이야기를 선정하면서 추가 상금을 수여하는 등의 포맷은 시청자와의 공감과 소통까지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파일럿 때도 마니아층에게 화제가 되었던 이 프로그램은 정규화 이후로 고전 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1%대의 시청률 결과를 보이고 있는데, 공포 이야기를 애정 하지 않는 나조차도, 이 프로그램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화된 이야기를 탄탄한 구성으로 보여주는 예능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꿈꾸는 것도 좋지만, 제작자 입장에서는 수요가 있어야 다양성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MBC가 최근 도전한 프로그램들 중 가장 구성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촘촘히 짜인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당 채널의 다양성을 지향하는 모습을 계속 보기 위해서라도, 해당 프로그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아니 혹은 추억의 정서가 그립다면, MBC가 초심으로 돌아가 제작한 이 토크쇼, <심야괴담회>를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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