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의 이미지는 Slow City보다는 Fast City에 더 가까울 것 같다. 'Smart'는 도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의미하는데, 효율적이려면 왠지 빡빡한 일정에 바삐 움직여야할 것 같다. 과연 우리는 더 정신없이 살기 위해 스마트시티를 조성하는 것일까?
얼마전 독일인 지인과 창덕궁 비원(후원)을 다녀왔다. 내국인을 위한 후원 입장권은 늘 매진이여서 지인에게 SOS를 요청했고, 외국인을 위한 후원 입장권을 쉽게 구했다. 창덕궁 후원을 무척 좋아해서 몇 번이나 갔지만, English Tour Guide는 처음이어서 평소보다 설명에 귀를 더욱 기울이게 되었다.
가이드 설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비원이 왕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조선의 궁궐들 중 창덕궁을 왜 가장 좋아하는지 이 부분에서 문득 깨달았다. 창덕궁만이 궁궐 안에 유일하게 업무를 위한 공간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ower Game의 한가운데에서 시달리고 궁궐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을 왕에게 휴식을 위한 공간은 꼭필요했을 것이다. 조선왕조는 건물 한 채를 넘어서, 왕이 노닐고 낚시도 할 수 있고 책도 있을 수 있는 거대한 정원 개념의 휴식공간을 마련했다. 창덕궁은 궁궐 공간에 과감한 여백을 주었다.
스마트축산의 예를 들어보자. 현재로서는 농장주 1명이 평균 1,000마리의 돼지를 키울 수 있다. 스마트 서비스를 활용하면 1인이 돼지 10,000마리까지도 키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마리수의 증가가 아니다. 스마트기술이 돼지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통합관리를 해주는 가운데, 농장주가 일일히 축사의 화재 발생 가능성과 돼지의 건강상태 등을 챙기던 때에 비해 여유 시간과 에너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술이 농장주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선물한다. 특히 축산농장주의 고령화 진행 속도를 고려할 때, 이는 더욱 유의미하다. 이제 축산농장주는 축산 신기술 연구, 취미활동, 저녁식사 후 산책 등에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젊은 사람들도 Work-Life Balance를 누릴 수 있는 농축산업 종사를 고려해보게 될 수 있다.
스마트도시(스마트기술)은 인류와 다른 생명체가 지구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지향한다. 진짜 효율성은 우리가 건강하게 생활할 때 발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건강에는 휴식이 전제된다. 그러므로 스마트도시는 기술의 적용 자체를 염두에 두기보다 사람과 환경에 대한 바른 사랑(삶의 여백 고려)을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9월의 창덕궁 인정전 - 업무 공간
9월의 창덕궁 비원(Secret Garden) - 휴식 공간
동양의 궁궐을 처음 본 독일인 지인이 창덕궁이 참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건물과 자연이 함께 있는 것이 좋단다. 그도 직감적으로 Work-Life Balance를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