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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집에 사는 아이들, 타바난.

발리, 타바난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

이 날도 역시나 아침부터 비가 한바탕 오고 있었다.

비도 오고 있고, 숙소에서도 거리가 꽤 멀어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왔다.


뜨갈랄랑 계단식 논.

생각했던 것 보다 아이가 무척 좋아해서 비를 쫄쫄 맞으며 오토바이 타고 올 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기는 우붓에서 유명한 핫스팟이다. 커플들도 많았고 허니문으로 와서 예쁜 드레스를 대여해 입고 인생샷을 남기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런거 안하고 그냥 헐레벌레 논을 뛰어다니기 바빴지만.



3살짜리가 내 사진도 찍어 주셨다.

뒤에 사진찍으려고 서있던 관광객에게 부탁했더니


“내가! 내가! 내가!”


하면서 핸드폰을 가로채더니 자기가 찍어서 보여준다.

의외로 꽤 잘나왔다. 앞으로는 사진을 부탁해도 될 듯 싶다. 근데 사진 보고 흠칫했다. 고생 많이 했나? 몰골이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네. 평소에도 그렇긴 하다만. 뭐.



다음 코스는 숙소 주변에 있던 작은 폭포 겸 계곡. 물 속은 무섭다고 못 들어가고 폭포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만들어 놓은 친환경 샤워 공간과 미완성 나무 그네에서 잔뜩 놀았다.

계곡 입장료를 받던 아저씨랑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는 아이 그네를 밀어주셨다.

비가 또 한 바탕 쏟아지려는지 하늘이 우르릉대서 급히 그랩 바이크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빨래 전 / 빨래 후


아니나다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역시나 비가 쏟아졌다. 쫄딱 맞은 그대로 욕조에 애를 넣고 옷을 목욕시키는 겸 애도 빨래 했다.




관광객 1도 없는 깡시골, 타바난으로 !
귀저기는 필수품


체크인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어젯 밤 어디로 갈지 결정을 못 한 나는 계속 골머리를 쓰며 남은 여행경비에 맞춰 핸드폰에 깔려 있는 모든 숙박앱을 들락거리며 적당한 숙소를 찾았었다. 지금 나가는 이 숙소는 저렴하기도 하고 아이가 쿵쿵대도 상관 없었지만, 복도에 말 소리가 울려퍼지는 특성이 있어서 다른 숙박객에게 민폐가 될까 아이를 조용히 시키느라 힘들었다. 애가 있는 가족단위 숙박객이었으면 그냥 이해하겠지-하고 넘겼을지 몰라도 내 옆 방은 커플 투숙객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숙소를 고르는 기준은 아무래도 ‘애가 애처럼 구는데 내가 지레 겁먹고 혼내도 되지 않는 곳’이 되었다.


아이를 위해서라기 보단 나를 위해서 였다. 나도 온 종일 ‘아이 조용히 시키기’에 온 신경 곤두세우는 것을 그만 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도 겁나게 뛰어다니고 동생과 같이 소리를지르며 놀았다. 나는 그때 ‘남들이 나로 인해 피해를 입든 말든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며 논 것이 아니었다. 그냥 모든 애들이 그렇듯 노는데 정신팔려서 눈에 뵈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배려심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애 였던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재밌는데 도대체 왜 하지 말라는 거야? 어른들은 인생을 몰라.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뿐 이었다. 얘도 그렇겠지 뭐. 몰라.


그렇게 한참을 스크롤을 이리땡기고 저리땡기다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야,야. 그래 이거지.

대나무로 지어진 2층 방갈로.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 정원이다. 집 앞에 나와서 애가 북을치고 트럼펫을 불러도 상관 없겠다 싶었다. 게다가 가격 상태가? 16,000원? 이거지.

그러나, 지역이 너무나도 멀었다. 그 때문에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결국 자기 직전 예약을 완료했다.


해서, 오늘 아침 숙소 호스트인 마데에게 연락이 왔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거니?]

[글쎄.. 어떻게 가야되?]

[택시 타도 되고. 택시비를 지불하면 내가 데리러 갈수 있는데.]

[어. 좋아. 데리러 와 줘.]


그렇게 마데의 밴을 타고 우붓에서 타바난 까지 이동했다. 도로가 자갈밭 반 아스팔트 반 이었다. 무지하게 울렁거렸다. 아이는 기절. 나는 토를 참고 간신히 도착했다.


타바난 지역에 도착 했을 때, 마데는 큰 마트에 내려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마트가기 힘드니까 여기서 먹을 것을 다 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라면종류와 시리얼 쌀, 계란, 빵과 과일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샀다.(무지하게 비쌌다. 쌌으면 5병은 샀을텐데.)

그래도 주변에 편의점 하나는 있겠지. 뭐 아무것도 없으려고? 아냐, 있어. 분명히 있어. 대충 장을 보고 밴에 올랐다. 그 후로 또 대략 1시간을 달렸다. 사실 이때 ‘아 숙소 잘못 잡았나. 어디까지 들어가는 거지? 차 없이는 다니지도 못하겠네’ 싶긴 했다.


-라자팔라 하우스 -



“여기야. 너네가 예약한 곳은 저기고. 키는 없어. 여기 사람이 몇 없어 지금은. 탐험해봐. 여기 넓어. 2분 정도 걸어가면 바다도 있어. 찾아봐. 나 갈게~ 언제든지 메세지 해. 궁금한거 있으면.“



방갈로는 대만족이었다. 아이가 환장하는 2층 다락 계단. 간이 주방 그리고 열대 나무들 까지. 게다가 정말 주변에 묵는 사람 아무도 없어보였고, 우리가 이 정원단지 전체를 전세라도 낸 것 같았다.


라자팔라 하우스 입구 앞에는 바로 공사현장이 있었는데 우리가 묵는 곳과 똑같은 곳을 하나 더 만드려는 것으로 보였다. 공사인력은 나이든 할저씨 한 명뿐 이셨다. 아저씨는 해가 바짝 떠서 쪄죽는 대낮에는 나오지 않으셨고 해가 쉬엄쉬엄 들어가는 3-4시 쯤에 나와서 원숭이 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가 망치로 몇 번 통통 두들기다가 비가 온다는 핑계로 금방 사라지셨다. 그래서 뭐 공사 소음 이라던지 그런 스트레스도 걱정할 일 없었다.


간이 주방


방갈로에는 야외 주방도 포함 이었다. 집 앞에 문만 열고 나가면 야외 식탁도 있었다. 배가고파서 사들고 온 시리얼을 먼저 한그릇 뚝딱 했다.

쌀은 사왔는데, 쌀을 조리할 도구가 딱히 없어서 아무래도 쌀은 그냥 숙소에 기부하고 와야 할 듯 하다.



숙소 지박냥.

먹을 거 뭐 없나 어슬렁 거리길래 사과 반쪽 던져주니 한 입 베어물고 퉤 뱉어버린다. 호불호가 확실한 냥.

계속 우리 방갈로 2층 계단에서 함께 했다.


방갈로 내부의 모습


방 내부는 딱히 특별할 것 없었다. 손 때묻은 나무 선반과 간이침대.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공주님 침대. 먼지가 잔뜩 낀 선풍기. 일회용 샴푸 두어개와 두루마리 휴지가 전부였다. 화장실 변기는 물 내리는 버튼이 없었고 대신에 옆에 엄청 큰 고무 다라이가 있다. 빗물을 받아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용변을 본 후 옆에 다라이에서 물을 한바가지 퍼서 변기에 부으면 싹 내려간다. 따듯한 물은 다행히도 잘 나왔다. 근데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더워서 따듯한 물을 쓸일이 있을까 싶긴 하다.




주변을 탐방하다가 수영장을 발견했다. 아마 이 숙소를 예약한 사람이 쓰는 개인 풀장 같았지만 지금 이 리조트(?)에 숙박객이 한 명도 없어서 우리보고 실컷 쓰란다. 손님이 없는데도 숙소에 계시는 직원 분들은 정말 부지런히 길과 시설장비들을 열심히 쓸고 닦고 계셨다.



호스트 마데가 말한 ‘워크 바이 투 미닛 비치’(걸어서 2분 해변)을 찾기위해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숙소 밖으로 내려가면 바로 대형 화물 트럭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이 나온다. 여기는 차나 오토바이 없이 다니기는 힘든 동네였다. 그러다가 마을이라고 보기에도 뭐한 폐허 안쪽 골목이 눈에 들어와 그쪽으로 향해 바다를 가려고 했는데 미친개가 컹컹 짖기 시작한다. 한 발짝이라도 더 오면 물어뜯어버리겠다는 살기띈 눈빛으로 낯선 이방인인 우리를 쫓아내려 안달이었다.

게다가 목줄도 풀려있어서 더 이상 가기는 무리. 우리는 겁에질려 그 골목을 빠져 나왔다. ‘도대체 바다로 가는 길이 어디야?’ 툴툴대며 다른 부서진 폐허 공터로 들어왔다.


부서진 건물 안쪽에서 사부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플라스틱으로 된 무언가가 바닥에 탁 떨어지는 소리. 여기도 개가 있나? 싶어 폐허 앞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 안을 살폈다. 우리집 꼬맹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 한 명이 창문에 얼굴을 쏙 내밀었다. 여자아이의 눈망울은 거의 얼굴의 반을 차지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공허해 보였다. 여기에 왜 애가 있지? 싶어서 다가갔다.


"할로."

"...."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두려워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 또래 특유의 어른들을 골탕먹이려는 개구진 눈빛도 없었다. 여자아이의 뒤로 빼꼼 키가 더 작은 남자아이가 한 명 더 보였다.


"친구다!"


아이는 폐허 창문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보고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다리 뒤에 쏙 숨었다.


"엄마가 같이 놀자고 그래봐~"

"너가 해봐. 할로~해봐. 내가 무섭나봐."

"아 나 쑥쓰러~ 엄마가 해~"

"아 해봐. 같이 놀게. 할로~해봐."


부서진 집에서 젊은 여자가 슬며시 걸어 나왔다. 아이들의 엄마라고 한다. 엄마라고 하기에 엄청 앳되보이는 얼굴 이었다. 많아봐야 18살 정도 되어보였다. 애들 엄마는 영어를 잘 했고,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왔냐고 물으며 아이들의 이름도 알려 주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가디스. 만 5살.

체구가 만3살인 우리집 꼬맹이랑 엇비슷 했다. 만3살인 동생은 더 작았다. 새로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던지 그래도 기분은 좋은가보다. 남매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같이 장난치며 논다. 신발은 덜렁덜렁 다 떨어지고 발가락은 자갈가루인지 시멘트 가루인지 희뿌옇다. 가지고 있는 자동차 장난감은 바퀴도 떨어지고 망가져서 더 이상 장난감의 기능을 상실한 것들 뿐. 엄마에게 ‘왜 이런 곳에 살아?’라고 묻지는 않았다. 다 사정이 있겠지.



이 집 앞은 대로변이다. 대형트럭, 공사차들이 쉴새없이 경적을 울리며 쌩쌩 지나간다. 잠시만 한 눈 팔면 위험한 일이 생길것 같았다. 하지만 남매는 이미 여기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시끄럽다고 표현하지도 않고,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그냥 위태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로변 앞에 있는 풀숲에서 하얀 꽃을 따며 놀았다. ​우리집 꼬맹이는 계속 가디스의 꽁무니만 쫓아다녔고, 가디스의 3살짜리 남동생은 우리집 꼬맹이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녔다. 아이들이 갑자기 대로변으로 뛰어나갈까봐 이쪽으로 와서 놀아! 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하얀 꽃을 따는 것에 정신이 팔려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집 꼬맹이랑 남동생이 어쩌다가 살짝 대로변이 있는 쪽으로 가려고 하면 가디스는 말없이 팔을 잡고 끌어 당기며 화를 냈다.



가디스가 꽃으로 숫자세기나 기차만들기 놀이를 하며 날 쳐다보길래 “와우 굿 최고” 하며 쌍따봉을 날려주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지 갸우뚱 대며 뒤에있던 자기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가 웃으면서 인도네시아어로 설명해 주었다. 쌍따봉의 뜻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제서야 수줍게 배시시 웃는 가디스.


​그 이후로 계속 숫자를 인도네시아어로 세고, 영어로 세고, 한국어로 세면서 쌍따봉을 해달라고 했다. 처음 봤던 멍한 눈 과는 180도 다른 눈 이었다. 눈이 반짝거렸다.

부서진 집 공터에서 사방에 널린 돌맹이를 한참 던지고 놀다가 꽤 굵은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때에 맞춰 큰 대나무 뭉치를 어깨에 받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한 남자가 공터로 들어왔다.


“아야!!아야!!”


남자는 아빠였다. 아빠도 젊어 보였다. 아니 젊은게 아니고 어려보였다. 아마 10대 부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린아빠는 버려진 폐허를 손수 수리 중이라고 한다.

집을 다 지으면 아내랑 아이들, 가족이랑 다 같이 여기서 살거라고 했다.


하늘이 우르릉 대기 시작했다.


‘아 이거또 큰거오네’ 싶어 남매랑 더 놀고 싶어 발악하는 세살짜리 손을 질질 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바이바이~”


애는 울고 나만 바이바이를 외치며 공터를 빠져나왔다제대로된 보행로가 없어 아이 손을 잡고 젖은 잔디 길을 맨발로 터벅터벅 걸었다. 걷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젖은 잔디의 축축한 감촉과 이따금씩 밟히는 따가운 나무조각들의 감촉이 굳은살 박힌 내 발바닥을 쿡쿡 찔렀다.



좀 묵혀뒀다가 마시려고 했는데 그냥 까버렸다. 아이는 스스로 샤워를 하겠다고 나섰다. 대충 물을 끼얹더니 화장실 물을 내리는 용으로 모아둔 빗물이 있는 고무 대야에 풍덩 들어가서 물장구를 쳤다. 저기 들어가려고 혼자 샤워한다고 했구만. 물놀이를 즐기고 침대에서 꼼지락 대더니 이내 잠들었다. 나는 대충 이불을 덮어주고 바닥에 앉아서 다운받아 뒀던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다.

계속 가디스의 집과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패드에서 나오는 대사 소리가 귀에서 점점 멀게 느껴졌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 걔들은 불쌍한 애들인가? 소주를 한모금 마셨다. 아빠를 반기는 그 얼굴은 불쌍한 얼굴 이었나? 어린 엄마의 얼굴이 불행에 보였던가? 아닌데. 아니면 폐허를 집으로 만들거라던 어린 아빠의 얼굴은 불행한 얼굴이었나? 아니었다.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


음…..


음. 내일가서 또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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