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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나는 나중에 보지 않을 고양이 영상들을 찍는다. 그냥 잠깐 고양이같은 행동을 하는게 귀여워서 찍는다. 얘내들은 진짜 사람이랑 너무 다르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싫으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초면에 안면에다가 대고 송곳니를 들어내고 하악질을 하지 않나, 뭐 맛있고 비싼걸 챙겨줘도 지 입맛에 안 맞으면 퉤 뱉어버리질 않나.


나는 이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언제 어느 때 사라지더라도 깊이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 고양이는 스트릿 출신인데 어쩌다 보니 우리 가게에 정착해서 지금은 우리가 밥을 챙겨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놀아준다. 벌써 1년 됬다. 하지만 나는 이 고양이가 당장 내일 우리 곁을 떠나도 좋다고 생각한다. 떠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밤 늦게 가게 창문을 열어놓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라는 야행성 동물 특성상 좁은 가게에 밤새도록 갇혀있는 것이 마음이 불편해서 였다. 게다가 길 고양이 이기도 했고.

만약 내가 본능에 충실한 고양이로 태어났는데 자유롭지 못하고 낑낑대면서 밤새 어디 갇혀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해 돌아버릴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밤에 야행성을 마구 발휘하며 동네를 활보하고 다닐 자유의 쪽문을 열어놓고 그 대신 고양이가 밤새 차에 치여 죽거나 동네 다른 깡패 고양이한테 물려 죽거나 하는 사고가 발생 할 가능성도 동시에 열어둔 셈이 되는거다. 그래도 내가 만약 이 고양이 입장이라면 "야, 닝겐. 곧 죽어도 쪽문 열어놔. 뒤지기싫으면.(하악질)"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렇다.

어떤 날은 아침에 출근하면 깜짝 놀란다. 쥐를 물고 와서 간밤에 사투를 벌였는지 현장 상태는 처참하고 쥐는 내장이 뜯긴 채 차가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적도 있었다.


우리 가게에서 태어난 다른 길고양이의 새끼들이 죽었을 때는 슬프지 않았다. 옆집 할아버지가 당시 옆에 있었는데 사건의 전말을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어떻게 하면 좋냐.."라는 말은 내뱉긴 했는데 그 말이 내 입밖에서 나올 때 나는 무진장 어색함을 느꼈다. '이게 맞나' 싶기도 했다. 왜 조그만 생명체가 떠났는데 슬프지가 않지.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게 아니고 그냥 아무렇지가 않았다.

그 날은 가게 휴일이라서 나 혼자 있었다. 가게에 물류를 시키면 오는 스티로폼 박스에 물건을 빼고 아기고양이를 안에 옮겨 놓았다. 땅을 팔 만한 물건을 찾아 가게 안을 뒤졌다. 때 마침 분리수거를 하러 재활용 청소 차가 가게 앞에 도착했다. 밖에서 "우악!!!!" 하고 소리지르는 굵은 청소부의 목소리에 급히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게 앞에 달랑 놓여있는 스티로폼 박스를 살짝 들었다가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뚜겅을 열고 확인을 했는데 고양이 시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묻어주려고요..' 짧은 한 마디를 하고 나는 스티로폼 박스를 안에다 들여 놓았다. 가게 뒷 편 담벼락 근처에 있는 미니 화단에서 작은 모종삽을 발견했다. 사람이 오지 않는 곳 그리고 흙이 촉촉하고 많은 곳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내가 쓰고있던 하얀 마스크로 고양이 몸통을 잡아서 땅에 묻어줬다. 비가 오면 흘려내려가지 않게 단단하게 묻었다. 몇 달 살다가 가시는구만.이라고 생각했다. 가게로 돌아와 고양이의 피가 묻어있는 그 박스를 가게 앞에 놓았다. 다음 분리수거일이 되면 청소부가 텅 비어있는 박스를 들어보고 싣고 가겠지. 라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감정을 충분히 느끼는 과정을 생략하고 살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을 내비치면 내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꼴보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어디 외딴 섬에 그 부분만 똑 떼어놓은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았다. 중학교 2학년때까지는 체벌금지가 아니었는데 체벌을 받을 때 같은 반 애들은 벌벌 떨며 체벌받는 순번을 뒤로 밀었다. 그러면 내가 몇 번째로 줄을 서든 항상 첫번째가 되었다. 반 애들 중 까불대는 애들은 내가 엎드려 뻗쳐를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나서 "쟤 인조인간 아니냐?", "너 인조인간 이야?"라고 킥킥 대며 물었었다. 지금 신체적 아픔을 느껴버리면 내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섬에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두고 온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부분까지 100배 아니 천 배로 한꺼번에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 처럼 맛보게 될 것 같았다. 그게 두려워서 아픈것도 아프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잘 모르겠다. 실제로 그렇게 믿는 순간 이상하게 내 몸이 강철로 된 몸이라도 된 것 처럼 단단해 지는 느낌까지 받았었다. 누가 나를 아무리 세게 때려도 아프지 않았다. (정신적으로건, 신체적으로건.)


우리가게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이 죽었다는게 왜 난 슬프지가 않을까.

모든 생명체는 다 죽고, 그 중에 운이 안좋게 이 고양이들이 일찍 죽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요즘 세상은 길고양이나 동물들이 살기 좋지 않으니까 뭐 일찍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음 후에 어떤 세계같은게 펼쳐지는지(존재하는지) 모른다. 뭔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뭔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게에 잠시 생을 맛보고 떠난 새끼 고양이는 지금 쯤 알고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 환생했으려나? 더 기다려야되나? 아직 대기자 명단에 있을 지도...? 고양이가 물어온 쥐는 어떻게 됬을까? 한국인으로 환생 할가능성이 있을까..? 아니면 다른 지구에 떨어질지도..까지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래도 쪽문은 열어 놓고 퇴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집에서 키울 마음도 없다. 길고양이 출신이고 이 고양이는 앞으로도 그럴거다. 가게에 있고 싶으면 있으시고 쉬시고 싶은 만큼 쉬쇼. 밥이랑 츄르는 넉넉하니까 친구 데려오든지 말든지. (근데 얘 친구 없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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