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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중 Apr 07. 2022

우리에겐 의느님이 있습니다.

나의 코로나 확진기

2월 말에 한 번 엄청난 위기를 맞았다. 두 아이가 열이 펄펄 끓고 애엄마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즉시 자가진단키트를 열었다. 결과는 음성. 미심쩍은 마음에 온 가족이 선별 진료소로 달려갔다. 역시 음성. 그런데도 아이들 상태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온 국민의 적신호인 열이 그대로니 불안감이 더 커졌다. 며칠 후 또 자가진단키트를 샀다. 결과는 또 같았다. 또 선별 진료소로 내달렸다. 역시 허탈한 결과였다. 이쯤 되면 차라리 확진이 목마를 정도였다. 동네 소아과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권했다. 열흘 남짓 동안 몇 번의 검사를 받았는지 모른다. 날마다 찔러댄 코가 얼얼했다. 그래도 계속 결과가 음성이니 결국 코로나는 아니고 오직 감기였다.


 첫째는 학교를 좀 쉬다가 마침 봄방학을 맞았고 둘째는 한창 유치원 졸업공연 준비로 들떴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렇게 거의 열흘간을 감기와 싸우며 둘째는 그렇게 고대하던 졸업식도 가지 못해 엉엉 울었다. 졸업식이 다 끝나고 나 혼자 유치원에 가서 둘째의 짐을 받아 들고 선생님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첫째가 일 년을 다니고 둘째는 거진 3년을 내리 다녀 쌓인 정이 넘칠 정도의 유치원이었다. 내 집 같이 익숙한 유치원의 교문을 이제 다시 올 일이 없다는 생각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코로나 시대의 쓸쓸한 졸업식인데 그마저 가지 못한 둘째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렇게 2월이 지나갔다. 어쨌든 모든 징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아마 코로나일 거야.’의 예상은 빗나가고 결국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쓸데없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가족은 코로나에 아마 안 걸리나보다. 그런데 역시 선무당은 사람을 잡는다.



3월이 되어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첫 주에는 애가 영 징징대고 밉상이었다. 학교에 안 간다고 울고 떼쓰는 녀석이 우리 아이였다. 잔뜩 겁먹고 긴장하고 급식에는 거의 손도 대니 못했다. 어르고 달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니 그렇게 학교가 싫다던 녀석의 입에서 교가가 주야장천 흘러나온다. 애국가를 배웠니, 교목을 배웠니, 분리수거는 지구를 지킨다고 배웠니 조잘조잘 댄다. 에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렇게 잘할 것을 꼭 그렇게 애를 먹였어야 했냐는 울화통이 치밀어올랐다.(선생님께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거면 됐지 뭐. 싱글벙글 학교 가는 녀석의 뒷모습에 매일매일 웃음이 났는데... 호사다마는 만고의 진리다. 



4월 첫 금요일이 되자 작은애가 또 열에 신음한다. 지난 2월의 학습효과로 이제 아마 아닐 거라는 쓸데없는 믿음을 안고 진단키트를 열었는데, 어, 희미한 두 줄이다! 둘째와 애엄마는 두 줄을 들고 선별 진료소로 달려갔다. 살아남은 자가 된 나와 큰애는 한 줄을 들고 멍했다. 검사를 받고 돌아와서는 전시 체제로 전환되었다. 안방에 금줄을 치고 모녀가 스스로 갇혔다. 불쌍하게 남겨진 부녀는 아빠 서재에 비상 캠프를 꾸렸다. 모녀에게는 배달음식을 안기고 스마트폰과 넷플릭스로 연명하다가 식량을 구하러 마트도 부지런히 다니며 오랜만에 큰딸과 데이트를 즐겼다. 



그렇게 하하호호 깨가 쏟아지는데 아뿔싸, 나도 어느 순간 목이 칼칼하더니 급기야 수업을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전화를 돌리고 학생들을 모조리 운동장으로 몰아냈다. 바이러스를 막으려면 그저 신선한 공기 아래 거리두기가 최고다. 운동장에서 학급을 맡아줄 선생님과 눈짓을 한 번 주고받고는 그대로 선별 진료소로 달렸다. 확진자 가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PCR 검사가 프리패스다. 결국 나도 그 흔한 확진자가 되어 안방의 피난민 캠프에 합류했다. 이제 집에는 효녀 심청이 혼자만 살아남아 제 방에 갇혀 세상의 중심에서 생존을 외치게 되었다. 언제 안방으로 합류할지는 알 수 없지만 꽤나 꿋꿋이 잘 버티고 있다. 제말마따나 맨날 뛰놀아서 면역력이 센가 보다.


오미크론 증상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학교에서도 흔한 교사 확진자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비슷하고 나도 거의 같다. 목이 잠기고 간질간질하며 그래서 귀까지 같이 간지럽다. 계속 마른기침을 하고 가끔은 노랗고 뻑뻑한 가래가 낀다. 코가 막히기도 하고 콧물이 흐르기도 하며 걸을 때 약간의 어질어질함과 근육통, 두통도 있다. 아주 많이 괴롭지는 않고 기침이 콜록콜록거려 좀 불편하며 옛이야기 속의 가련한 폐병환자 느낌이 든다. 목에 뭐가 낀 것 같이 답답해서 계속 기침이 나며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말하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의 방역과 의료 시스템은 정말 존경스럽다. 확진자가 되어 보니 그것을 절감한다. 보건소에서는 문자가 비 오듯 쏟아지고 입력할 것, 지킬 것도 끝없이 많다. 그래도 하라고 하니 다 하고 나면 바로 전화가 와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친절하게 걱정해준다. 보건소에서 안내해준 가까운 동네의원에 전화를 걸면 의사 선생님이 전화를 받아 증상을 물어보고는 약을 처방해준다. 그러면 확진자는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오면 된다. 전부 무료다! 피 같은 내 세금! 의사 선생님은 전문가인 데다 환자들의 증상도 대부분 같으니 이러이러하지 않냐고 유도심문을 하시는데 거의 정답이라 부정할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의느님의 손길이 닿은 기적의 명약을 받아 와서 먹으면 기가 막히게도 이틀 정도 지나서 증상이 많이 가라앉는다.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지만 기침도 덜하고 코막힘도 덜하고 두통도 덜하고 훨씬 살만해진다. 그렇게 길고 고독한 자기반성의 7일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늘 말하던 대로 확진은 크게 두려운 일이 아니다. 고령, 기저질환자, 심신미약자 등 조심해야 할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말썽쟁이 둘째도 이틀 만에 일어나 거실을 날아다닐 정도로 그저 감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백신 하나 맞지 않았지만 아이다운 활기로 금세 회복이 되는 듯하고, 허리도 골골한 어른인 나는 3차까지 맞은 백신의 힘인지 평소에 먹어댄 밥심인지 역시 사흘 정도 지나니 살만해지는 그런 몸살 수준이다. 어쨌든 온 국민의 4분의 1이 걸리고도 살아남았지 않은가. 물론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그날까지 안전하게 살아야 하겠지만 막상 확진자가 되어 그래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상상의 저편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아비규환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 조심은 하되 두려워하지는 말아야겠다. 



국민 여러분, 우리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시스템과 특히 생명의 파수꾼인 동네의원 의느님을 믿고 꿋꿋하게 살아가보자고요. 우리에겐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있고 새벽배송도 있습니다! 죽고자 하면 살리라!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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