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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l 07. 2022

백 송이 꽃에는 백 가지 꽃말이 있다 2

셋넷 졸업생 이야기


향이의 꽃말(10평안남도 평남).. 다행이야


조금만 스쳐도 터질 것만 같은 불안감과 자기 방어에만 충실해 주변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던 이기적인 내가 처음 셋넷에 갔을 때 많이 놀랐다. “반갑다, 잘해보자, 애들은 나를 망채라 부른다, 너도 편하게 불러,” 순간 마음속으로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아무리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에 왔어도 감히 교장 선생님에게 별명을?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다 왔는데 배고픔에 시달리며 살아왔어도 예의는 지켜야지.’ 고향에서 존중하는 순위를 매기자면 김정일 일가, 학교 선생님, 그리고 나의 아버지. 순위가 무려 2위인데 어려워해야 하는 선생님과 가위바위보를 해 설거지를 한다고? 몰래카메라인가?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차를 많이 탔다. 지역에서의 현장학습과 직업체험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 빼고는 신나는 일이다. 어릴 적 고향의 교통수단은 자전거가 전부였다. 고향에서 본 자동차는 목탄차나 뜨락또르(트랙터)뿐이며 동네 소독이라도 하려는 듯 연기를 내뿜는 목탄차 뒤를 따라다니는 것이 놀이의 일부였었다. 전 세계적으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례가 거의 없을 것 같은 나라, 옆 동네 사는 재일교포 출신 할머니네 집에 1년에 한 번 오는 승용차를 구경하고는 신기해하며 살아온 북한 소녀의 창자를 셋넷 스쿨버스 봉고차는 마구잡이로 뒤집어 놨다. 하지만 멀미 따위가 길 위에서 만나는 좋은 인연을 막을 순 없었다. 온통 주눅이 들어 있는 내게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깨우치는 연습을 위해 셋넷은 바삐 떠났다.     

  

‘틀려도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 당당하게 해.’ 점심을 먹고 나면 누구는 사진 수업, 누구는 북 치는 수업, 누구는 기타, 누구는 댄스 뭐 이런 학교가 다 있어? 음치, 박치, 몸치 오합지졸로 이루어져 있는 무리 속에 고민할 것도 없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조급해졌다. 누가 나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어줄까?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나? 빨리 한국 사람처럼 말투를 바꿔야 했고 한국 노래를 많이 외워서 북한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인형극, 뮤지컬, 밴드 공연은 단 시간에 한국 사람이 되어야 하는 내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조급함을 갖게 했다. 북한 사람임을 꼭꼭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낯선 관객들 앞에서 ‘내 이름은 금향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왔습니다.’라고 노래 부르게 될 줄 몰랐다. ‘할 수 있어, 두려워하지 말자, 신나게 즐기자,’ 파이팅을 외치게 될 줄 몰랐다.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학교의 최대 수혜자는 나일 것이다.     


하루만 더 살아볼까 고민하고 태어난 것을 후회하면서 누군가 탓해야 할 사람이 필요해서 고향에 있는 엄마를 미친 듯이 미워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다 보니 지나치는 바람에도 흔들려 기진맥진했다. 그랬던 내게 셋넷은 인간 대접을 해 주었다. 부정적이고 적대적이던 내 감수성을 조금씩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나 스스로를 창피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가족들과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엄마로 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작은 삶이지만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어서 다행이다.     


* 백 송이 꽃에는 백 가지 꽃말이 있다.. 장 뤽 고다르가 한 말.

* 9월 출간 예정인 셋넷 학교 두 번째 이야기 단행본에 실릴 글. 

* 2015년 11월 독일통일 25주년 기념 드레드덴 주정부 초청공연.. 브란덴부르크 앞 평화 메시지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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