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人 11. 땀, 눈물 그리고...
자유의 횃불(Torch of Freedom)
요즘 금연광고에는 과거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호흡기를 달고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도, 보기 힘든 사진도 볼 수 없습니다. 젊고 발랄한 청소년들이 밝은 얼굴로 외칩니다 “우리는 노담세대!” 바로 보건복지부의 금연 광고 캠페인입니다.
지금은 금연을 권장하는 시대지만 20세기 말 대학가에서는 흡연권을 보장하라며 거리 행진을 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버네이즈의 '자유의 횃불'을 벤치마킹한 거리행진이었습니다.
1998년 이화여대 정문에 여대생을 포함한 35명의 여성과 남성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여성에게도 공개된 장소에서 담배를 자유롭게 피울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라” 담배를 피우며 이화여대 정문을 출발해 신촌역을 거쳐 연세대 정문까지 행진했습니다. 지금은 공개된 흡연 장소에서 남성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 여성들은 카페나 밀폐된 공간에서 겨우 흡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흡연은 가부장적 남성 중심 시대의의 산물처럼 인식되던 시대였습니다. 남성들과 함께 공개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흡연할 권리는 또 하나의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운동처럼 보였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이 시위를 뉴스를 통해 접한 사람들의 의견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습니다. 찬성하는 의견은 거리 흡연은 남성에게만 허락된 것도 아니라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당당히 흡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대의견은 금연을 권장하는 시대에 남성들의 거리 흡연을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과 동등하게 공개된 장소 흡연을 요구하는 의견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촌에서 진행된 여성들의 거리 행진은 뉴스에서 보도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지속성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 이후 공개된 장소에서 흡연하는 여성들의 수는 눈에 띄게 늘었고, 여성 흡연자들을 안좋게 바라보던 시선도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여성 흡연자들의 거리 행진은 성공한 것일까요?
여성 흡연은 사실 담배회사의 마케팅에서 확대 되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American Tobacco Company) 최고경영자 조지 워싱턴 힐(George Washington Hill)은 담배 매출을 늘리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힐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흡연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당시 미국도 남성 중심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는 여성들에 대해 인식이 부정적이었습니다. Hill은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담배 매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Hill은 홍보 및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였던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ernays)에게 흡연 홍보캠페인을 의뢰했습니다. 버네이즈는 광고만으로 여성 흡연자에 대한 사회 인식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버네이즈는 미국 사회제도가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캠페인을 기획합니다. 여성의 흡연은 옷과 헤어스타일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성 흡연자들도 남자들과 평등하게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기획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내세워 여성 흡연자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버네이즈는 부활절에 뉴욕시에서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행진을 기획합니다. 이날 모인 여성 시위대는 아메리카 타바코의 ‘럭키 스트라이크’ 브랜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언론사 기자들도 초대해 취재하도록 했습니다.
이날 행렬에 참석한 여성들은 다음가 같은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여성! 자유의 또 다른 횃불을 밝혀라! 또 다른 섹스 금기와 싸워라!”
이날 행렬에 참석한 여성들은 패션모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당시 명성이 있는 여성 오피니언 리더들도 참가해 화제성을 높였습니다. 이날 행렬은 뉴스에 소개됐고, 아메리카 타바코는 이날 행진을 연상시키는 광고와 기사를 지속해서 내보냈습니다. 자본력과 아이디어가 접목된 이날 캠페인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날 캠페인 이후로 여성 흡연자들은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버네이즈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데 담배가 도움이 된다는 내용도 전파했습니다.
버네이즈의 부활절 행진은 일명 ‘자유의 횃불’(Torch of Freedom)로 불리며 홍보캠페인의 성공적인 사례로 자주 소개됩니다. 이날 행렬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버네이즈의 뛰어난 기획력도 주효했지만 아메리카 타바코의 막대한 자금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버네이즈는 여성 오피니언 리더들을 행렬에 초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행진을 지원한 아메리카 타바코의 자본의 힘입니다. 또한 여성 오피니언 리더의 참여는 비흡연자 여성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타바코는 이날 행진을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게 여성들의 흡연 권리와 관련된 뉴스와 광고를 언론을 통해 지속해서 내보내며 여성들의 흡연을 유도했습니다. 특히 여성 모델과 유명인들의 몸매관리를 위해 흡연한다는 발언은 여성 흡연자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오늘날 흡연을 권장하는 홍보 이벤트를 기획한다면 공감을 얻기 힘들 것입니다. 아무리 케이티앤지(KT&G)가 후원하는 행사라 하더라도 흡연을 권장하는 홍보캠페인을 벌였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입니다. 요즘같이 건강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금연 캠페인은 공감을 얻어도 흡연을 권장하는 홍보 메시지는 반감을 살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홍보 아이디어라도 시대와 사회 정서에 따라 변해야 합니다.